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지는 6월 3일은 '무주택자의 날'입니다. 지난 제21대 대통령선거 역시 같은 날 치러졌습니다. 선거는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와 동네의 미래를 결정하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세입자의 삶'을 중심에 둔 정책과 선거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전세사기가 사회적 재난이 되어 대한민국을 휩쓴 이후, 우리가 살고 있는 집과 동네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세입자들의 목소리를 한 사람씩 천천히 들어보고자 합니다.
이번 <세입자의 목소리를 찾아서> 인터뷰 시리즈는 6월 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공약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세입자들의 경험과 목소리를 기록하고 전하고자 합니다.
이 연재 기사 시리즈는 제9회 지방선거를 계기로 민달팽이유니온과 서울시전세피해세입자연대가 함께 꾸린 '세입자의 목소리를 찾아서' 팀이 기획·제작했습니다.
"6월 3일, 주거권에 투표합시다!"
서울전세피해세입자연대와 민달팽이유니온은 지난 15일, 서울 서대문구의 카페 '계절의 목소리'에서 '세입자의 목소리를 찾아서' 프로젝트 마무리 집담회를 열었다. 참가자들은 전세사기 피해 사례와 불안정한 주거 경험 등을 공유하며 현 시점에 필요한 세입자 정책을 논의했다.
이날 집담회는 민달팽이유니온 가원 활동가의 사회로 문을 열었다. 첫 순서는 인터뷰 진행자들과의 패널 토크로 진행된 '인터뷰어의 목소리를 찾아서'였다. 패널로는 김기성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 윤여진 청년안심주택 사당 코브 전세사기 피해자, 오지은 <스위트 홈> 저자이자 출판사 삼프레스 운영자가 함께 했다.

▲가원 민달팽이유니온 사무처장이 행사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 민달팽이유니온
전세사기는 누구에게나... '정치에 무감해지기도'
김기성 연구원은 청년안심주택의 피해에 대한 서울시의 대응을 연구하던 중 청년안심주택 잠실 센트럴파크 전세사기 피해 세입자를 인터뷰했다. 인터뷰 전에 예상했던 바와 실제로 진행하면서 느낀 바 사이의 차이점을 묻는 질문에 그는 "다른 지자체는 이런 피해의 대응에 대해 별도의 사업을 만들어 피해자를 지원하는 방식을 택하지만 서울시는 기존의 사업 트랙에 새로운 피해의 대응을 태우는 방식을 택했다. 이게 과연 좋은 방식일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고 했다.
이어 "실제로 인터뷰를 진행해보니 기존 사업이 요구하는 기준으로 인해 다수의 피해자들이 실제로 지원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알게 됐다. 행정적 편의를 위해서 택한 방향이 피해자의 삶을 회복하는 데 있어서는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함을 인터뷰를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임대인이 임대료를 올리겠다고 해서 이사를 나가겠다고 하니 또 올리지 않겠다고 해서 지금 사는 집에 계속 살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하는 삶을 겪는 중이다"며 "한 곳에 오래 살 수가 없으니 '동네'라는 감각을 잘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고 세입자로서의 고민도 함께 전했다.
그러면서 "서울시는 '우리는 역할을 다했다'라는 식의 태도를 취해왔는데, 청년안심주택은 비록 서울시 소유는 아니었지만 세입자들이 긴 시간 살 수 있도록 시가 추진했던 정책인데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이 뻔뻔하다고 느꼈다"며 피해자의 이야기가 세입자로 살아가는 본인의 삶과 겹쳐 보였다고 말했다.
윤여진 청년안심주택 사당 코브 전세사기 피해자는 주변인들의 전세사기 피해를 계기로 집을 구하는 기준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전한 세입자를 인터뷰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마냥 슬퍼하고 우울해 할 틈 없이 직장인들이 아파도 출근하는 것처럼 일상과 피해 회복을 위한 행동을 병행하느라 무척 바쁘다"며 "이러한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일상을 전함으로써 피해가 결코 남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고 인터뷰 프로젝트 참여 동기를 전했다.
그는 "전세사기 피해 이후 지인들로부터 여러 질문을 많이 들었는데, 이번 인터뷰를 통해 반대로 피해자의 지인에게 질문을 던지는 경험을 한 것이 새로웠다"고 했다. 또한 "피해자들끼리만 모여있을 때는 몰랐지만, 주변인을 인터뷰해보니 전세사기 피해가 어떤 세입자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는 사고처럼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됐다"며 피해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사회적인 변화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함께 들려주었다.

▲행사의 첫번째 순서 <인터뷰어의 목소리를 찾아서>가 진행되고 있다. 가원 활동가가 패널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패널 순서 왼쪽부터 김기성, 윤여진, 오지은) ⓒ 민달팽이유니온
이미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실은 <스위트 홈>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한 오지은 작가는 프로젝트 중 이날 패널로 함께 하기도 한 윤여진 피해자를 인터뷰했다. 그는 책과 이번 프로젝트를 통틀어 많은 피해자들을 만난 것에 대해 "전세사기 피해자를 인터뷰할 때는 전세사기 사건에만 집중하기보다 처음 기억하는 집에서부터 출발해 다음 주거 공간을 선택해 나가는 맥락에서 전세사기 피해를 함께 살피려 한다"며 "더 나은 조건과 공간으로 이동하기 위해 열심히 살았던 사례들에서 느끼는 '힘'을 통해 사람에 대한 신뢰를 얻는다"고 전했다.
그는 인터뷰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피해 이후 오히려 정치에 무감하게 됐다'는 말이라고 전했다. "피해 이후로 정치나 정책에 대해 관심이 자연스럽게 높아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정책으로 공급된 청년 주택에서 사기를 겪은 뒤 피해 회복에 매달리느라 정치 문제에 관심을 둘 여유조차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새롭게 다가왔다"며 "이미 피해를 당한 일도 억울한데, 지원책으로 인해 더 곤란한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정책이 보완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날 집담회에는 권영국 정의당 서울시장 후보도 함께 자리해 세입자들의 요구를 청취했다. 그는 다세대주택에서 갭투자로 인한 보증금 미반환 피해를 겪은 가족의 사례를 들려주며 세입자들의 불안과 고통에 공감하며 '오히려 정치에 대한 냉소를 가지게 됐다'는 말이 특히 인상 깊었다고 전했다. 그는 "전세사기 문제는 여러 사회적·정책적 문제가 굉장히 많이 개입돼 있으나 이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방식으로 문제 해결을 미뤄왔다"며 "보증금의 3분의 1을 돌려주는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되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책 사업에서조차 전세사기가 발생하면서 세입자들의 사회적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덜 위험한 주택을 찾기 위해 애쓰는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공임대주택을 빠르게 늘리고, 소유 중심에서 '거주 중심, 주거 중심'의 정책으로 바꾸는 주거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며 "세입자로 살아도 자가 소유자인 것처럼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사회를 한 번 만들어 보자"고 참가자들에게 제안했다.

▲권영국 정의당 서울시장 후보가 세입자를 위한 정책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 민달팽이유니온
이어진 순서는 참여자들이 모두 함께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는 '세입자의 목소리를 찾아서\'였다. 이 순서는 ▲임대인과의 갈등 ▲원치 않는 이사 ▲보증금 미반환의 세 주제로 나눠 참가자들이 주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단수되니 자기 집에서 씻으라고 하는 임대인... 기상천외한 사연들
'임대인과의 갈등' 주제가 진행된 테이블에서는 각종 기상천외한 집과 임대인을 만나게 된 사연이 오고 갔다. 가장 자주 등장한 주제는 주택 수리수선에 관한 사연이었다. 한 참가자는 "임대인은 주택 관리를 아들에게 일임하겠다고 말하고 연락이 두절됐고, 임대인의 아들은 2층까지 집이 잠기자 '건물을 다 무너뜨릴 테니 한 달 뒤에 나가라'고 해 쫓겨나듯이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며 여름이 되고 비가 많이 오자 반지하 집이 잠긴 친구의 사연을 공유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해충 방역을 위해서는 건물 전체 방역이 필요했지만 각 집의 임대인들이 다 다르기 때문에 임대인도 책임을 피하고, 해결이 요원해 단념하고 이사를 나왔다"고 회상했다.
세입자의 집에 무단침입하는 임대인의 사연도 상당수 공유됐다. 한 참가자는 "친구 집에 놀러가 잠을 자는데 갑자기 집주인 할아버지가 문을 따고 들어와 '아가씨가 잘 있는지 보러 왔다'고 해서 곧바로 집을 정리하고 이사간 적이 있었다"고 전했다.
다른 참가자는 "집주인이 자꾸 오겠다고 해서 오지 말라고 했더니 열쇠가 있으니까 아무 때나 오겠다고 해서 그때 집주인이 우리집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누수 문제는 관심 없던 갭투기 임대인, 말없이 임대인이 변경돼 보증보험 갱신이 어려웠던 사연, 세입자들을 단체메시지방에 초대해 '행운의 편지'를 보낸 임대인, 곰팡이 문제를 세입자 탓으로 돌리며 보증금을 삭감하고 돌려주겠다는 임대인에 대한 사연이 오고 갔다.
'원치 않는 이사'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테이블에서는 재개발, 임대료 상승, 짧은 계약기간 등으로 원치 않는 이사를 반복하며 '내 동네'라는 감각을 느끼기 어려운 세입자들의 사연이 오고 갔다. 한 참가자는 "지금 살고 있는 동네가 몇 년 전 신속통합기획 재개발 지구로 지정됐는데 어머니한테 이 소식을 전했더니 '아이고 잘됐다'고 하시길래 '나는 어디 가서 살아, 내가 쫓겨나는 거라고'하고 얘기한 적이 있다"며 "한국 사람들은 재개발은 곧 좋은 일이라고 으레 생각하지만 세입자들은 재개발 이후에 어디 가서 사느냐"고 답답한 심정을 전했다.
다른 참가자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며 "재개발 주민 설명회가 있대서 가보니 '주민대표회의'에서 주최했다고 쓰여 있었다. 밴드가 있다고 해서 검색해보니 토지 등 소유자만 해당 밴드에 가입할 수 있었다. '나도 주민인데 이럴거면 주민회의라고 이름 붙이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설명회에서 '살기 불편한 주거 환경은 재개발이 선택이 아니다 필수다'라는 말을 듣고, '그러면 그 불편한 환경에 살던 나는 어디로 가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 행사는 소유권을 갖고 있는 사람만이 모여 있었고, 우리 집주인도 다른 동네에 사는 사람이다"라며 실제 주민이 아닌 소유권만을 기준으로 도시 계획이 정해지는 모순을 짚었다. 그 밖에도 전세사기 피해를 입은 뒤 후순위 임차인이어서, 월급은 오르지 않지만 임대료는 빠르게 올라서, 계약갱신청구를 1번 할 수 있게 됐지만 임대인이 예외 조항을 요구해서 등의 이유로 원치 않은 이사를 해야 했던 사연들이 공유됐다.

▲참여자들이 저마다 세입자 살이에 대한 사례를 나누고 있다. ⓒ 민달팽이유니온
임대인의 투자를 근거로 상정된 보증금이 전세사기의 원인
'보증금 미반환' 테이블에서는 실제로 전세사기 피해를 당한 사례부터 계약 당시에는 분명히 문제 없는 집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계약 종료 시에는 '돈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 세입자의 일상적인 불안이 함께 공유됐다. 한 참가자는 '보증금을 다 써버렸기 때문에 돈이 없다'는 이유로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그 다음으로 들어올 세입자의 계약금마저 임대인의 아들이 써버렸다고 하더라는 친구의 사례를 언급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사람 다운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무리해서 보증금을 조금 높여서 이사를 왔지만 계약 종료를 앞두고 조마조마하다"며 "계약서에 반환과 관련한 특약 문구도 있지만 3년 간 살면서 임대인을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이 든다"고 전했다.
해당 테이블에서는 피해 사례 뿐 아니라 보증금 미반환을 예방하기 위한 방법들도 함께 논의됐다. 한 참가자는 "계약서에 특약이 있다 해도 실제 임대차 계약에서는 세입자가 채권자로서의 지위를 전혀 갖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뒤집을 가장 기본적인 변화가 뭔지 고민된다"고 전했다.
다른 참가자는 "단결권, 교섭권, 행동권을 보장하는 노동3권처럼 세입자들의 교섭이나 행동을 보호하는 주거3권이 필요하다"며 얕은 수준의 보호가 아닌 기준 설정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라고 밝힌 한 피해자는 "공인중개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가장 활발하게 영업을 하고 있다"며 "공인중개사만큼 책임을 지지 않는 영역이기 때문에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요구했다. 또 한 참가자는
"최소한의 신뢰를 지키기 위한 장치가 논의되기 전에 보증금 규모 자체가 지나치게 큰 구조를 이해하기 어렵다"며 보증금의 규모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다른 참가자는 "집을 구할 때 이 조그마한 집이 왜 1억이냐고 물어보면 전세 대출금이 1억이 나와서 그렇게 잡혔다라는 말을 들었다"며 "세입자가 문제가 생겼을 때 회복할 수 있는 정도의 금액이 아닌 임대인이 얼마를 갖고 놀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둔 것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마지막으로는 행사 사전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던 공약 투표의 결과를 발표하는 '세입자에게 꼭 필요한 정책을 찾아서'가 진행됐다. 전세사기 문제의 예방을 위한 영역에서는 ▲공공임대주택 확충 ▲민간임대주택 관리감독 강화 ▲세입자 상담 제공(주거복지센터 활용 등) ▲보증금 상한제 실시 ▲공인중개사 책임 및 관리 강화의 5개 공약이 제안됐고, 전세사기 피해 구제를 위한 영역에서는 ▲채무 조정 및 심리치료 지원 ▲일상회복 자금 지원(월세·대출이자·이사비) ▲보증금 선지급 및 반환 보장 ▲피해주택 관리 및 공용비 지원 ▲피해자 소통·협의체 구축의 5개 공약이 제안됐다.
이상의 10개 공약을 두고 진행한 참가자들의 투표 결과 예방 영역에서는 '공공임대주택 확충'이, 피해 구제 영역에서는 '보증금 선지급 및 반환 보장'이 각각 1위 공약으로 꼽혔다. 집담회는 각각 1위로 꼽힌 정책을 구호로 외치며 마무리됐다.

▲민달팽이유니온 하은 활동가가 '임대인과의 갈등'을 주제로 나눈 이야기를 발표하고 있다. ⓒ 민달팽이유니온
선거는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와 동네의 미래를 결정하는 행위다. 그러나 도시와 동네의 결을 이루고 살아가는 세입자를 위한 정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주거 정책의 중심에 '그 집에 사는 사람'을 두지 않는다면, '전세사기'라는 사회적 재난은 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다. 집담회의 참가자들은 "세입자의 삶을 중심에 둔 주거 정책이 필요하다"며 지방선거에서 주거권 의제가 적극적으로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하는 한편 주거권에 투표하자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