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캡(자료사진) ⓒ 이주영
수업 시간, 아이들과 느닷없는 실랑이가 벌어졌다. 교실 여기저기에서 딸깍거리는 소리가 나 수업이 도중에 끊겼다. 아이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평소와 다르지 않은 눈빛이었지만, 여간 신경이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진도를 나가다 말고 대체 어디서 나는 소리냐며 짜증을 냈다.
'키캡 클리커(키캡)'를 두드리는 소리였다. 아이들이 동시에 중얼거리는 소리에 처음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한참을 헤맸다. 누구는 '키캡'이라고 불렀고, 다른 누구는 '딸깍이'라고 했다. 빼앗아 보니, 컴퓨터 자판을 몇 개 뜯어내 붙인 뒤 고리를 연결한 장신구 모양이었다.
소리도 소리지만, 누를 때마다 불빛이 번쩍거려서 더욱 정신을 사납게 했다. 만약 낮이 아닌 밤이었다면, 귀신불처럼 사람을 깜짝 놀라게 했을 성싶다. 언뜻 둘러보니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드물었다. 대개 장난감처럼 손에 쥐고 있거나 가방 지퍼에 매달아 놓았다.
키캡을 손에서 놓지 않는 아이들
펜 대신 키캡을 손에 쥐고 있는 아이들에게 부러 물었다. 왜 종일 두드리고 있는지 정말 궁금했다. 처음엔 이게 '만보기 앱'처럼 스마트폰과 연동돼 일정 타수가 넘어가면 캐시로 환급되는 줄 알았다. 그러잖고서야 반복해서 두드리는 수고로움을 자발적으로 행할 리 없다고 봤다.
"두드리고 있으면 긴장이 풀리고 집중력이 높아져요. 선생님도 한번 해보세요."
아이들의 대답은 토씨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손가락에 전해지는 감촉과 딸깍거리는 소리에 묘한 중독성이 있다며 끊기 쉽지 않다고 했다. 한 아이는 등하굣길은 물론, 공부하거나 식사할 때도 키캡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고 했다.
하나같이 일상생활에 활력소가 된다고 하니, 딱히 막을 명분은 없었다. 다만, 수업 시간만큼은 방해가 되니 사용하지 않는 걸로 합의를 봤다. 각자에겐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될진 몰라도, 불규칙한 소리에다 자극적인 불빛까지, 도저히 강의에 몰입할 수가 없었다.
수업 중엔 호주머니나 가방 속에 넣으라고 했지만, 여전히 딸깍거리는 소리가 드문드문 들렸다. 자기도 모르게 손이 가서 두드린 것이니, 따로 불러다 혼쭐 내기도 뭣하다. 마치 다리를 떠는 것처럼 무의식중에 나오는 행동이라 그 순간 키캡을 빼앗는 것 말곤 달리 방법이 없다.
"다 같이 한번 생각해 보자. 과연 키캡을 두드리면 정말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는지, 아니면 키캡을 두드리면 심리적으로 안정이 된다고 여기저기서 말하니까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를."
나무라는 대신 아이들에게 화두 하나를 던졌다. 개중엔 의도를 간파했다는 듯 쭈뼛거리며 키캡을 슬그머니 호주머니에 집어넣었지만, 그 와중에도 키캡을 신나게 두드리고 있는 아이들이 많았다. 기실 그 화두는 키캡의 존재조차 몰랐던 내게 스스로 자문한 것이기도 했다.
뜬금없는 질문에 아이들은 망설이며 서로를 쳐다볼 뿐이었다. 만약 전자라면, 키캡은 각자도생과 무한경쟁의 환경에 내동댕이쳐진 아이들을 위로해 주는 또 하나의 처방이다. 반대로 후자라면, 입시 공부에 지친 아이들을 상대로 한, 마케팅을 빙자한 사기 행각이나 다름없다.
"어쨌든 키캡은 유행을 넘어 저희 또래의 문화를 대표하는 물건이 됐어요. 가지고 있지 않은 게 도리어 이상한,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필수품이죠."
이젠 키캡의 '효능'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되는지는 논외고, 단지 유행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한두 개쯤 지니고 있다는 거다. 누군가의 가방에 키캡이 매달려 있으면 왠지 친근감이 생기고, 일면식도 없는데 동질감마저 느껴진단다.
다닥다닥 키캡 소리, 왜 내겐 아프게 들릴까

▲요즘 아이들의 '필수템'이 된 키캡 클리커. 딸깍거리는 소리에 현란한 불빛까지, 수업에 몰입을 방해하는 물건이 됐다. ⓒ 서부원
지금은 아이들의 손마다 키캡이 들려 있지만, 대략 10년 전쯤엔 모두가 '피젯 스피너(피젯)'를 돌리고 있었다. 엄지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으로 베어링이 장착된 중앙축을 잡고 검지손가락을 이용해 빙글빙글 돌리며 노는 장난감이다. 회전하는 동안 불빛이 현란하게 반짝였다.
그때도 아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피젯을 돌렸고, 이유를 물으면 "긴장이 풀리고 집중력이 높아진다"고 답했다. 지금 키캡은 크기와 모양이 대동소이하지만, 피젯은 같은 모양이 단 하나도 없을 만큼 각양각색이었다. 가격 또한 천차만별이어서, 피젯에 서열이 매겨지기도 했다.
한때 시험 중에도 피젯을 돌리는 경우가 있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시험 시작 전 유의 사항을 안내할 때, 시험 중 피젯을 돌리면 처벌한다는 내용도 포함된 걸로 기억한다. 친구의 피젯을 훔치는 사건도 빈발했고, 교사 중에도 피젯을 챙겨 다니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피젯은 오래전에 유행이 지나갔고, 이젠 구하기도 힘든 물건이 됐다. 모두가 한목소리로 상찬하던 피젯의 '효능'은 이미 온데간데없고, 과거 한 시절을 풍미했던 물건이었다는 기억만 선명하게 남았다. 모르긴 해도, 지금의 키캡 역시 피젯의 전철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 긴장이 풀리고 집중력이 높아진다고들 했지만, 종일 키캡을 두드리는 그들의 표정에서 되레 불안과 초조가 읽힌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안쓰러울 지경이다. 손에 키캡이 없으면 뭔가 허전해 집중이 안 된다며 '금단 현상'을 호소하기도 한다.
다른 곳도 아닌 학교에서 아이들 스스로 심리적 안정을 바라며 종일 키캡을 두드리고 있는 현실이 그로테스크하다. 학교 교육이 아이들의 정신 건강을 해치고 있다는 방증이어서다. 키캡에 의존할 정도로 정신적 고통을 받는 곳이라면 학교를 이대로 두는 게 과연 맞나. 아이들의 키캡 두드리는 소리는 우리 교육의 무기력을 질타하는 죽비소리인지도 모른다.
키캡을 두드리고 있는 한 아이의 책가방 옆 주머니에 진통제가 보였다. 듣자니까, 요즘 아이들의 책가방엔 에너지 음료와 영양제, 진통제 등이 들어있다고 한다. 카페인과 약으로 일상을 견디는 아이들이 키캡을 두드린다고 달라질 게 무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