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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초보 농사꾼 부부를 향한 90세 농사 대선배의 한마디]

"Y(고추 줄기가 자라다가 처음으로 두 갈래로 갈라지는 부분)자 보이지? Y자 밑으로 3개 순까지만 남기고 나머지 곁순들은 다 제거해."
"여보. 이것 좀 봐줘, 이게 Y가 맞아? 이렇게 뚝뚝 따라는 거지?"

22일, 드디어 고추 모종을 덮고 있던 부직포 터널을 벗겼다. 씨를 파종해 모종으로 키우고, 밭에 정식하면서 부직포 터널을 만든 지 5주가 됐다. 그동안 하얀 부직포 터널 안에서 모종들은 키가 쑥 자랐다. 이제는 밤 최저기온이 10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아 이불을 걷고, 밤낮으로 불어오는 자연 바람과 뜨거운 햇볕을 마주할 수 있을 만큼 튼튼하게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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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나는 뿌리를 내리고 자랄 준비를 마친 고추나무의 첫 분기점인 Y자 분기점(방아다리)에 달린 첫 고추를 따고, 그 아래 3개 곁순만 남기고 나머지 곁순들을 과감히 따주는 작업을 했다. 어렵게 큰 첫 고추를 따고 곁순을 제거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Y자에 달린 첫 고추는 아깝더라도 빠르게 따주어야 나무 전체의 성장을 도울 수 있다. 고춧대를 먼저 튼튼하게 키워야 나중에 고추가 많이 열리기 때문이다.

곁순을 정리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땅에서 올라오는 영양분이 쓸데없이 밑에 있는 곁순들에 가지 않고 메인 가지를 키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한 땅에 가까운 아래쪽 곁잎들이 없으면 고춧대 밑으로 바람이 통하고, 혹여 비가 올 경우 흙에서 빗물이 튀어 발생하는 각종 병충해를 예방할 수 있다.

Y자분기점을 찾아 곁순을 제거한 고추나무 부직포터널을 벗기고 Y자분기점을 찾아 아래쪽 곁순을 제거한 고추나무, 이제는 모종이 아니다. 고추나무다.
Y자분기점을 찾아 곁순을 제거한 고추나무부직포터널을 벗기고 Y자분기점을 찾아 아래쪽 곁순을 제거한 고추나무, 이제는 모종이 아니다. 고추나무다. ⓒ 김희

아직 경험이 미숙한 귀농 2년 차 농부지만, 예전 어르신들이 말씀하시던 '천수답'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때가 있다. 천수답은 오직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에만 의지해 농사를 짓던 척박한 농사 환경을 뜻한다.

하늘만 쳐다보며 말라가는 작물을 타들어 가는 심정으로 바라보던 조상들의 고단한 세월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는 잘 정비된 농수로 덕분에 물 걱정 없이 밭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물길만 그런 게 아니다. 이제는 농사도 엄연한 과학이라고들 말한다.

실제 지난겨울부터 씨앗을 어린 모종으로 키우면서 추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바닥 온도와 실내 온도를 맞추고, 일자별로 성장 속도를 예측하면서 문제점을 확인했다. 메인 가지를 키우기 위해 보기 좋게 잘 자란 곁순을 과감히 제거하는 작업이나, 병충해가 오기 전 사전 방제하고 점적 호스로 자동관수하는 이 모든 과정이 치밀한 계산과 철저한 과학적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곁순에서 딴 고춧잎(삶아서 먹는다) 곁순을 제거하면서 딴 고춧잎은 데쳐서 먹으면 된다
곁순에서 딴 고춧잎(삶아서 먹는다)곁순을 제거하면서 딴 고춧잎은 데쳐서 먹으면 된다 ⓒ 김희
간혹 밭일을 끝내고 조용히 앉아 있노라면 오래전 이 땅에서 하늘의 일기에만 기대 농사짓던 조상들의 고단함이 전해져온다. 좋은 세월 만나 농사의 축적 기술을 과학이라는 편리함으로 누리는 지금이, 맨손으로 이 거친 대지를 일군 그분들의 세월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에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감사한 마음이 저절로 든다.

"당신 좀 제대로 해라. 작년 생각 안 나? 또 누워서 고추 딸 거야?"

고춧대 하나하나 Y자를 확인하면서 하나, 둘, 셋 곁순을 세어 가며 제거했는데도, 남편의 예리한 눈은 피해 갈 수 없었나 보다. 내가 지나온 고추 골에서 놓치거나 제대로 작업이 안 된 부분을 남편이 용케도 발견하고 타박을 했다.

"그래? 딴생각했나 보네. 알았어. 제대로 할게."

혼자 피식 웃고 만다. 사실 남편이 나의 서투른 작업을 꼼꼼하게 다시 챙기는 건 지난해 이 밭에 첫물 고추를 딸 때 혼쭐이 난 경험이 있어서다.

Y자분기점 달렸던 고추들 Y자분기점에 달렸던 고추들을 다 따줬다
Y자분기점 달렸던 고추들Y자분기점에 달렸던 고추들을 다 따줬다 ⓒ 김희

지난해 이 밭에서 첫 고추 농사를 지을 때도 분명 곁순 제거 작업을 했었다. 하지만 그땐 초록색으로 싱싱하게 잘 자란 곁순을 제거하려니 너무 아까웠다. 남편과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그냥 둔 게 화근이었다.

고추나무가 위로 자라야 하는데 아래쪽으로 고추가 주렁주렁 달렸다. 그게 또 아까워 그대로 키웠더니 빨갛게 익은 첫물 고추를 딸 때 고추골바닥에 거의 드러누워 수확하면서 곤욕을 치렀다. 허리가 끊어질 듯한 교훈 덕분에 곁순을 제거하는 데 망설임 없는 손길로 작업을 마쳤다.

아래쪽 곁순들을 시원하게 정리해 주고 나니 고추밭 사이로 해풍이 솔솔 드나든다. 온실 같았던 부직포 이불을 걷어차고 메인 가지로 충분한 영양분이 가도록 곁순 제거 작업까지 마친 우리 밭 고추들… 올해는 고추 골에 드러눕지 않고 꼿꼿이 서서 기분 좋게 빨간 고추를 수확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브런치에도 실립니다.


#고추키우기#Y자분기점#방아다리#고추곁순제거#첫고추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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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 (noheene) 내방

길었던 직장생활을 끝내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글로 써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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