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금 학교는 가정교육의 '공백'을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AI생성 이미지)
지금 학교는 가정교육의 '공백'을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AI생성 이미지) ⓒ 오마이뉴스

난 학생들이 지각을 밥 먹듯 하고, 학칙을 무시로 어기고, 수업 태도가 불량하고, 숙제를 해오지도 않고, 온갖 말썽을 피워도 모든 책임이 부모에게 있다고 믿고 또 그렇게 말한다.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라고 여겨서다.

지금 학교는 가정교육의 '공백'을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학교는 가정교육의 결과를 넘겨받아 이어서 교육하는 기관이지만, 교사들이 부모 역할을 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성년을 코앞에 둔 고등학생들에게 초등학교 교과목인 '바른 생활'을 가르치고 있는 모양새다.

교사들이 부모로부터 '알람' 역할을 요구받기도 하고, 사물함을 정돈하고 비질하는 방법을 일일이 시범 보여야 한다. 조회나 종례 때는 다음날 챙겨와야 할 교과서와 참고서를 안내하고, 과제물이 있다면 칠판과 단톡방에 꼼꼼하게 적어놓아야 한다. 급식소에서 음식을 남기지 않는 밥상머리 교육까지 교사들의 몫이 됐다.

AD
사실 이것들은 이미 가정에서 몸에 익히고 와야 할 일들이다. 자기 방을 청소하는 것과 설거지하는 일, 준비물을 챙기고 음식을 남기지 않고 골고루 먹는 일 등이 학교 교육의 역할일 리 없다. 하물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씻고 등교하는 기본적인 생활 습관조차 학교에 의탁해서야 되겠는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최근 이런 생각까지 든다. 요즘 아이들은 공부하는 것밖엔 모르는 것 아닐까. 공부 외에 다른 일은 해본 적도 없으려니와 웬만한 부모들은 부러 시키지도 않는다. 심지어 다른 건 다해줄 테니 그 시간에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채근하는 부모들도 적지 않다.

공부만 잘하면, 성적만 좋으면 어지간한 일탈 행위쯤은 모두 용서되고, 또 그걸 당연시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마치 모두가 시험공부를 위해 태어난 사람들 같다. 시험공부가 가정교육과 학교 교육의 유일한 목적일 때, 아이들의 강퍅하고 이기적인 심성은 필연적인 결과다.

모두가 "공부"만 외쳐온 결과

아이들에게 각자의 취미나 특기를 말해보라면, 곧장 대답하는 경우가 드물다. 대개 한참 고민하다가 오래전 과거의 좋았던 기억을 꺼내 쭈뼛거리며 말한다. 지금껏 '공부만이 살길'이라고 여겨온 그들에게 취미활동을 할 시간과 자신만의 특기를 개발할 여유는 사치였을 테다.

그나마 성적이 좋다면 공부를 핑계 삼을 수라도 있지만, 대다수는 질문 자체에 손사래를 친다. 자신의 취미와 특기를 아직 찾지 못했다고 답하는 친구도 더러 있지만, 무조건 "잘 모르겠다"고 답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들의 표정엔 만사가 귀찮다는 듯한 무력감만 가득하다.

모든 기성세대가 이구동성 공부만 외쳐온 결과다. 오해 없길 바라지만, 공부라는 단어엔 죄가 없다. 본디 공부란 몸과 마음을 수양한다는 뜻의 한자어에서 비롯됐다. 공부 앞에 시험이라는 수식어가 자동으로 따라붙고, 점수나 등급을 매겨 평가하는 왜곡된 현실이 문제였을 뿐이다.

현재 방식의 시험공부라면, 맹목적일수록, 혼자 할수록 효과적이다. 과거엔 고시 공부를 위해 속세의 모든 인연을 끊고 절에 들어가는 경우도 흔했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합격해 검사가 되고 대통령 자리에까지 오른 인물도 등장했다. 그땐 모두 그게 '진짜 공부'라고 여겼다.

AI가 머지않아 사람들의 뇌까지 대체한다는 시대에 공부의 정의는 달라져야 한다. 공부는 결과가 아닌 과정이며, 'Study'(학습)나 'Practice'(연습)가 아니라 'Communication'(소통)이나 'Interaction'(상호작용)으로 번역되어야 옳다. 맹목적으로, 혼자 하는 것보다 끊임없이 타인과 소통하고 토론하는 게 교육의 본령에 맞춤한다. 이는 AI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기도 하다.

AI의 시대를 경험해 보지 못한 부모들의 공부에 대한 조언은 한계가 분명하다. 그들은 AI를 공부하고, 디지털 리터러시 역량을 키우면 나중 취업에 유리할 거라고 여긴다. 의치대에 진학하지 못할 거라면, AI 관련 학과를 선택하는 게 차선책이라는 거다. 그들의 이야기는 모두 취업으로 수렴된다.

하지만, 그건 부모들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혹자는 AI가 모든 영역에 활용될, 불과 얼마 뒤엔 취업이라는 말 자체가 사라질 거라는 충격적인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공인회계사 자격증의 무용론이 대두되고, AI가 변호사 등의 전문적 업무까지 능숙하게 처리해 내는 현실이다.

머지않아 모든 수험생의 '로망'인 의사나 약사도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AI의 파도를 피하지 못할 거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웃픈' 비유일지언정, AI로 인해 '모두 백수가 되는 평등 세상'이 펼쳐질 거라고 확언하는 이도 있다. 업무 특성상 유불리를 따질 때가 아니란 이야기다.

AI가 인간의 모든 노동을 대체하고 생산성을 뛰어넘는 시대에 직면해 있다. 이젠 AI가 창출할 부가가치를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는 유한한 사회적, 경제적 가치를 구성원들에게 합리적으로 배분해야 하는 정치의 본령이자 교육에 주어진 역할이기도 하다.

무기력한 아이들을 돌보는 게 급선무

교육은 무기력한 아이들을 양산해 온 낡은 방식에서 벗어나 정치의 본령을 뒷받침해야 한다. 아이들이 관심을 학교 밖으로 넓히고, 사회적 이슈를 두고 친구들끼리 대화를 나누고, 교사들과 토론도 벌이며 '지적 영토'를 넓혀야 한다. 단순히 암기한 지식은 더 이상 쓸모가 없다.

맹목적으로 혼자 공부하는 습관에 길들어진 아이라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SNS에 매몰되기도 쉽다. 반대로, 친구들과 함께 운동하는 걸 좋아하거나 대화와 토론을 즐기는 아이는 자극적인 글과 영상에 쉽게 휩쓸리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탄탄해진 '마음의 근육' 덕분이다.

학창 시절 내내 시험공부 외엔 모두 '악'이라고 교육받은 아이들에게 SNS는 유일한 친구이자 놀이터가 됐다. SNS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사람 친구'조차 SNS를 통해 사귄다. 손에 스마트폰이 없으면 종일 안절부절하고, 심지어 식사할 때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맑은 영혼을 먹잇감 삼는 SNS의 온갖 저질 콘텐츠에 아이들이 하염없이 고꾸라지고 있다. 스마트폰만 보고 있으면 배고픔도 잊게 된다는 경우도 있다. 이는 자극적인 소재로 역사 왜곡과 폄훼를 일삼는 가짜 뉴스에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이 양산되는 토양이다.

지금 여기서 끊지 않으면 더 큰 화가 되어 우리 사회를 덮칠 것이다. 듣자니까, 요즘 고등학생들의 심화 수학과 과학 등 이공계 과목 기피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고 한다. 반도체 산업의 장기 호황에 대비하여 대입과 고등학교의 선택 교과부터 손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교사들은 "뭣이 중헌디"하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공부를 재정의하고 교육의 패러다임을 변혁해야 할 'AI의 시대'에 이른바 '사탐런'과 '확통런'에 뭇매를 가하는 모습이 생뚱맞기까지 하다. 학교 교육을 대입 준비와 동일시하는 현실은 이렇듯 고래 심줄보다 질기다.

정책을 입안하는 교육 전문가와 관료들에게 진심으로 부탁한다. 부디 발품을 팔아 전국의 학교 현장을 찾아 교사와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길 바란다. 매번 논문과 통계자료에 의존하고 유력 정치인들의 입김에 휘둘리다 보니, 교육개혁의 배는 산으로 가는 일이 반복됐다.

요컨대, 공부밖에 할 줄 모르는 아이들의 강퍅하고 이기적인 심성부터 바루어야 한다. 종일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 빠져 끼니도 놓치고, 더불어 사는 법을 잊어버린 그들의 무기력한 삶을 돌보는 게 급선무다. 그것이야말로 'AI의 시대'를 대비하는 기성세대의 도리일 것이다.

#밥상머리교육#AI시대#SNS#교육개혁#이공계기피현상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재

아이들은 나의 스승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독자의견3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