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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최북단 백령도 앞바다. 새벽 안개가 서서히 걷히자 고요하던 바다 위로 거대한 중장비의 굉음이 울려 퍼진다. 크레인이 바닷속 줄을 천천히 끌어올리는 순간, 검은빛 다시마 더미가 물보라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길이 6m의 초대형 다시마다. 일반 양식 다시마보다 몇 배는 크고 무거운 탓에, 수확철이 되면 백령도 바다는 중장비가 오가는 거대한 '바다 작업장'으로 변한다.
파도와 기계 소리가 뒤섞인 그 현장 한가운데서 한 어부가 크레인을 능숙하게 움직인다. '다시마의 아버지'라 부르는 장태헌(73) 씨다. 수십 년 동안 거친 백령도 바다를 연구하며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슈퍼 다시마'를 길러낸 주인공이다. 그의 삶은 곧 백령도 다시마의 역사이자, 바다와 함께 버텨온 한 어민의 발자취다.

▲장태헌 씨가 직접 크레인을 운전하며 다시마 작업을 하고 있다. 거친 바다 현장에서도 수십 년 경력의 손길로 다시마 양식과 수확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 진재중
백령도 냉수대가 키운 '바다의 불로초'
인천 백령도 바닷속에는 '바다의 검은황금'이라 불리는 다시마가 자라고 있다. 진시황이 불로장생을 꿈꾸며 찾았다는 전설처럼 다시마는 오늘도 거친 파도를 견디며 백령도 바다를 묵묵히 지켜내고 있다.
"다시마는 단순한 해조류가 아닙니다. 바다를 살리고, 어민을 살리고, 섬을 살리는 생명입니다."
장태헌 씨는 두 손으로 거대한 다시마를 번쩍 들어 올리며 환하게 웃었다. 백령도 바다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그의 목소리에는 깊은 자부심이 묻어났다. 그것은 '다시마 아버지'라 불리는 그의 첫인사이자, 평생 바다와 함께 살아온 한 어민의 진심이었다.

▲‘바닷속의 검은 황금’이라 불리는 슈퍼 다시마를 수확하고 있다. 거대한 다시마 숲은 풍부한 해양 생태와 미래 해조류 산업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 진재중
백령도 서해 최북단 냉수대가 만든 다시마 산업의 기반
"백령도는 다시마의 고향입니다. 다시마가 자라기에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춘 바다예요."
장태헌 씨는 백령도 앞바다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의 시선 끝에는 수십 년 동안 삶을 함께해 온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냉수대 영향 때문에 연중 수온이 낮고, 영양염도 풍부합니다. 다시마 같은 냉수성 해조류가 자라기에는 최적의 환경이지요."
백령도는 차가운 해류와 풍부한 영양염이 만나는 한반도 서해의 끝자락이다. 거친 파도와 차가운 물살 속에서도 다시마가 안정적으로 자랄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37년 동안 다시마만 연구하며 살아온 그는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종묘 배양 기술을 확보했고, 마침내 사람 키의 3배를 훌쩍 넘는 '슈퍼 다시마'를 길러냈다. 그의 연구와 노력은 백령도 다시마 산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냈다. 이제 백령도 다시마는 단순한 지역 특산물을 넘어, 국내 해조류 산업의 미래이자 해양 생태 복원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바다는 단순히 다시마를 키우는 곳이 아닙니다. 바다 생태계를 살리고, 어민들의 삶을 지켜주는 생명의 바다입니다."
장태헌 씨의 말에는 평생 바다를 지켜온 한 어민의 자부심과 책임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장태헌 회장이 백령도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그는 다시마 양식으로 어민들의 삶을 지키고 바다 생태를 되살리는 데 힘쓰고 있다. ⓒ 진재중
"서울로 가고 싶었다"… 밴드 청년의 추락
장태헌 씨는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바다 일을 거들며 자랐지만, 마음 한편에는 늘 육지에 대한 동경이 자리하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그는 곧바로 서울로 올라갔다. 젊은 날의 꿈은 음악이었다. 보컬그룹을 결성해 리드싱어로 무대에 서며 전국을 돌았고, 음악 속에서 뜨거운 청춘을 보냈다. 하지만 서른 살 무렵, 그의 인생은 예상치 못한 사고 앞에서 멈춰 섰다. 잠시 고향 백령도에 내려왔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척추를 크게 다친 그는 결국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다. 차가운 병실 침대에 누운 채, 그는 매일 같은 기도를 되뇌었다.
"다시 걸을 수만 있다면, 남은 삶은 섬과 어민들을 위해 바치겠습니다."
그 기도는 단순한 소망이 아니라, 이후 그의 삶을 바꾸는 약속이 되었다.
간절한 기도가 닿았던 것일까. 어느 날부터 그는 다리에서 희미한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움직일 수 없을 것 같던 몸도 조금씩 반응하기 시작했고, 절망 속 병상에 누워 있던 그는 반년 만에 마침내 병원을 나설 수 있었다.
하지만 퇴원 후의 삶은 이전과 전혀 달라져 있었다. 사고 이전의 장태헌이 음악과 무대를 꿈꾸던 청춘이었다면, 다시 일어선 그는 삶의 의미를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던 그의 눈에 '어업인 후계자 지원 사업'이 들어왔다. 그는 결국 다시 바다를 선택했다.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익숙하게 배웠던 물질과 잠수는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거친 바다였지만, 그에게 바다는 다시 살아갈 이유이자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다.
"어릴 때부터 잠수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전국의 바다를 돌아다니며 직접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새로운 인생은 그렇게, 다시 바다에서 시작됐다.

▲장태헌 씨가 현미경으로 다시마 생태를 관찰하고 있다. 작은 포자 하나까지 직접 연구하며 건강한 다시마 종묘 생산과 바다 생태 복원에 힘쓰고 있다. ⓒ 진재중
"잡는 어업으론 못 버틴다"… 다시마에 인생을 걸다
수년간 전국의 바다를 누비며 경험을 쌓은 장씨는 결국 한 가지 현실과 마주하게 됐다. 남북 접경지역인 백령도 어민들의 삶은 늘 안보 상황에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조업 구역은 제한됐고, 어획량은 해마다 불안정했다. 여기에 무분별한 남획까지 이어지며 전복과 해삼 같은 주요 수산자원이 빠르게 고갈돼 갔다. 어민들의 삶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그는 더 이상 기존 방식으로는 백령도의 바다와 어민을 지킬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잡는 어업이 아니라 기르는 어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장태헌씨는 어민들을 설득했다. 그의 진심은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주민들의 지지를 받아 어촌계장에 선출됐다. 이후 그는 어촌계 양식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며 공동조업·공동출하·공동분배 제도를 정착시켰다. 어민들이 함께 생산하고 함께 수익을 나누는 새로운 방식이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한국농어촌청소년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89년, 그는 다시 한 번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국립수산진흥원 인천지원(현 국립수산과학원 서해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백령도에서 다시마 양식을 시작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주변의 반응은 냉담했다. "서해에서 무슨 다시마냐"라는 비웃음과 회의적인 시선이 뒤따랐다. 하지만 장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백령도 바다를 집요하게 연구했다.

▲다시마 채묘장에서 조기묘 생산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가느다란 종묘 줄마다 미래의 바다숲을 키워낼 생명이 자라고 있다. ⓒ 진재중
백령도 냉수대가 키운 6m 초대형 다시마, 연구의 결실이 되다
"처음 시작할 때는 가진 것도, 정해진 방법도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백지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더 많이 부딪히고 더 많이 실험해야 했습니다. 기존의 틀에 기대기보다 현장에서 직접 확인하고, 실패하면 다시 원인을 찾고, 또 새로운 방법을 시도했습니다."
어떤 날은 작은 변화 하나를 확인하기 위해 몇 달을 기다리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를 마주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과정 자체가 연구였고 배움이었다.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하나씩 실험하고 연구해 나갔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시작했기에 오히려 더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었고, 그 안에서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지금의 결과들은 하루아침이 아니라 수많은 시행착오와 현장의 경험들이 쌓여 나왔다.
마침내 그는 백령도 바다가 품고 있던 결정적인 가능성을 발견했다. 백령도는 서해 냉수대의 영향을 직접 받는 해역이었다. 연평균 수온은 약 12.5℃에 머물렀고, 대부분의 계절에도 4~22℃ 범위를 유지했다. 이는 냉수성 해조류인 다시마가 자라기에 가장 이상적인 조건이었다. 여기에 풍부한 영양염까지 더해지며 다시마 양식의 최적지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장태헌 씨는 오랜 연구 끝에 확신을 품게 됐다. 그리고 그 확신은 곧 놀라운 결과로 이어졌다.
양식을 시작한 지 2년 만인 1992년, 백령도 바다에서 길이 6m, 폭 60cm에 달하는 초대형 다시마가 자라난 것이다. 일반 다시마보다 두 배 이상 큰 거대한 다시마였다. 사람들은 그것을 '슈퍼 다시마'라고 불렀다. 장씨는 자신의 키 170cm의 3배를 훌쩍 넘는 다시마를 처음 마주했던 순간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그동안의 고생이 모두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수년간 차가운 바다를 연구하며 버텨온 시간들이 마침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그날 바다 위에서 몰래 눈물을 흘렸습니다. 수년 동안 이어온 연구와 노력이 드디어 빛을 보는 것 같았죠."
장태헌 씨는 초대형 다시마를 처음 마주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조용히 웃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실패와 시행착오의 시간도 있었다. 수없이 바다를 드나들며 다시마의 생장 조건을 연구했고, 종묘 배양 방법을 반복해 실험했다.
"수없이 실패하고 다시 도전한 끝에 최소 2주 안에 종묘를 안정적으로 배양할 수 있는 기술까지 만들어냈습니다."
그의 집념은 결국 결실을 맺었다. 백령도 바다는 사람 키를 훌쩍 넘는 '슈퍼 다시마'가 자라는 곳으로 변했고, 작은 섬마을은 국내 다시마 산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현장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장태헌 씨가 2년산 다시마를 살펴보고 있다. 오랜 연구와 경험으로 길러낸 대형 다시마는 백령도 해조류 산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 진재중
동생의 죽음, 태풍… 그래도 바다로 갔다
성공의 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거친 바다는 그에게 여러 번의 깊은 시련을 안겨주었다. 1996년 가을, 함께 바다를 지켜오던 동생이 해수 취수구를 점검하던 중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잠수복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차가운 바다에 들어갔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장씨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아픔으로 남았다.
2000년에는 거대한 태풍이 백령도를 덮쳤다. 수년 동안 공들여 만든 다시마 양식 시설은 하루아침에 산산조각 났다. 바다 위에 세워 놓았던 삶의 터전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바다로 나간 장태헌씨는 태풍에도 견딜 수 있는 새로운 양식 구조를 직접 구상하기 시작했다. 부잣줄에 회전 고리를 설치해 파도 방향에 따라 시설이 스스로 움직이도록 만들었고, 줄 길이를 늘려 양식장을 더 깊은 수심 아래로 내리며 다시마 손상을 최소화했다. 수많은 실패 끝에 만들어낸 그의 방식은 결국 거친 백령도 바다를 견디는 새로운 다시마 양식 기술로 자리 잡았다.

▲백령도 바다 한가운데 다시마 양식장에서 장태헌씨가 어선 위에 올라 작업하고 있다. ⓒ 진재중
백령도에서 완성된 '슈퍼 다시마', 전국으로 퍼지다
연구실 앞에는 국수 가락처럼 길게 늘어진 하얀 줄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걸려 있다. 바다 생명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다시마 종묘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을 극복한 그는 우량 종묘 생산에 성공했으며, 현재 배양장에서 매년 약 1만 6천 틀 규모의 다시마와 미역 종묘를 생산하고 있다. 이곳에서 생산된 조기산 우량 종묘는 완도, 진도, 기장 등 전국 주요 해조류 양식지에 공급되며 국내 해조류 산업의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다. 특히 조기산 종묘의 생산에 차질이 생기거나 공급이 감소·지연될 경우, 남해안 다시마 생산의 품질과 생산량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그는 막중한 책임감과 함께 사명감을 갖고 종묘 생산에 임하고 있다.

▲국수 실타래처럼 가느다랗게 늘어진 다시마 종묘가 배양장 안에 걸려 있다. 작은 포자에서 시작된 생명은 미래의 거대한 바다숲으로 자라난다. ⓒ 진재중
다시마가 바다를 살렸다
장태헌 씨가 만들어낸 것은 단순한 다시마 상품이 아니었다. 백령도 바다에 다시마 양식이 정착되자 포자들이 주변 해역으로 자연스럽게 확산하기 시작했고, 바닷속에는 거대한 다시마 군락이 형성됐다. 생명력을 잃어가던 해저에는 다시 활기가 돌았고 전복과 해삼을 비롯한 다양한 어종들이 다시마숲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다시마는 단순한 수산물이 아니라 해양 생물들의 먹이가 되고, 몸을 숨기며 살아가는 바다 생태계의 터전이 된다. 장태헌 씨는 "다시마 양식이 자리 잡은 뒤 백령도 바다 생태 환경도 함께 살아나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다시마숲 주변에 다양한 어류와 해양생물이 돌아왔고, 그 먹이사슬을 따라 천연기념물인 점박이물범까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사람의 손으로 시작된 다시마 양식이 이제는 서해에 새로운 생명의 숲을 만들어내며 해양 생태 복원의 상징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백령도 다시마 숲 주변으로 다양한 해양 생물들이 모여들고 있다. 풍부한 먹이와 서식 환경이 형성되면서 점박이물범까지 찾아오는 생명의 바다가 만들어지고 있다. ⓒ 진재중
다시마 아버지, 서해의 평화를 말하다
장태헌 씨는 평생 백령도 바다를 지켜온 어민이자, 서해를 지키는 사람이다. 그는 단순히 다시마를 키우는 어업인이 아니라, 북한과 맞닿은 서해 최전선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온 인물이다. 현재 백령도선주협회장과 서해5도어민연합회장, 서해5도평화운동본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그는 늘 "서해의 평화는 곧 주민들의 생존 문제"라고 말해왔다.
북한과 불과 17㎞ 떨어진 백령도에서 어민들은 언제나 긴장 속에 살아간다. 조업 제한과 군사적 대치, 반복되는 안보 위기 속에서 생계를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장 회장은 이러한 현실 속에서 어민들의 불안과 고통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최근 불거진 이른바 '북풍 공작' 의혹에 대해서도 그는 깊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장 회장은 한 인터뷰에서 "권력 유지를 위해 주민들의 목숨까지 이용하려 했다는 생각에 분개를 넘어 허탈함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이어 "백령도 주민들에게 서해의 평화는 선택이 아니라 삶 그 자체"라며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을 막고 항구적인 평화가 반드시 구축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에게 바다는 단순한 생계의 공간이 아니다. 다시마를 키우고 바다숲을 복원해 온 시간처럼, 사람들의 삶과 공동체를 지켜내는 터전이다. 장 회장은 오늘도 백령도 바다 위에서 어민들의 삶과 서해의 평화를 함께 지켜내고 있다.

▲길이 6m가 넘는 초대형 다시마를 중장비로 수확하고 있다. 거대한 규모로 자란 다시마는 백령도 해조류 산업의 성장 가능성과 풍부한 바다 생태를 보여주고 있다. ⓒ 장태헌
백령도 다시마, 동해 바다에 뿌리내리다
그의 도전은 백령도 바다에만 머물지 않았다. 장태헌 회장은 2017년 강릉원주대학교 다시마협의체 활동을 통해 백령도 다시마를 동해안에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양양군 수산 앞바다에 옮겨 심은 다시마는 이듬해 길이 5m 이상 자라며 뛰어난 생육 상태를 보였다. 백령도에서 자란 다시마 포자가 동해안에서도 충분히 적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다.
실험은 현재진행형이다. 장 회장은 2024년에도 양양 광진리 앞바다에 백령도 다시마 포자를 다시 이식했고, 이 역시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 그는 서해와 동해를 잇는 다시마 숲 조성을 통해 바다 생태계 복원 가능성을 넓혀가고 있다.
서해안뿐만 아니라 동해안에도 백령도 다시마포자를 이식하면 바다숲을 조성하는데 문제가없다는 것을 실증했다. 동해안 해조 생태 복원에도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수산항 앞바다에 2018년 백령도 다시마 포자를 이식한 뒤 5개월 만에 성장한 다시마다. 서해 포자가 동해 바다에서도 안정적으로 자라며 새로운 바다숲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 진재중
다시마로 남북 교류의 장을 펼치다
"해조류를 통해 남북 간 경색된 관계의 돌파구를 찾아야 합니다."
장태헌 회장은 해조류 산업과 해양 생태 협력이 남북 교류와 화해를 이끌 수 있는 현실적인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치와 이념을 넘어 바다를 매개로 한 지속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해조류가 남북 관계 개선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장 회장은 북한 황해도 옹진군에서도 다시마 양식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설명하며, 과거 통일부와 함께 남북 간 다시마 기술 교류를 추진했으나 정권 교체로 무산됐던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이를 통해 해조류 산업이 오래전부터 남과 북을 잇는 실질적인 협력과 교류의 연결고리 역할을 해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백령도 서해 바다에서 시작된 다시마 포자가 동해안에서도 안정적으로 성장한 사례를 언급하며, 바다 생태계는 행정 경계를 넘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해조류가 정치와 이념을 넘어 남과 북이 자연스럽게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자원이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교류가 멈추더라도, 해양 생태 복원과 바다숲 조성이라는 공동의 과제만큼은 지속적인 협력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해조류를 중심으로 한 해양 생태 협력이 남북 교류의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공감대도 점차 확산하고 있다.

▲장태헌 회장이 강릉에서 열린 한반도해조류포럼 준비모임에 참석해 해조류 산업과 해양 생태 복원 방안에 대해 말하고 있다. ⓒ 진재중
"서해5도 해조류 연구소가 필요합니다"
장 회장은 이제 바다를 넘어 미래를 이야기한다. 그는 북한과 생태계가 연결된 서해5도 해양자원을 체계적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겐트대학교 글로벌캠퍼스토론회에서도 "서해5도 해조자원 연구소 설립"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원도와 남해에는 연구소가 있는데 정작 북한과 가장 가까운 서해5도에는 없습니다."
그가 연구소 설립을 주장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기후변화로 어장이 북상하는 상황에서 냉수성 해조류 연구는 미래 식량과 산업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며, 특히 비교적 수온이 안정되어 있는 백령도에서 바다를 이용한 다시마 연구 시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세계 해조류 시장 규모는 수조 원대에 이른다. 그는 백령도가 단순한 섬이 아니라 미래 해양산업의 전진기지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백령도 어민들이 바닷바람 아래 ‘슈퍼 다시마’를 말리고 있다. 백령도 다시마는 지역을 대표하는 해조류 자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 장태헌
"명맥이 끊길까 그게 제일 걱정입니다"
37년 동안 오직 다시마 한 길만 걸어온 장태헌 회장에게도 여전히 남아 있는 고민이 있다. 바로 바다를 이어갈 사람들, 후계자의 부재다. 수많은 실패와 연구 끝에 서해의 차가운 바다에 다시마 숲을 일궈냈고, '바닷속의 검은 황금'이라 불리는 새로운 산업의 가능성까지 만들어냈지만 정작 그 길을 이어갈 젊은 어업인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장 회장은 조용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슈퍼 다시마를 지역의 대표 산업으로 키워야 하고, 연구도 계속 이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가장 걱정되는 건 바다를 지킬 젊은 사람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의 고민은 단순히 한 사람의 후계자를 찾는 문제가 아니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어촌의 미래 그리고 수십 년 동안 축적해 온 해조류 기술과 경험이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느냐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지금도 그는 바다에서 직접 다시마를 살피고 연구를 한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언젠가 누군가 이 바다를 이어받아 더 큰 미래를 만들어주길 바라는 간절한 바람이 자리하고 있다.
바닷속에서 흔들리는 다시마 숲은 단순한 해조류 군락이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37년 세월이자, 서해를 살려낸 기록이며, 앞으로 누군가 반드시 이어가야 할 미래의 자산이다.

▲백령도 바다 속에서 다시마가 물결 따라 넘실거리고 있다. 바다에 생명을 불어넣는 거대한 다시마 숲은 해양 생태계를 살리는 생명의 터전이 되고 있다. ⓒ 진재중
바다를 살려낸 사람의 끝나지 않은 도전
백령도 바닷속에서는 오늘도 '바닷속의 검은 황금'이라 불리는 다시마가 깊은 물결을 따라 흔들리고 있다. 그 거대한 해조 숲 한가운데에는 여전히 장태헌이라는 이름이 묵묵히 서 있다.
수십 년 동안 바다를 떠나지 않았던 그의 집념은 생명력을 잃어가던 서해 바다를 다시 살아 숨 쉬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를 어민이라 부르고 연구자라 말하지만, 백령도 사람들에게 그는 단순한 직업 이상의 존재다. 사라질 뻔했던 다시마의 가능성을 끝까지 붙들고, 바다를 다시 일으켜 세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거센 파도와 차가운 바람, 반복되는 실패와 긴 시간을 견디며 그는 끝내 백령도에 거대한 다시마 숲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제 그의 시선은 단순한 양식을 넘어 더 먼 미래를 향하고 있다. 식량과 에너지, 바이오 산업의 가능성을 품은 해조류를 그는 '바닷속의 반도체'라 부르며 새로운 산업의 길을 준비하고 있다.
오늘도 장태헌 회장은 백령도의 바다를 바라본다. 물결 따라 흔들리는 다시마 숲 사이로 그는 또 다른 미래의 씨앗을 심고 있다. 백령도의 바다를 다시 일으켜 세운 사람. 그리고 지금도 바다의 미래를 향해 걸어가는 사람. '다시마의 아버지' 장태헌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장태헌 씨가 직접 길러낸 ‘슈퍼 다시마’를 살펴보고 있다. 수십 년 동안 백령도 바다를 연구하며 개발한 대형 다시마는 서해 해양 생태 복원과 국내 해조류 산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 장태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