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쥐똥나무쥐똥나무는 매연, 먼지, 건조 같은 도시 환경에 잘 적응한 나무다. 도로변이나 아파트 단지, 학교, 공원에 생울타리로 심어진다. 크게 자라기보다 촘촘하게 가지를 뻗어 경계를 나누거나 시선을 가리는데 알맞다. 꽃 향기는 진하고 깊어 간혹 걸음을 멈추게 한다. ⓒ 신극채
어느덧 5월 중순을 지나 봄의 끝자락에서 여름이 시작되는 길목에 와 있다. 짙어가는 녹음이 눈길을 끄는 계절이지만 눈보다 코가 먼저 반응하는 순간이 있다.
출퇴근길에 걷는 길가나 아파트 사잇길에서 은은한 꽃향기를 마주치곤 한다. 얼마 전까지 들판을 채우던 아까시나무꽃의 싱그러움과 라일락꽃의 달콤함을 섞어 놓은 듯한 향기다. 이 향기는 그냥 지나치려던 걸음을 멈추게 하고 어디서 오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만든다.
향기가 시작되는 곳을 찾아보면 대개 쥐똥나무가 있다. 들길이나 산길이라면 이맘때 향기의 출발점은 찔레꽃이겠지만 도심이라면 쥐똥나무일 확률이 높다. 초록색 잎사귀 사이사이에 자잘한 하얀 꽃들이 손가락 길이만 한 줄기에 무리 지어 피었을 뿐 특별히 화려하지도 않다. 길가에 나지막하게 줄지어 선 모습은 소박하기까지 해서 그냥 지나칠 수도 있다.
멀리까지 잔잔하게 퍼지는 향기도 좋지만 가까이 다가섰을 때 진가를 드러낸다. 한 발 앞에 서면 어떤 명품 향수보다 부드럽고 깊은 향이 풍긴다. 많은 꽃이 뭉쳐 피어 향기가 짙은가 싶지만, 꽃송이 하나를 조심스레 떼어 코끝에 가져가 보아도 그 깊이는 줄어들지 않는다.
이렇게 감미로운 향기를 맡고 나면 의아한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왜 이런 향기를 품은 식물에 쥐똥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실제로 우리나라 식물에는 동물의 배설물에서 이름을 따온 것들이 제법 있다. 개똥쑥이나 노루오줌, 여우오줌, 말오줌나무 같은 이름이 그렇다. 이들은 대체로 잎이나 뿌리 등 식물체에서 풍기는 냄새가 비릿하거나 역한 편이다. 계요등 또한 잎에서 나는 닭오줌 냄새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알려졌다.
쥐똥나무 이름의 비밀
쥐똥나무는 좀 다르다. 이름에 배설물이 들어가지만 어디에서도 불쾌한 냄새가 나지 않는다. 꽃향기는 뒤를 돌아보게 할 만큼 향긋하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이름을 얻게 되었을까.
이유는 냄새가 아닌 열매의 모양에 있다. 여름에 꽃이 지고 나면 콩알만 한 열매가 맺힌다. 초록색에서 가을이 깊어질수록 점차 까맣게 익어간다. 잎이 떨어진 겨울에도 가지에 남는다. 그 모양과 색상이 쥐의 똥을 영락없이 닮았다.

▲쥐똥나무 열매가을이면 둥근 열매가 까맣게 익어간다. 이 열매 모양이 쥐의 배설물을 닮아 쥐똥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 열매는 가을과 겨울에 새들의 먹이가 된다. ⓒ 신극채
쥐똥나무는 꽃이 화려하고 향이 넘치는 순간이 아닌 겨울에 잎이 다 떨어진 가지에 매달린 까맣고 작은 열매를 포착해 이름을 지었다. 직관적이고 해학적이다. 하지만 억울할 법도 하다. 향나무나 향유, 서향, 백리향처럼 향기를 내세운 이름도 있으니 더욱 그렇다. 쥐똥나무는 좋은 향기를 두고도 하필 쥐똥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이름 탓에 오해와 편견을 감내하는 얄궂음이랄까.
이름 때문은 아니겠으나 실제로 쥐똥나무는 꽃밭이나 정원의 중심에 심어져 주목받는 식물이 아니다. 대개 도로변에서 매연을 정면으로 맞는 가로수 옆이나 아파트 단지에서 경계를 나누는 산책로의 울타리, 학교나 공원 주변의 낮은 담장 역할로 심어진다. 주인공이 아니라 생울타리로 공간을 나누고 막아주는 조연에 가깝다.
그럼에도 도심 곳곳에 심긴 이유가 있다. 강인한 생태적 특성 덕분이다. 도시의 매연과 대기오염을 잘 견디고 추위도 강하다. 또한 울타리 모양으로 다듬기 위해 가지를 잘라내는 가위질에도 새로운 가지를 내는 재생력도 지녔다. 이름은 서운할 만큼 투박하고 자리도 조연일 뿐이지만 도시의 거친 환경을 견디며 우리에게 푸른 여유를 가져다준다.
나비와 벌의 바쁜 날갯짓과 거미의 숨죽인 순간
우리에게만 고마운 존재도 아니다. 주변 작은 동물에게는 삶터가 되어준다. 지난겨울에는 잎이 떨어진 쥐똥나무 사이에서 비어 있는 새둥지를 보았고, 가지에 매달린 열매를 따 먹는 비둘기도 본 적이 있다.
엊그제는 향기를 따라 온갖 벌들이 찾아와 분주히 날아다녔다. 오늘은 이르게 퇴근하는 길에 다시 쥐똥나무 곁을 지나왔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제비나비 한 마리가 꽃을 옮겨 다니며 꿀을 빨았다. 향기에 취했는지, 꿀맛에 반했는지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는데도 꽃 속에 빠져 곧장 날아가지 않았다. 작은 흰 꽃들 사이에서 커다랗고 검은 날개를 너울거리는 광경에 넋을 잃었고 시간은 늦춰졌다.
하지만 쥐똥나무가 품은 작은 생태계가 늘 향기롭고 평화롭지만은 않다. 나비의 몸짓에 집중하다 시선을 조금 아래로 돌리자, 초록 잎사귀에 앉아 있는 거미가 보였다. 꽃을 찾아 날아든 곤충들을 노리며 미동도 하지 않고 숨어 있었다. 가장 원초적인 약육강식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오늘 출퇴근길에 마주한 쥐똥나무는 이름에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로 향기로웠으며 다른 생명에게는 삶터를 내어주고 있었다.

▲쥐똥나무는 생명들의 삶터1. 쥐똥나무 가지는 조밀하고 은밀하여 둥지를 틀기에 알맞다.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느라 바빴으나 이제는 비었다. 2. 쥐똥나무 열매는 겨울철에 새들에게 요긴한 먹이가 된다. 3. 여러 종류의 벌들이 왔다. 꿀을 빨면서도 뒷다리에는 꽃가루 경단을 통통하게 매단 채 이 꽃 저 꽃을 부지런히 오갔다. 4. 꽃에 찾아온 곤충들을 노리며 '아기스라소니거미'가 매복 중이다. ⓒ 신극채

▲쥐똥나무에 날아든 제비나비제비나비 한 마리가 쥐똥나무 꽃에 내려앉았다. 작은 꽃송이들을 옮겨 다니며 부지런히 꿀을 빨았다. 한 동안 머물다 허기를 채운 뒤에야 날아올랐다. 나도 그 자리를 쉽게 떠나지 못했다. ⓒ 신극채
이름 뒤에 숨겨진 진짜 가치
향기와 삶을 품은 쥐똥나무를 한동안 들여다보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천천히 걸으며 이 나무를 주제로 기사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다 기사 하단에 적힐 내 이름 석 자가 떠올랐다. 흔하지 않은 데다 한 번에 정확하게 알아듣기 어려운 이름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며 자랐다.
어릴 적에는 이 특별한 이름이 부담스러웠고 짓궂은 놀림이 되기도 했다. 고등학생 시절, 국사 선생님이 출석을 부르다가 독립운동가 신채호 선생과 비슷하다며 치켜세워준 적이 있었다. 그 뒤로 조금 나아졌지만 남들의 시선이 한 번 더 머무는 것은 여전히 부담되었다. 오랫동안 내 이름에 애착을 갖지 못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다. 남들과 다른 유일무이한 이름이라 불편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더 또렷하게 기억되게 하는 특별함이기도 했다. 직장을 은퇴하고 나를 알려주던 명함이 사라진 뒤에도 이름만으로 나를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 또한 괜찮은 일이라고 여겼다.
쥐똥나무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쥐똥이라는 어감이 주는 하찮음과 낯섦이 이름 뒤에 숨겨진 진짜 가치를 가리는 것 같지만, 어쩌면 강렬한 이름 덕분에 쥐똥나무를 더 궁금해 하며, 한 번 더 돌아보고, 끝내 잊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길가 가득 알 수 없는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힌다면 가던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자. 낮은 울타리 속에서 자잘한 흰 꽃이 피어 있다면 다가서서 숨을 들이켜보자. 향기만큼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