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18일 5.18 광주민주화운동 46주년 기념식이 도쿄 신주쿠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특별강연을 맡은 마나베 유코 도쿄대학 교수.
지난 18일 5.18 광주민주화운동 46주년 기념식이 도쿄 신주쿠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특별강연을 맡은 마나베 유코 도쿄대학 교수. ⓒ 박철현

"일본은 죽은 이를 경시했고 기억하지 않았다. 일본과 한국의 결정적 차이였고, 지금 일본의 대세가 된 우경화도 결국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마나베 유코 도쿄대학 교수)

5.18 광주민주화운동 46주년 기념식이 지난 18일 일본 도쿄 신주쿠에서 열렸다. 재일코리안, 일본인, 뉴커머 등1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진행된 이번 기념식엔 이기헌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정광일 김대중재단 해외동포위원장 등 한국에서도 많은 인사들이 참여했다.

이기헌 의원은 인사말을 통해 "광주정신이 대한민국을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이끌었다"며 "앞으로는 남북관계 개선이 대한민국의 미래가 될 것"이라 주장했다.

AD
"알다시피 지금 남북관계는 역사상 최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북한은 헌법까지 수정해 사실상 한반도 2국가 체제를 선언했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일 수 있다. 마침 북한이 여자축구단을 한국으로 보냈다. 역대 최악이라는 남북관계인데 선수단을 보냈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북한 입장에선 2국가 체제니 오히려 거리낌이 없다.

하지만 그들을 환영하기 위해 수많은 한국인들이 공항에 모였다. 올가을에 있을 나고야 아시안 게임에선 여기 모이신 재일동포, 뉴커머 한국분들이 자발적으로 '원코리아 응원단'을 만들어 남북한 모두를 응원할 것이란 이야기를 들었다. 다시 한 발 한 발 차근차근 물꼬를 터야 하는데 그것을 위해 여기 모이신, 광주정신을 기억하고 계승하는 분들이 주축이 되어 움직이고 있다는 점,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응원합니다."

"광주정신이 모든 행동과 실천의 중요한 기준"

 지난 18일 5.18 광주민주화운동 46주년 기념식이 도쿄 신주쿠에서 열렸다
지난 18일 5.18 광주민주화운동 46주년 기념식이 도쿄 신주쿠에서 열렸다 ⓒ 박철현

한편 5.18광주민주항쟁의 세계연대를 구축해 온 정광일 위원장은 "5.18정신의 헌법전문 수록이 좌절된 것에 해외동포들의 아쉬움이 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뉴욕, 중국 북경, 필리핀 마닐라, 호주 시드니, 독일 프랑크푸르트, 브라질 상파울루 등 세계 주요도시 40여 곳에서 5.18기념식을 열어 광주정신을 되새겼다"라고 말했다.

1978년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사건 이후 근 50여년간 반국가단체로 지정돼 고통받고 있는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이후 한통련) 손형근 의장은 인사말을 통해 "광주 정신이 완성되기 위해선 국가보안법 폐지가 필요하다"라며 "국가보안법은 일본의 치안유지법을 본 따 만든 사상검열의 도구이자 인간존엄성을 파괴하는 악법"이라고 강조했다. 손 의장은 "민주정권이 들어서도 여권 발급도 안 되는 이런 상황이 조속히 개선되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희생자들을 위한 헌화에 이어 마나베 유코 도쿄대학 동양문화연구소 교수가 '광주민중항쟁이 조준한 식민지주의 – 도미야마 다에코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특별강연을 가졌다.

"도미야마 선생은, 아마 이름은 몰라도 그가 남긴 작품은 모두 한 번쯤은 보지 않았을까 한다. 1921년에 태어나 유년시절 만주로 건너가 일본제국주의에 강한 거부감을 느꼈고, 1950년대 탄광노동자, 1960년대 남미를 돌며 활동을 해 왔던 그녀에게 가장 큰 인생 전환점이 된 게 바로 1971년의 한국방문이었다.

그녀는 한국에서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하에서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 조작 사건의 당사자였던 서승과 김지하 시인을 만나 한국의 처절한 민주화 운동에 깊은 감명과 분노, 연대의식을 느꼈다. 그렇게 74년 출간된 <묶인 손의 기도>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매우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80년 광주민중항쟁이다. 광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녀는 바로 '쓰러진 사람들을 위한 기도 1980년 5월 광주'를 발표했고, 이후 전두환 정권을 끊임없이 비판함과 동시에 한국민주화운동을 일본에 알려 나갔다. 그로 인해 김영삼 정권이 들어설 때까지 15년 동안 한국 입국을 금지당하기도 했다."

마나베 교수는 "도미야마에게 5.18은 원점이자 기준이었다"며 "5.18을 중심으로 역사를 재해석, 재발견하고 식민지주의 실체를 고발해 나갔다"라고 역설했다.

"도미야마는 5.18을 겪으면서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식민주의가 초래한 사건이며 이와 같은 사건들이 앞으로 미얀마, 가자, 베네수엘라 등 전 세계 각지에서 일어날 것으로 전망했고 실제로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 또한 5.18은 한반도의 식민주의와 분단상황은 물론 일제강점기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됐다.

일례로 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 사회 내부에서 제주 4.3 사건이 처음 공론화 된 것은 1998년 5월 광주에서 열린 추도식이었다. 이후 여순사건 및 6.25 전쟁 당시의 양민학살, 나아가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등도 광주 정신을 올곧이 기억하고 두 번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선 안 된다는 양심적인 시민들에 의해 밝혀졌다. 즉 광주정신이 모든 행동과 실천의 중요한 기준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인터뷰에서 죽은 자에 대한 기억이 지금의 우리를 행동하게 만든다는 취지의 말을 했었다. 비슷한 의미로 나는 재작년 한국의 최고권력자인 윤석열씨가 선포한 비상계엄을 그토록 빠른 시간에 한국 시민들이 막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광주정신이 각자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라 말할 수 있고, 또한 이러한 정신이 한국뿐만 아니라 지금도 독재정권에 신음하고 있는 아시아 각국으로 퍼져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본다."

일본 사회가 우경화된 이유

 헌화하는 기념식 참석자들
헌화하는 기념식 참석자들 ⓒ 박철현

강연이 끝난 후 "한국과 비교해 일본 사회가 우경화된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마나베 교수는 즉답했다.

"죽은 자에 대한 기억을 일본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도 60년대 안보투쟁, 베트남 반전투쟁 등에서 수많은 사람들, 특히 학생들이 희생됐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을 잊었다. 추모하거나 기리지 않았을뿐더러 그들이 왜 자신의 생명까지 바쳐가며 싸웠는지 고찰하지 않았다. 고도성장 시기라 엄청난 경제성장으로 부유해진 것도 있다. 어쨌든 죽은 자를 기억하지 않았고, 그들에 공감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리 되어버린 것이다. 앞으로도 일본에 있어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실제로 그의 걱정이 현실이 되고 있다. 자민당이 주도하는 일본 개헌안은 9조의 폐기가 확실시된다. 일본 내각이 근 60여년간 비핵 3원칙(비보유, 비생산, 비반입)은 다카이치 내각에서 유명무실해졌고, 오히려 무기수출을 공언했다. 기념식은 성황리에 끝났지만 내내 마음이 편치 않다.

#518#자민당#미나베교수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박철현 (tetsu) 내방

2001년부터 도쿄거주. 소설 <화이트리스트-파국의 날>, 에세이 <이렇게 살아도 돼>, <어른은 어떻게 돼?>, <일본여친에게 프러포즈 받다>를 썼고, <일본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를 번역했다. 최신작은 <쓴다는 것>. 현재 도쿄 테츠야공무점 대표로 재직중이다.



독자의견2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