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를 앞두고, ‘불평등물어가는범청년행동’이 새 비전과 정책을 제시합니다. 3중 전환(인구·디지털·기후)과 3대 불평등(노동·주거·관계)을 교차한 9개 의제 칼럼을 연재합니다.
여느 비수도권 지역과 마찬가지로, 강원도 역시 청년이 떠나는 중입니다. 지난 1월 국가데이터처 가 발표한 '2025년 연간 국내인구이동통계 결과'에 따르면, 2025년에만 20·30대 인구 약 4200명(20대 3800명, 30대 400명) 빠져나갔죠. 거의 다 수도권으로 향했습니다. 그야말로 '탈강원'이 대세죠.
도내에서 그나마 인구가 늘고 있다는 원주도 실상은 중장년층이 유입될 뿐, 젊은 인구가 나가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발표된 '2025 원주시 사회조사 보고서'를 보더라도, '10년 이후에도 원주시에 계속 거주하겠다'는 질문에 10대 인구의 36.5%가 '그렇지 않다'고 답해, '그렇다(22.2%)'는 응답을 앞질렀습니다. 졸업하면 원주를 뜨는 것이 일종의 '기본값'인 셈이죠.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고, 문화예술 인프라도 열악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도 굳이 원주에 남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부터도 그렇습니다. 13년 전 처음 원주에 발을 디뎠을 때만 해도, 잠시 거쳐 가는 곳쯤으로 여겼습니다. 남들처럼 대학 졸업하면 당연히 원래 살던 수도권으로 되돌아갈 생각이었죠. 그런데 어쩌다 보니 아직도 원주를 벗어나지 못한 채 살고 있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눌러살 가능성이 큽니다.
토박이든 저 같은 외지 출신이든, 제 주변엔 '어쩌다 보니' 이런 경로를 밟고 있는 사람이 꽤 있습니다. 비슷한 처지의 지인들이 모여 이따금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우린 왜 원주를 떠나지 못하고 이러고 있을까? 결론은 늘 하나로 모입니다. 결국 "사람 때문에 남았다"는 것이죠.
사람 때문에 남아 지역의 매력에 스며들다
몇 년 전까지 원주에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역동적인 프로젝트가 활발히 진행됐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법정 문화도시 사업을 통해 각양각색 시민이 관계를 맺었습니다. 취미와 관심사를 공유하는 소모임부터 유휴 공간을 활용한 전시와 축제 기획, 원주의 숨은 매력을 발굴하는 마을 여행까지 다채로운 문화 기획이 도시 곳곳에서 펼쳐졌습니다.
2022년 기준 주도적으로 활동한 그룹 구성원이 808명에 달했고, 시민 14만 5천여 명이 참여했습니다. 시민 설문조사에서 83.4%가 문화도시를 통해 "원주의 도시 이미지가 향상됐다"고 답했죠.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원주는 전국 문화도시 중 '최우수'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2022년 4월 26일 문화도시 원주 거점 공간 옛 원주여고 진달래관에서 진행한 '아카데미 원탁회의: 100인 토크' ⓒ 아카데미의 친구들
뜻과 마음이 맞는 이들이 모여 함께 '작당모의'를 하며 쌓은 관계의 밀도는 생각보다 강력했습니다. 졸업 후 수도권에 취직하는 '정해진 트랙'에서 벗어나, 원주에서 뭔가 다른 길을 걸어보는 것. 그리고 작지만 단단한 커뮤니티를 형성해 서로 유대하는 삶은, 그 자체로 매력적인 선택지가 돼 주었습니다.
"사람 때문에 남았다"고 입을 모으는 제 주변 지인들은 대개 이 시기를 통과하며 원주에 정착할 결심을 굳혔죠. 솔직히 말해, 일자리의 양과 질, 그리고 인프라 측면에서 원주 같은 중소도시가 서울을 따라잡을 순 없을 겁니다. 그렇기에 서울이 대체할 수 없는, 원주만의 고유의 자원을 활용하고 관계망을 넓혀가는 과정이 필요하죠.
아카데미극장을 보존하고 싶었던 이유
아카데미극장을 보존하고자 치열하게 싸운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에서 원형을 간직한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으로, 원주시민의 추억과 정체성이 오롯이 새겨진 문화유산이었죠. 전국을 통틀어 오직 원주에만 있는 특별한 공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이곳이 시민 주도의 복합문화공간이자 새로운 커뮤니티 거점이 되길 바랐습니다. 영화 상영은 물론, 공연, 전시, 교육, 소모임 등 다채로운 실험이 이뤄지는 공간을 상상했죠.
7년 넘게 이어진 보존 운동에 다양한 세대가 참여해 극장의 미래를 함께 그렸습니다. 그 옛날 아카데미극장의 전성기를 경험해 보지 못한 청년들까지 적극적으로 힘을 보탠 건, 이 60년 역사의 단관극장이 우리의 '원주살이'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어줄 상징적 장소가 되리라는 걸 알았기 때문일 겁니다.

▲2023년 10월 30일 철거된 원주 아카데미극장 ⓒ 아카데미의 친구들
그런데 원주에 대한 애착과 정주 만족도를 높여온 이러한 활동이, 어떤 지자체장에겐 무의미하게 느껴진 모양입니다. 새로 취임한 시장은 '시민 주도성에 지나치게 매몰됐다'는 이유로 법정 문화도시 사업을 뒤집더니, '막대한 예산이 든다'며 아카데미극장까지 철거했습니다. 지역 고유의 자원을 바탕으로 형성한 무형의 커뮤니티는, 경제적 잣대로 측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쉽게 무시됐죠.
대신, 여느 지자체와 마찬가지로 대형 공연장, 일회성 축제, 하드웨어 중심의 관광 콘텐츠로 문화 정책이 급변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상징하듯, 아카데미극장이 무너진 자리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야외공연장이 들어섰죠. 그리고 "수도권 원주 시대를 열겠다"는 구호 아래 GTX, 광역철도 등 대규모 SOC 사업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수도권 접근성을 개선해 외부 인구 유입을 이끌겠다는 구상이죠.
'작은 서울'이 되면 청년이 지역에 남을까?
'수도권 원주 시대'란 슬로건은 참 유혹적입니다. '서울 공화국'을 살아가는 비수도권 시민들의 욕망을 자극합니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추진하는 정책을 보면, 결국 원주를 '작은 서울'을 만들겠다는 것처럼 보입니다. 원주만의 매력과 다양성이 사라지고, 그저 서울의 하위 호환으로 동질화한다면, 청년이 굳이 지역에 남아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는 언제부턴가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이 '지역에 사는 사람'보다 '지역 밖에 있는 사람'에게 더 신경 쓴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대규모 SOC와 인프라도 중요하지만, 오직 원주에서만 보고 만날 수 있는 지역 고유의 자원과 관계를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도 함께 가야 하지 않을까요? 어김없이 '작은 서울'을 꿈꾸는 공약들이 눈에 띄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후보들이 "사람 때문에 지역에 남았다"는 청년들의 말 속에 담긴 의미를 한 번쯤 곱씹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