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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기억을 데리고 온다. 뜨거운 햇살이 일궈낸 싱그러운 풀비린내, 밤공기에 섞인 풀벌레 소리까지, 일상의 소란 속에 잠들어 있던 추억의 태엽을 여름이 슬며시 감아 올린다. 그중에서도 내 마음의 문을 가장 먼저 두드리는 전령은 단연 뻐꾸기다. 나에게 그 소리는 단순한 새소리가 아니다. 그것은 오래된 기억의 태엽을 감는 소리다.
50여년 전 여름, 나의 일과는 쇠꼴 망태기를 어깨에 메고 소 한 마리 앞세워 비탈길을 오르는 것이었다. 소가 꼬리를 휘둘러 등 위의 등에를 쫓는 사이, 까까머리 소년은 입가에 침을 묻혀가며 산새와 화음을 맞췄다. 적막한 산등성이 너머로 "뻐꾹, 뻐꾹" 하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번져오면, 두 손을 모아 입에 대고 바람을 불었다.
엄지손가락 사이 작은 틈을 비집고 나간 바람이 "뻐꾹"하고 산울림이 되어 돌아온다. 그러면 산속의 진짜 뻐꾸기가 질세라 대답을 보탰다. 소는 한가롭게 풀을 뜯고, 소년은 뻐꾸기와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누며 여름날을 저물게 했다.
다시 두 손을 모으다

▲인공지능을 활용, 뻐꾸기와 대화를 하는 모습을 그렸다. ⓒ 이점록
세월은 참 많이 흘렀다. 소를 몰던 소년은 어느덧 흰머리가 어색하지 않은 60줄의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인생 후반전'이라는 낯선 경기장에 섰지만, 뻐꾸기 소리만 들리면 마음 한구석에서 그 소년이 뚜벅뚜벅 걸어 나온다.
요즘 우리 집 뒤 야트막한 산자락에도 나무들이 짙푸른 옷을 갈아입었다. 며칠 전부터 짝을 찾는 듯 애타고도 정겨운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홀린 듯 노트북 앞을 떠나 데크 난간을 잡았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두 손을 입가로 가져갔다.
"뻐꾹-"
찰나의 정적, 이윽고 저 멀리 짙푸른 상수리나무 우거진 어디 쯤에서 대답이 돌아온다.
"뻐꾹-"
그 짧은 화답에 심장이 툭 떨린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또 시작이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핀잔 섞인 웃음소리에도 나는 멈추지 않는다. 한참을 주고 받다가 내가 슬쩍 소리를 죽여 보았다. 산속의 뻐꾸기도 약속이나 한 듯 울음을 뚝 그친다.
"왜 갑자기 말이 없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녀석의 실루엣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듯하다. 참지 못하고 다시 소리를 내자, 기다렸다는 듯 녀석이 더 크게 목청을 돋운다. 종(種)을 넘어, 세월을 건너뛰어 안부를 묻는 비밀스러운 교신이다.
스마트폰 화면 속에는 세상의 온갖 소란이 가득하지만, 내 손바닥 안에는 오직 뻐꾸기 한 마리와 나만의 세상이 있다. 가난해서 가질 것이 없었기에 온 산과 들을 통째로 주머니에 넣고 놀았던 그 시절. 새소리 하나에 온 세상을 다 얻은 듯 깔깔 대던 소년의 순수함이 메마른 인생의 후반전의 가슴에 촉촉하게 스며든다.
가난했지만 즐거웠던 시절
곧 무더위가 들이닥칠 것이다. 선풍기 바람을 쫓고 땀을 훔치며 유난스러운 여름을 보낼 게 뻔하다. 하지만 괜찮다. 내게는 하던 일을 멈추고 두 손만 모으면 언제든 달려와 주는 소년과, 그를 반겨주는 숲 속 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산자락 어디선가 뻐꾸기가 운다. 나는 다시 노트북 앞에 앉는 대신, 뻐꾸기와 더 가까운 베란다로 나가 한 번 더 크게 숨을 불어넣는다. 여름은 그렇게 소리 없이, 하지만 선명한 울림으로 내 곁에 와 있다. 당신의 여름은 지금 어떤 소리로 부르고 있는가. 잠시 일손을 멈추고 두 손을 모아보아도 좋을, 참 좋은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