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이트진로 강원공장 전경. ⓒ 하이트진로
불법적인 '일감 몰아주기'로 오너일가의 경영권 승계를 도운 하이트진로가 대법원에서 최종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정작 민사상 배상 책임을 묻는 주주대표소송에서는 판결과 정반대되는 주장을 내놓아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이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졌던 박태영 하이트진로 사장은 원재료 매입 과정에 자신이 지배하는 회사인 서영이앤티를 끼워 넣도록 요구한 혐의가 인정돼 실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이번 주주대표소송에서는 "거래에 개입한 바 없다"며 기존 판결과 정반대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제개혁연대와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지난해 6월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 박태영 사장, 김인규 전 대표이사를 상대로 약 390억 원 규모의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다. 하이트진로가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약9년 동안 총수 일가가 지분 99% 이상을 보유한 서영이앤티를 부당하게 지원했고, 그 과정에서 회사와 주주들에게 손해가 발생했다는 이유에서다.
원고 쪽은 부당지원 방식으로 인력지원을 비롯해, 맥주용 공캔 거래, 알루미늄 코일 거래, 글라스락 캡 거래 등 네 가지를 지목했다. 또 공정거래위원회가 부과한 70억 원대 과징금까지 회사가 부담하게 되면서 주주 피해가 현실화됐다고 주장했다. 덧붙여 미등기임원 신분의 박문덕 회장이 장기간 대표이사보다 수십억 원 많은 보수를 받은 점도 소송의 핵심 쟁점으로 올랐다.
대법원 유죄 판결까지 났는데도... "거래 관여한 바 없다" 부인한 총수 일가
피고 박문덕, 박태영은 하이트진로의 이사들에게 이 사건 글라스락 캡 거래를 포함하여 서영이앤티와 삼광글라스 사이 거래에 관하여 어떠한 업무를 지시한 적 이 없고, 직접 해당 업무를 집행한 적도 없습니다.
<오마이뉴스>가 지난 15일 입수한 피고 쪽 의견서와 원고 쪽 준비서면을 종합하면, 박 회장과 박 사장, 김 전 대표 쪽은 지난 1월 재판부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문제가 된 4개 거래와 관련해 부당지원을 지시하거나 관여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박 회장과 박 사장은 하이트진로가 삼광글라스로부터 알루미늄 코일과 글라스락 캡을 구매하는 과정에 서영이앤티를 끼워 넣어 이른바 '통행세'를 챙겨준 혐의를 부인했다. 이들은 "하이트진로 이사들에게 해당 거래를 지시한 적이 없고, 직접 업무를 집행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박 사장의 경우 글라스락 캡 거래와 관련해 "서영이앤티 임직원들과 단순히 논의한 사실이 있을 뿐"이라며 자신의 행위를 일반적인 업무 협의 수준으로 축소했다.
하지만 이는 대법원의 판결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대법원은 2024년 3월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박 사장에게 징역 1년 3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했다. 당시 재판부는 박 사장이 김인규 당시 하이트진로 대표이사에게 "삼광글라스로부터 하이트진로가 직접 공급받던 알루미늄 코일 거래 단계에 서영이앤티를 끼워 넣어달라"고 요구했고, 김 전 대표가 이를 승낙하면서 부당지원이 시작됐다고 판단했다.
글라스락 캡 거래 역시 박 사장의 청탁과 요구에 따라 조직적으로 실행됐다는 것이 사법부의 결론이었다.
아울러 하이트진로가 직원을 서영이앤티에 파견하고 급여 약 5억449만 원을 대신 지급한 인력지원 문제에 대해서도 피고 쪽은 부인했다. 박 회장 쪽은 "인력지원은 하이트진로 전 대표이사였던 김지현 사장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며 "지원 규모가 하이트진로 매출액에 비해 극히 미미해 그룹 총수인 박문덕 회장에게까지 보고될 사안도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박 회장이 인사 관련 결재라인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는 점도 강조했다.
박 사장 쪽도 "2012년 4월 하이트진로에 입사했기 때문에 인력지원을 지시하거나 집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김인규 전 대표 쪽 역시 "전임 대표이사 시절부터 계속돼 오던 소규모 인력지원 내지 계열회사 간 인력 교류"라고 선을 그었다.
이에 대해 원고 쪽은 "김인규 전 대표는 2011년 7월 대표이사 취임 이후 2015년 말까지 인력지원이 계속되는 동안 이를 방치했고, 박태영의 지시를 받아 더 적극적으로 인력지원 행위를 집행했다"고 반박했다. 형사판결 역시 김 전 대표의 가담을 인정했고, 이는 대법원 판결로 확정된 사실이라는 것이다.
직접 사오던 맥주캔, 서영 통해서 사 와라? 대법원 "구문으로 봐도 '부당 지원'"

논란의 핵심인 맥주용 공캔 거래에 대해서도 피고 쪽은 적극적으로 부인했다.
하이트진로는 원래 삼광글라스로부터 직접 사오던 맥주 캔을 중간에 서영이앤티를 거쳐 구매했다. 이 과정에서 서영이앤티는 실질적 역할 없이 중간 마진을 얻었다. 원고 쪽은 이를 대표적인 '통행세 거래'로 보고 있다.
그러나 박 회장 쪽은 "단순 원자재 납품 거래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룹 총수에게 일일이 보고할 만한 사안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박 사장 쪽도 "2012년 4월 하이트진로에 입사했기 때문에 2008년 3월부터 시작된 공캔 거래를 알지 못했다"고 했다.
나아가 피고 쪽은 당시 공정거래법상 '통행세 거래'가 명시적으로 금지돼 있지 않았다는 점도 내세웠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의 공정거래법 조항에는 가지급금, 대여금, 인력, 부동산, 유가증권, 상품, 용역 등을 제공하거나 현저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는 행위가 부당지원으로 규정돼 있었지만, 이른바 통행세 거래는 별도 유형으로 명시돼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주장 역시 이미 대법원 판단과 배치 된다. 대법원은 2022년 5월 행정소송에서 하이트진로의 공캔 거래가 구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 했다. 하이트진로가 공캔 제조사로부터 직접 구매할 수 있었음에도 실질적 역할이 없는 서영이앤티를 거쳐 구매 했고, 서영이앤티가 매입가에 이익을 붙여 하이트진로에 판매하면서 상당한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은 서영이앤티가 이 거래를 통해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영업이익의 약 20.8%, 당기순이익의 약49.8%에 달하는 이익을 얻었다고 봤다. 이는 단순 거래가 아니라 현저한 규모의 경제상 이익을 제공한 부당지원행위라는 판단이었다. 2024년 형사판결에서도 알루미늄 코일 거래는 기존 공캔 거래의 공정거래법 위반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새롭게 발굴된 우회 거래 형태였다고 봤다.
원고 하이트진로는 공캔 제조사로부터 직접 공캔을 매수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래상 실질적인 역할을 담당하지 않는 원고 서영을 거쳐서 공캔을 매수한 점 (중략) 원고 서영은 공캔 제조사로부터 공캔을 매수한 다음 그 매수가격에 자신의 이익을 더한 가격으로 원고 하이트진로에 판매하였고, 이로 인하여 원고 서영의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영업이익의 약 20.8%, 당기순이익의 약 49.8%에 달하는 이익을 얻은 점 등의 이유를 들어 (중략) 공캔 거래는 현저한 규모의 거래로 인하여 과다한 경제상 이익을 제공한 것으로서 구 공정거래법 제23조 제1항 제7호의 지원행위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판단하였다. (중략) 원심의 이러한 판단에 (중략)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 - 대법원 2022년 5월 26일 선고
코일 거래는 그에 앞선 공캔 거래 및 이 사건 코일 거래에 공정거래법위반 소지가 있다는 판단이 전제가 되어 그와 같은 법 위반의 위험을 회피하고자 새롭게 발굴된 거래 형태였다. - 대법원 2024년 3월 12일 선고
피고 쪽은 서영이앤티가 중간 마진을 얻었더라도 결과적으로 하이트진로가 손해를 보지 않았다는 취지의 주장도 내놨다.
이에 대해 원고 쪽은 정면으로 반박했다. 하이트진로가 직접 공캔을 구매할 수 있었음에도 서영이앤티를 거치면서 불필요한 비용 56억1988만 원을 지출했고, 공정위 과징금 70억6500만 원까지 회사가 부담했으므로 명백한 손해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총수 일가 회사에 이익을 몰아주기 위해 하이트진로가 불필요한 비용을 부담했고, 그 위법행위의 결과로 과징금까지 떠안았다는 것이 원고 쪽 논리다.
박문덕 회장 "공정위도 고발 안 했다" vs. 원고 측 "업무집행지시자 책임 있어"
한편 박문덕 회장 쪽은 과거 공정위가 검찰 고발 당시 박 회장을 고발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점을 근거로, 자신이 4개 거래에 지시하거나 개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원고 쪽은 이를 민사상 책임 회피의 근거로 삼을 수 없다고 반박한다. 공정위 고발 여부는 형사처벌 대상 선정의 문제일 뿐, 회사와 주주에게 발생한 손해에 대한 민사상 배상 책임과는 별개라는 것이다. 이들은 박 회장이 하이트진로의 지배주주이자 그룹 총수로서 회사 업무를 사실상 지배·집행하는 지위에 있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아들인 박태영 사장을 하이트진로의 업무집행지시자로 선임한 책임이 있으며, 박 사장의 위법행위로 발생한 이익이 박 회장과 특수관계인에게 귀속된 만큼 업무집행지시자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원고 쪽은 "박문덕 회장이 직접 지시하지 않았더라도 박태영의 위법행위를 인식하고 있었고, 계열회사 부당지원으로 인한 이익을 본인과 특수관계인이 함께 누린 만큼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소송에서는 박 회장의 고액 보수 문제도 주요 쟁점이다. 피고 쪽은 박 회장의 보수가 2019년 12월 이사회가 신설한 임원 보수 규정에 따라 지급됐고, 영업이익 성장에 연동된 정당한 보수였다고 주장한다. 지난 2019년 테라와 진로이즈백 출시 성공으로 2020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204% 급증했고, 그 성과가 보수에 반영됐다는 설명이다. 내부 규정이나 주주총회 결의를 위반한 사실도 없다고 했다.
반면 원고 쪽은 박 회장이 2014년 이후 미등기임원 신분으로 주주총회의 이사 보수 한도 승인 대상에서 벗어나 고액 보수를 받아온 점을 문제 삼고 있다. 박 회장이 사실상 업무집행지시자로서 자신의 보수를 직접 결정했고, 김인규 전 대표가 합리적 평가나 검증 절차 없이 이를 지급했다는 것이다. 원고 쪽은 법원에 박 회장의 구체적인 근무내역, 성과평가 자료, 보수 산정 근거, 보수계약서 등에 대한 사실조회를 신청하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