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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어릴 적 교실이 떠오른다. 분필 가루 날리던 칠판 앞, 이름이 불리면 괜히 허리를 곧게 펴고 앉던 시간들이다. 그 시절 학교가 모두 아름답기만 했을 리 없다. 때로는 힘겹고 억울한 일도 있었을 테다.

그럼에도 기억 속 선생님들은 늘 든든한 어른이었다.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붙잡아주고, 마음이 흔들릴 때면 기꺼이 그늘이 되어주던 사람. '선생님'이라는 호칭에는 그런 무게가 실려 있었다. 아이들은 서툴지만 진심으로 고마워했고,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모은 과자 봉지 앞에 환하게 웃어주었다.

선생님을 미소 짓게 하는 한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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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스승의 날 풍경은 사뭇 다르다. 감사를 전하는 일조차 조심스럽고, 마음을 표현하는 길목마다 차가운 냉기가 서려 있다. 안타까운 지점은 선물 여부가 아니다. 선생님들이 놓인 척박한 환경이다. 서이초 사건 이후 교권 보호를 위한 제도 개선이 추진됐지만, 현장의 온도는 여전히 낮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2025년 조사에 따르면, 교원 10명 중 8명 가까이가 교육활동 보호의 긍정적 변화를 체감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와 악성 민원에 대한 불안은 여전한 숙제로 남아 있다.

교직원을 가족으로 둔 처지라 퇴근한 며느리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선생님들의 열정이 식은 것이 아니라, 학교라는 공간이 더는 온기를 마음껏 내뿜지 못하게 가로막는 것은 아닌가 싶어 씁쓸하다. 아이를 붙잡아주려 해도 민원이 걱정되고, 생활지도를 하려 해도 신고가 두렵다면 교실은 얼마나 삭막해질까. 선생님이 위축된 학교에서 아이들은 기댈 수 있는 어른 하나를 잃게 된다.

 가슴으로 전하는'고맙습니다'
가슴으로 전하는'고맙습니다' ⓒ 신혜솔

올해 스승의 날, 손자의 유치원에서는 아무것도 들고 오지 말라는 공지가 내려왔다. 방침은 당연히 지켜야 한다. 부담을 주는 일은 감사가 아니라 불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민하던 며느리는 아이의 하얀 티셔츠 가슴팍에 스티커를 붙여주었다. '선생님, 사랑해요! 고맙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작은 마음이었다. 교사의 마음은 교사가 가장 잘 아는 법이다.

물건은 아니지만, 아이가 온종일 교실과 복도를 누비며 그 마음을 달고 다닌다. 바쁜 하루 중 선생님들이 그 문장을 보며 잠깐이라도 미소 지을 수 있다면, "여전히 우리에게 따뜻한 진심을 전하는 이들이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감사가 선물이 아니라 풍경처럼 지나가는 방식이라면 서로에게 무해할 것 같았다. 그렇게 차려입은 아이가 고사리손으로 접은 색종이 카네이션을 들고 유치원 버스에 올랐다. 등하원을 도와주시는 선생님과 운전기사님께 종이꽃을 건네는 아이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돌봐준 어른에게 인사하는 것도 필요한 교육

찾아뵙고 싶은 이들은 또 있다. 손자가 기어 다닐 때부터 드나들던 도서관 유아열람실 선생님들이다. 그곳에서 아이는 책을 읽고 말을 배우며 세상과 가까워졌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의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부모와 조부모뿐만 아니라 유치원, 도서관, 그리고 작년에 다녔던 어린이집 선생님까지 수많은 어른의 눈길이 아이를 함께 키웠다.

누군가는 유난스럽다 할지 모르나, 이 정도의 고마움조차 표현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사회는 너무 삭막하다. 선생님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을 돌봐준 어른에게 고개를 숙이는 법을 배우는 것 또한 아이에게 꼭 필요한 교육이다.

과자 봉지를 펼쳐놓고 선생님과 함께 웃던 예전의 교실로 돌아갈 수는 없다. 지금은 지금의 기준과 조심스러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기준이 엄격해졌다고 해서 감사의 마음까지 사라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스승의 날은 무언가를 주고받는 날이기 전에, 아이 곁을 지키는 어른들의 존재를 다시금 되새기는 날이어야 한다.

선생님들이 민원의 대상이 아니라 존중받는 어른으로 서 있을 때, 우리 아이들도 비로소 안전하게 자랄 수 있다. 고마운 마음은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조심스럽게라도 표현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이가 오늘의 종이꽃 한 송이를 통해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


#스승의날#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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