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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젊어서는 늘 꼼꼼하고 빈틈없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자꾸 실수를 반복한다. 설 연휴에는 넘어져서 이가 부러지고, 외출할 때 남편이 부탁한 물건을 자꾸 잊어버리고 그냥 들어온다. 나이가 든 탓인지, 바빠서인지 속상하다. 빨리 정신 차려야겠다.
매주 화요일 오후에는 점자도서관에 소리 나누미 봉사 활동을 간다. 지난주는 어린이날 공휴일이라 2주 만에 갔다. 송암점자도서관에 가려면 인천 2호선 지하철을 타고 시민공원역에서 내려 버스로 35분 정도 가야 한다. 버스 종점 바로 전 정류장이 송암점자도서관이다. 집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 꽤 먼 거리다.
인천에서 26년째 살고 있지만, 직장이 서울이었던 터라 생활 반경은 주로 서울이어서 인천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요즘 버스로 도서관에 봉사 활동 가며 핸드폰을 가방에 넣어두고 주변 풍경을 살펴본다. 벚꽃이 만개했던 4월이 지난 요즘 초록이 예쁘다. 버스 차창 밖으로 장미와 아카시아꽃이 보여 5월임을 실감한다.
버스로 지나다 보면 인천 법원, 인천구치소, 인하대학교, 병무청, 미추홀 경찰서 등 굵직한 기관을 지나가며 '여기에 있었구나' 하고 그 위치를 알게 되었다. 이제야 내가 인천 시민인 것 같다.
교통카드를 놓고 오다

▲늘 가지고 다니는 교통 카드 지갑 ⓒ 유영숙
나는 예순다섯 살이 넘어 노인 우대 교통 카드를 받아서 사용한다. 카드는 핸드폰 지갑에 끼워두고 지하철을 탈 때 사용한다. 혹시 빠질까 봐 한쪽에 양면 테이프로 살짝 붙여 놓았다. 버스는 다른 후불 교통 카드를 사용해야 한다. 봉사 활동 갈 때는 중간에 시내버스로 바꿔 타야 해서 늘 신경 써서 교통 카드를 챙겨간다.
지난 12일 오전에 초등학교에 노인 일자리로 전통 놀이 지도를 다녀와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출발했다. 지하철을 타고 시민공원역에 내려서 버스를 타려고 교통 카드를 꺼내려는데 늘 가지고 다니던 교통 카드 지갑이 없다. 갑자기 하늘이 노래졌다. 전통 놀이 다녀오고 가방을 바꾸면서 교통 카드를 꺼내지 않은 모양이다.
지갑을 열어보니 카드가 두 개 들어있었는데, 하나는 인천 지역 화폐인 이음 카드이고 하나는 집 앞 은행에서 예금 인출 할 때 사용하는 카드였다. 꺼내서 자세히 살펴보아도 후불 교통 카드라고 쓰여 있지 않았다. 지금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다. 요즘 시내버스는 대부분 현금 없는 버스라 교통 카드 없이는 이용하기 어렵다. 버스 정류장에서 교통 정보를 보니 17분 뒤에 내가 타야 할 버스가 도착한다고 나왔다.
'버스 기사님께 사정 이야기하고 현금을 드린다고 해 볼까?'
'도서관에 연락해서 오늘 봉사 못 간다고 사정을 말씀드리고 그냥 돌아갈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나갔다. 그러다 갑자기 티머니 카드가 생각났다. 예전에 아파트에서 음식물 쓰레기 버릴 때 사용했는데 교통 카드로도 사용할 수 있다고 들었던 것 같다. 그때 티머니 카드를 편의점에서 충전했던 것이 생각났다.
편의점으로 달려가다
버스를 놓치면 2, 30분은 기다려야 다음 버스를 탈 수 있어서 마음이 급했다. 어딘가 편의점이 있을 것 같아서 두리번거리며 무작정 앞으로 걸어갔다. 저 앞에 한 편의점이 보였다. 돌아가신 엄마를 꿈에 만난 듯 반가웠다.
"사장님, 교통 카드 충전할 수 있나요?"
"네, 가능합니다. 카드 주세요."
"카드가 없는데요. 어떡하지요?"
"그럼 카드부터 구입하셔야 하는데 현금 내셔야 합니다."
"충전도 현금으로 내야 하는 거지요?"
"맞습니다. 교통 카드 충전도 현금만 가능합니다."
지갑에는 다행히 현금 만 원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요즘 물건 살 때는 대부분 카드로 결제하니 현금을 거의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카드를 사천 원 주고 사고 오천 원을 충전했다. 천 원이 남았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카드를 사고 서둘러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갔더니 다행히 버스는 지나가지 않았다.
버스가 곧 도착해 티머니 카드를 찍었더니 "띠릭" 하고 경쾌한 소리가 들리고 화면에 1200원이 표시되었다. 사실 버스를 타고 다니며 카드로 계산하기에, 버스비가 정확하게 얼마인지 몰랐다. 오천 원으로 왕복 두 번은 탈 수 있었다. 의자에 앉고 버스가 출발하니 "휴우~" 하고 한숨이 나왔다.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그래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점자도서관에 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다음날 지인 모임이 있어서 전날 있었던 교통 카드 사건을 이야기했더니 몰랐던 좋은 정보를 얻었다. 지인도 나처럼 교통 카드가 없어서 버스 기사님께 현금을 내도 되느냐고 여쭈어보았더니 계좌이체 하면 된다고 계좌가 적혀있는 종이를 주셨단다. 현금 없는 버스에 계좌번호가 적혀있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다음에 시내버스를 탈 때 살펴보아야겠다. 나처럼 교통 카드가 없을 때 참고하면 좋겠다.

▲티머니카드충전해서 교통 카드로 사용할 수 있고 충전은 편의점에서 하면 된다. ⓒ 유영숙
가는 길은 멀어도
나는 인천송암점자도서관에 소리 나누미 봉사 활동하러 다닌다. 소리 나누미 봉사는 낭독 봉사와 모니터링 봉사로 나뉜다. 낭독 봉사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책을 읽고 녹음하는 활동이고, 모니터링은 낭독가가 녹음한 것을 다시 들으며 잘못된 부분, 빠진 부분 등을 찾아서 모니터링 하는 거다. 나는 후자인 모니터단이다.
지난 3월 말부터 주 1회 2시간을 봉사하는데 벌써 한 달 반 정도가 되었다. 헤드폰을 끼고 책을 보면서 낭독가가 녹음한 것을 들으며 모니터링 하는데, 나에게 딱 맞는 활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일에 있어서는 스스로 집중력도 있고 꼼꼼한 성격이라고 자부한다. 이런 내가 오늘은 교통 카드를 두고 왔다. 웃음이 나온다.
정답게 읽어주는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으며 모니터링 하다 보면 내가 '힐링' 되기에 힘든 일이란 생각이 안 든다. 집중하며 듣다 보면 어느새 나도 책 속에 빠지게 된다. 지금까지 책 세 권째를 모니터링하고 있는데 나의 작은 봉사가 시각장애인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봉사 활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늘 가볍다. 교통 카드를 안 가지고 가는 날이 또 있을 수 있겠지만 이젠 괜찮다. 편의점에서 카드를 충전하면 되니까. 물론 앞으로는 비상시 대비를 위해 지갑에 만 원 정도는 넣고 다니려고 한다. 집에 돌아와서 편의점에서 산 티머니 카드도 지갑에 넣어두었다. 버스에서 내 옆에 앉으신 어르신이 하신 말씀이 오래 남는다. 친구들과 놀러 갔다가 집에 가는 길이라고 하셨다.
"나이 드니 노는 것도 힘들어."
그렇다. 앞으로도 가끔 깜빡거리긴 하겠지만, 이렇게 봉사 활동할 수 있는 내가 행복하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점자도서관에서 오랫동안 봉사 활동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번에 실수한 것을 교훈 삼아 앞으로는 교통 카드도 잘 챙기고, 덜렁거리지 말고 외출하기 전에는 한 번 더 가방을 챙기는 습관을 길러야겠다. 지난 화요일은 지옥과 천국을 넘나든 것 같은 날이라 오래 기억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영숙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