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첫날부터 시작되는 연휴에 어디든 가보자는 남편의 의견 따라 메모장을 훑었더니 '법기수원지'가 눈에 들었다. 드라마 배경지였던 곳으로 청정한 숲에 반해 저장해 둔 곳이다. 경남 양산이어서 함께 가볼 곳을 찾으니 통도사가 떴다.
영축산 아래 통도사는 신라 선덕여왕 15년(646년)에 자장율사가 세운 천년 고찰로 합천 해인사, 순천 송광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사찰에 해당한다고 한다. 3대 반열에 이름을 올린 데다 여행지마다 사찰 한 곳은 들르는 편이라 이미 마음은 법기수원지보다 통도사로 더 기울었다.

▲통도사 '금강계단'. 음력 1~3, 15, 18, 24일 오전11~14시까지 일반에게 개방 ⓒ 오순미
통도사는 대웅전 안에 불상이 없는 대신 '금강계단(국보 제290호)'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 종탑을 둔 게 특징이다. 금강계단은 출가자에게 수계의식을 행하는 공간으로, 대웅전 우측 쪽문이 출입구다. 우리가 방문한 지난 1일은 음력 15일이어서 제한적인 개방에 운 좋게 참여 가능한 날이었으나, 전날 내린 비로 바닥이 젖었다며 개방 불가를 전달 받았다. 입장 시간(오전 11~14시)에 맞춰 줄 서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실망한 채 흩어졌다.
대웅전 뒤편으로 구룡연못을 끼고 산령각에 몰린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이대기에 나도 성큼 기단 위로 올랐다. 그곳에서 금강계단 사리탑이 한눈에 보였다. 직접 들어가지 못한 아쉬움을 산령각 앞에서 달랬지만 사리탑의 위용은 그대로 전달되었다.
우담바라를 보다
양산으로 가는 길에 통도사를 검색하니 '우담바라' 소식이 유난히 많았다. 불교에서는 세상을 정의롭게 다스릴 성인이 나타날 때 피는 상서로운 꽃으로 여긴단다. 3천 년에 한 번 필 정도로 희귀하다는 우담바라 때문에 상춘객이 몰린다기에 기대가 컸다.
금강계단 입장이 불발에 그쳐 우담바라는 꼭 봐야지 했는데 경내 어디에도 사람이 모인 곳은 없었다. 분명 사람들이 몰려 있을 법한데 예상과 달랐다. 규모가 제법 큰 범종루 앞에 섰을 때 두 여인이 나누는 우담바라 얘기가 들렸다. 다가가 물어본 후에야 우리도 마침내 우담바라를 볼 수 있었다.
통도사 범종 상단엔 후원자 명단인 듯한 목패가 사방에 걸렸다. 그중 한 목패 밑, 거미줄 같은 실 끝에 희고 둥근 우담바라가 독립적으로 달려 있었다. 눈으로 식별하긴 어려웠고 카메라로 확대해야 겨우 볼 수 있는 크기였다.

▲범종루 상단 목패 밑에 핀 우담바라.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 ⓒ 오순미
생전 처음 우담바라를 봤다는 신비로운 순간 터진 한마디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로또 살까?'였다. 상서로운 꽃이 우리에게 줄 행운으로 가장 먼저 로또를 떠올린 것이다. 물욕은 곧 괴로움이니 경계하라고 가르치는 장소에서 탐심을 드러내곤 멋쩍어 피식 웃고 말았다. 비움에 가까이 가겠다는 의식이 무의식적 탐욕에 한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지족불욕(知足不辱)'에 마음을 숙였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갈 길이 먼 모양이다.
우리는 이어 서운암으로 향했다. 통도사에는 특색 있는 부속 암자가 19개나 딸렸다. 그중 몇 곳만 보기로 한 터라 고려대장경을 원형 그대로 새긴 16만 도자대장경이 궁금해 서운암에 먼저 갔다. 부속 암자라고 하나 규모가 큰 편이어서 암자마다 주차는 걱정 없다. 서운암의 장경각 앞뜰은 울산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와 천전리 각석(국보 제147호) 문양을 나전옻칠로 재현한 수중 작품으로 화려하다. 빠른 성장만 추구하는 인간의 욕심으로 문화 기록이 훼손되지 않길 바라며 장경각 내부로 향했다.

▲서운암 장경각과 앞뜰을 장식한 암각화 수중 작품 ⓒ 오순미
장경각에 보관 중인 도자대장경은 인류 평화와 남북통일을 염원하며 제작에서 봉안까지 20여 년에 걸쳐 완성됐다. 꾸준함이 낳은 방대한 기록은 위대한 의지와 협력의 결정체였다. 16만의 경전을 돌아보는데, 오랜 시간을 바친 느리고 고된 방식의 수행이 느껴졌다. 지속적인 힘으로 제작된 도자대장경의 목적이 이뤄지길 바라며 자장암으로 옮겼다.

▲도자대장경을 보관 중인 장경각 내부. ⓒ 오순미

▲장경각 창 구멍으로 본 안뜰. 사진전이 열리는 중. ⓒ 오순미
자장암 금개구리 전설
자장암은 창건주 자장스님이 수도했던 곳으로 주차 후 계곡을 따라 좀 걸어야 나온다. 마애불과 한 쌍의 금개구리로 유명한 자장암은 입구에 세운 석조 원형문부터 빼어난 정취를 풍겼다. 원형문을 통과하는 순간 깊은 근심이나 좌절이 깨끗이 씻겨나갈 것 같았다.
108 계단 끝 고인돌 석조문까지 통과하면 자장암 도착이다. 1896년에 조각된 4m 높이의 마애불과 관음전 사이 좁은 통로에 벌써 금개구리를 보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기다렸다. 우리도 합류해 따라갔다. 촬영 금지라 사진은 찍을 수 없었다.

▲자장암으로 들어가는 석조 원형문 ⓒ 신주철
금개구리가 산다는 엄지손가락 굵기만한 굴에 비치는 해를 우산으로 가린 스님이 한 사람씩 맞았다. 마음이 맑은 사람에게 보인다는데, 형체를 보았는지 놀라는 사람도 있었고 안 보인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에겐 위치를 틀어 다시 보라고 주문하니 눈이 동그래지며 합장 했다.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안 보이면 어떡하나 조바심으로 흔들리는 나를 느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으나 처음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하얀 얼굴에 까만 눈 두 개가 순간 눈에 맺혔다. 남편은 반짝이는 눈만 선명하게 보았단다. 금와가 왜 하얗게 보였을까 의아했으나 내가 본 형체가 금와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잘 보이도록 햇빛을 가려주며 배려한 스님의 친절이 우리를 집중하게 만들었고, 특별 체험이라는 상징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던 것도 누군가 방향을 잡아주면 순간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눈으로든 마음으로든. 거기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금와를 보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금와당 앞 스님은 오랜 세월 이어진 전설을 충분히 전달한 셈이다. 햇빛을 차단하고 설명을 보태는 다정한 스님이 계시는 한 금와굴은 진귀한 생명에 희망을 투영해 온 사람들에게 위안의 장소로 꾸준하게 회자될 것이다.
희귀한 존재를 보면 우린 본능적으로 기적, 희망, 길조와 연결한다. 녹록지 않은 현실을 견뎌보려는 기저에서 비롯된 감정일 것이다. 그전 세대보다 더 많은 것을 가졌지만 우리 삶은 여전히 불안하여 작은 상징에도 마음을 기대려 한다. 기대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때 통도사를 찾게 되면 불안이 해소되어 평온해질 것이다. 우담바라, 금와, 도자대장경이 품은 오랜 시간과 노동의 깊이가 그 불안을 상쇄할 상징이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