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4일 23명이 죽고 9명이 다친 한국사회 최악의 중대재해 아리셀 참사에 대해 지난 4월 22일 항소심 재판부는 형량을 대폭 줄여 경영책임자에게 각각 4년과 7년을 선고했습니다. 유가족 및 대책위는 물론 국민 대다수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라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선 한국사회 산재 재판에서 최악의 선례를 남겼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유가족 및 대책위가 바라본 2심 선고의 문제점을 다섯 차례에 걸쳐 짚어봅니다.

▲2024년 6월 25일 경기도 화성 전곡산단에 위치한 아리셀 공장 화재 참사 현장. ⓒ 김성욱
2024년 6월 24일 월요일 낮 12시 30분경.
그날 저는 평소보다 일찍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들어와 업무를 하기 위해 컴퓨터를 켰습니다. 그러다 문득 눈에 들어온 포털의 속보 기사, 기사에는 '아리셀'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고 '폭발'이라는 글자도 적혀 있었습니다. 불과 37초 만에 아리셀은 화마에 완전히 휩싸였다고도 했습니다.
심장은 요동쳤고, 곧바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기에서는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라는 음성만 반복되었습니다. 머릿속이 하얘진 저는 곧바로 화성으로 내달렸습니다. 신호위반과 속도위반을 거듭하며 가까스로 아리셀 현장에 도착하니, 그곳은 그야말로 '지옥'이었습니다.
이리저리 휘어지고 주저앉은 철근 위로 연기가 피어올랐고, 수백 명이 아리셀 건물을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어떤 상황인지 알려주는 이는 누구 하나 없었고, 아리셀 정문 앞을 가로막은 선만이 분명하게 보였습니다. 우왕좌왕하고 있을 즈음 휴대전화에 도착한 한 통의 문자메시지, '고 김병철 님 송산장례문화원 안치'.
한 통의 문자메시지, 믿어지지 않는 현실의 시작

▲2024년 6월 25일 오후 화성시 서신면 리튬전지 공장인 아리셀에서 박순관 에스코넥 대표가 23명의 사망자를 낸 사고가 발생한 것에 대해 공식 사과문을 낭독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믿어지지 않는 현실에 저는 다리에 힘이 풀렸고 벌겋게 달아오른 아스팔트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마침 저 멀리서 아리셀 박순관 대표와 박중언 본부장이 기자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에게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유가족들은 충격과 슬픔, 고통을 추스릴 시간도 없이 투쟁에 뛰어들어야만 했습니다. 도대체 사랑하는 나의 아이, 나의 남편, 나의 아내가 왜 죽어야만 했는지 알아야만 했고 책임자들의 진심 어린 사과, 적절한 배·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아리셀 측은 사과를 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카메라 앞과 판사 앞에서였을 뿐입니다.
참사 이틀 후부터 유가족들이 모이고 대책위원회가 만들어졌습니다. 대책위에는 100여 개 시민·노동·사회단체가 함께했고 본격적인 투쟁이 시작됐습니다. 유가족들은 화성시청 인근 모텔을 근거지로 삼고 투쟁을 이어갔습니다. 고용노동부, 박순관 대표 자택, 에스코넥, 국회 등 아리셀 참사와 관련된 곳이라면 가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2024년 10월부터는 아리셀 본사인 광주시 에스코넥 정문 앞에 천막을 설치하고 목이 터져라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나 에스코넥도, 노동부도 유가족들에게 건넨 것은 사과가 아닌 '투명인간' 취급이었습니다. 당시 고통과 슬픔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살았다기보다 견디고 버티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합니다.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이룰 수 없었고 기약 없는 재판 일정에 지쳐만 갔습니다. 연대의 손길이 없었다면 아마 견디지 못했을 것입니다.
유가족 가슴에 대못 박은 아리셀 참사 사건 2심 재판부

▲23명 노동자가 사망한 ‘아리셀 참사’ 2심 판결 과정과 선고에 대한 기자간담회가 지난 4월 28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총 교육장에서 아리셀참사대책위와 아리셀산재피해가족협의회 주최로 열렸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된 박순관 아리셀 대표는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는 원심보다 대폭 감형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아들인 박중언 아리셀 운영총괄본부장도 1심 징역 15년에서 항소심 7년으로 줄었다. ⓒ 권우성
누군가는 이야기했습니다. '돈을 얼마나 뜯어내려고 저러나', '저런다고 일이 해결되나'.
압니다. 그러나 유가족들에게 이미 해결이란 없습니다. 세상을 떠난 나의 사랑하는 가족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 한 해결이란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당시 유가족들이 진짜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책임자의 석고대죄와 진심어린 사과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유가족들의 바람은 허상에 불과한 것이 되었고, 생각지도 못했던 계엄발령과 진척 없는 재판으로 23명의 죽음은 이미 옛날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참사가 발생한 지 4개월여가 지난 2024년 10월경 마침내 1심 형사 재판이 시작되었고 수많은 주장이 오간 끝에 2025년 9월 박순관·박중언 부자에게 징역 15년이 선고되었습니다. 선고 전 유가족 대다수는 생계 등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처벌불원서를 포함, 사측 요구대로 합의에 동의한 상태였습니다.
사실 유가족들은 합의를 하면서도 합의라는 것이 마치 가해자들을 용서하는 행위로 비쳐져 양형에 영향이 미칠까봐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유가족들의 이러한 죄책감이 기우에 지나지 않음을 공식화했습니다.
하지만 2심 재판부(수원고법 형사1부, 재판장 신현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저는 2심 선고 직전 합의를 한 다섯 명(2명은 부분합의를 한 상태) 중 한 명입니다. 저를 포함해 다섯 명은 처벌불원서를 쓰지 않고, 형사합의가 아닌 민사합의에만 동의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와 정반대의 선고를 하고 말았습니다. 유가족들을 걱정하는 듯 판시했지만 2심 재판부는 사실상 유가족들이 '사과'와 '엄중처벌'을 외치며 1년 10개월 동안 버틴 자존심에 대못을 박은 것입니다. 2심 재판부는 유가족들의 외침을 전혀 듣지 않았고, 아니 외면하고 기만했습니다.
앞으로 대법원 판결이 남았습니다. 2심 재판부의 '기만적인 행위'로 유가족들은 이미 큰 상처를 받았지만, 아직 우리는 대한민국의 정의를 믿고 싶습니다. 유가족의 마음을 진심으로 위로할 마지막 판단을 쥐고 있는 대법원의 선고를 우리는 끝까지 지켜볼 것입니다.

▲아리셀 참사로 희생된 고 엄정정씨의 어머니 이순희씨가 지난 4월 22일 오후 박순관 아리셀 대표의 1심 징역형(15년)을 대폭 감형한 항소심 선고(징역 4년)에 "너무 억울하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나요"라며 울분을 토하고 있다. ⓒ 전선정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아리셀 산재피해가족협의회 최현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