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는 지역 일꾼을 뽑는 선거이지만, 막상 선거 과정에선 지역의 중요한 의제와 이슈들이 간과되곤 합니다. [우리 동네 진짜 이슈] 기획은 각 시민기자들이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겪고 있는 다양한 문제와 불편함을 지적하고, '정치'가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제안합니다. 한 표 한 표가 지역을 바꿔줄 것을 기대하는 시민기자들의 목소리를, 선거에 나오는 후보자들이 경청하기를 바랍니다.
올해로 서울살이 30년째다. 중간에 경기도에 거주한 시간도 있지만, 일터와 생활의 중심은 늘 서울이었다. 서울에서의 삶은 게이로서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나와 같은 사람들을 만나 관계를 맺으며 성장해 온 과정이기도 하다.
성소수자 인권단체 '친구사이'에서 활동한 지 24년, 상근활동가로 근무한 지는 18년째다. 동거하던 친형의 결혼으로 자연스레 1인 가구가 되었고, 어느덧 19년째 혼자 사는 47세의 중년 남성이기도 하다. 주위에서 싱글로 지내는 나의 삶을 두고 인권운동의 열악한 현실이라거나 개인의 능력 부족이라고 농담한다. 사실 내가 집중하는 건 혼자 사는 삶에 충실하면서 내가 속한 공동체 구성원들의 삶을 깊이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의 '현재'를 직시하며 마주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고민하는 데 관심이 많다.
역대 시장 누구도...

▲2025 친구사이 재회의밤. 친구사이는 매년 추석 연휴 시작 전날 밤, 친구사이 회원 및 게이 커뮤니티 일원 중에서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들을 기리는 '재회의밤'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2025년 10월 2일 재회의밤. ⓒ 김대현
물론 내 이야기가 소수자이자 1인 가구로 살아가는 모든 이의 삶을 대변할 수는 없다. 다만 오는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러한 삶을 사는 시민들의 고민과 지향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고건, 이명박, 오세훈, 고 박원순, 다시 오세훈... 내 서울살이를 거쳐 간 역대 서울시장들의 이름을 되뇌어 봤다. 이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소수자인 우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시장은 드물었다.
당신에게 가족이란 누구인가. 개인적으로 혼인과 혈연이라는 전통적 개념으로만 가족을 설명하기 어려운 시대라고 생각한다. 결혼-출산-노후로 이어지는 단선적 생애주기가 시간이 지날수록 이혼과 재혼, 비혼, 친구와의 동거, 노년 동거 등 다양한 모습으로 분화되어서다. 가족 구성의 이유 또한 형식적 결합이 아닌 상호 돌봄과 친밀성이라는 실질적 기능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2024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비친족 가구(비혈연 5인 이하 가구)는 2022년 100만 명을 넘어 2025년 약 11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전체 가구의 2.5% 내외를 차지하며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는 가구 형태다.
실제 다양한 세대가 각자의 이유로 동거, 가족 형태를 만들어 가고 있다. 청년층이 주거비 절감을 위해 룸메이트 형태를 택한다면, 중장년 및 노년층은 외로움과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한 '상호 돌봄'의 목적으로 공동체를 꾸린다. 특히 40대 이상의 비친족 가구는 관계의 지속성이 높아 사실상 대안적 가족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내 주변의 게이 커뮤니티 역시 오래전부터 이러한 관계를 형성해 왔다. 20년 넘게 동거하며 서로를 지켜온 동성 커플들은 이제 '혼인 평등 소송'의 원고가 되어 제도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또 다른 선배 게이들은 혐오와 차별에 맞서 주거 공동체를 꾸리고, 서로가 고립되지 않도록 돕는 상호 돌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3월 성소수자가 차별 없이 노년을 맞을 수 있도록 공동체 중심의 지원 구조를 마련하는 데 초점을 둔 '큐라이프협동조합'이 창립했다. 이는 성소수자가 나 답게 늙어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당사자들의 자발적인 노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물론 1인 가구 지원 조례가 존재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2016년 제정된 '서울시 1인 가구 지원 기본 조례'는 1인 가구를 일시적 현상이 아닌 새로운 가족 형태로 인정한 중요한 시작점이었다. 그러나 정책의 기저에는 여전히 1인 가구를 정상 가족에서 이탈한 '불안정한 상태'로 보거나, 다시 혼인 가구로 편입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깔려 있다. 지원책 또한 고독사 예방이나 안심 장비 지원 등 일회성 정책에 머물러 있다.
국가데이터처가 2025년 12월 발표한 '2025 통계로 보는 1인가구'에 따르면, 2024년 서울의 1인 가구 비중은 39.9%로 전국 최고 수치다. 연일 증가하는 1인가구의 삶에 대해 여러 논의가 이루어졌고, 2021년 제10대 서울시의회에서는 '서울특별시 사회적 가족 지원을 위한 기본 조례안'이 발의됐다. 1인 가구뿐만 아니라 비혼·동거 가족, 비혈연 생활 공동체를 포괄하여 정책적 사각지대를 해소하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당시 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상위법과의 충돌과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심사를 보류했고, 결국 임기 만료로 폐기되었다.
호주제 폐지 2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법적 가족의 정의는 협소하다. 수십 년을 함께 산 동거인이 연락 끊긴 혈연보다 의료 결정권에서 밀려나고, 장례조차 치를 수 없는 현실은 존엄에 대한 침해다. 가족끼리 알아서 생존하고, 그 틀에 끼지 못한 개인은 불평등으로 내몰리는 구조 속에서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노인 빈곤율 1위, 저출생 1위 국가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서울의 미래

▲다양한 가족의 모습이 필요하다. Unsplash ⓒ kevindelvecchio on Unsplash
한 달 뒤로 다가온 6·3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들의 가족 및 1인 가구 정책은 아쉬움이 남는다. 여전히 기존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대 양당 후보들의 정책은 현상 유지 수준의 지원책이거나 지극히 당연한 성평등 정책에 그친다. 개인을 중심으로 하는 다양한 가족 형태의 변화 속에서 상호 돌봄과 친밀감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관계 맺기를 실천하는 시민들의 삶을 반영하려는 노력이 잘 보이지 않는다.
정원오 더불어민주당·오세훈 국민의 힘 여야 서울시장 후보의 공약을 찾아봐도 그렇다. 지난 12일 정 후보는 1인 가구 및 고령가구 등의 돌봄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25개 전 자치구에 '공공 펫위탁소'도 설치하겠다는 공약을 밝혔다.
오 후보는 지난달 두 번째 공약으로 서울시민의 고립과 외로움 등 마음 건강을 도시 시스템이 직접 관리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서울 전 자치구에 1개소 이상의 마음편의점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1인가구 밀집 지역에는 '찾아가는 이동형 마음편의점'을 운영해 심리 지원의 접근성을 극대화한다고 했다. 그나마 정의당 권영국 후보가 이주민, 성소수자, 장애인 등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권리 보장 체계를 구축하고, 다양한 가족 형태를 제도적으로 인정하겠다고 밝혀 눈에 띄었다.
2024년 동성 부부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지위를 인정한 대법원 판결을 기억한다. 법은 이제 제도의 틀 밖에 있는 결합을 사회보장 체계 안으로 포섭해야 하며, 헌법에 명시된 인간의 존엄은 성적 지향이나 법적 혼인 여부에 따라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준엄한 원칙을 확인해주었다.
다가올 6·3 지방선거는 서울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분기점이다. 새로 구성될 서울시정과 의회에 간곡히 제언한다. 새로운 가족 형태를 인정하는 '사회적 가족 조례' 제정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이미 서울시민들은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구성하고 있다. 혈연이 아니어도 '결혼 제도'가 아니어도 함께 살고, 삶을 나누며 살고 있다. 이런 시민들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보며 이들을 지탱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1인 가구를 '잠시 머무는 상태'로 취급하지 말고, 동성 부부를 부인하지 말고, 시민이 자율적으로 선택한 각자의 돌봄 공동체를 제도적으로 승인해야 한다.
꼭 혈연이 아니어도 서로가 서로의 보호자가 될 수 있다. 서울시가 그리고 시민의 선택을 받은 시장이 '사회적 가족' 등록 제도를 검토하고, 누구라도 주거·의료·장례 등 삶의 전 영역에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길 바란다. 10가구 중 4가구가 혼자 사는 도시 서울에서, 이제 정책의 '기본값'은 정상 가족이 아닌 '다양한 관계를 맺고 사는 개인'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마주한 가족 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고, 누구도 고립되지 않는 존엄한 서울을 만드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