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판화]혼비백산(魂飛魄散) 황토현 대회전에서 전라감영군과 보부상군 등은 동학농민군의 학익진 포위전술로 기습공격을 받고 그야말로 혼비백산하였다. 관군들은 혼백이 사방으로 흩어진듯 매우 놀라 넋을 잃은사람들처럼 도망치기에 바빴고, 미처 출행랑을 치지 못한 관군은 아수라장판에서 목숨을 구걸한는데 급급했다.](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4/1202/IE003384556_STD.jpg)
▲[목판화]혼비백산(魂飛魄散)황토현 대회전에서 전라감영군과 보부상군 등은 동학농민군의 학익진 포위전술로 기습공격을 받고 그야말로 혼비백산하였다. 관군들은 혼백이 사방으로 흩어진듯 매우 놀라 넋을 잃은사람들처럼 도망치기에 바빴고, 미처 출행랑을 치지 못한 관군은 아수라장판에서 목숨을 구걸한는데 급급했다. ⓒ 박홍규
오직 의기 하나로 뭉친 오합지졸의 동학농민군이었다. 정확한 정보와 우세한 무기·장비를 갖춘 일본군의 공격을 막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기에 일본군의 용병처럼, 관군 역시 크게 증원되고 일본군으로부터 무기와 장비를 지원받아 전력이 대폭 보강되었다.
일본군과 관군의 치열한 공격으로 동학농민군은 속절없이 스러졌다. 6, 7일간 계속된 전투에서 다시 수많은 동학농민군이 처참하게 살해되었다.
동학농민군의 희생은 정확한 통계도 나와있지 않는 실정이다. 학계에서는 10만 명에서 30만 명 선으로 추산할 뿐이다. 일본군의 총탄에 맞은 동학농민군은 대부분 현장에서 숨지거나 부상을 입고 전선을 벗어났다.
동학농민군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노성·논산쪽으로 철수하였다. 철수한 병력의 일부가 천안 세성산 북쪽으로 후퇴하자 첩보를 받고 잠복해 있던 일본군의 집중 사격으로 농민군은 다시 한번 큰 타격을 당했다. 세성산 전투를 끝까지 지휘하던 북접의 효장 김복용과 중군 김영우, 화포장 원금옥 등이 관군과 일본군에 붙잡혀 총살되었다.

▲동학농민군의 우금치 전투 이후 후퇴 해산 중의 호서ㆍ호남지역의 주요전투동학농민군의 우금치 전투 이후 후퇴 해산 중의 호서ㆍ호남지역의 주요전투 (신용하, <동학과 갑오농민전쟁 연구>) ⓒ 김삼웅
덧붙이는 글 |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