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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지는 6월 3일은 ‘무주택자의 날’입니다. 지난 제21대 대통령선거 역시 같은 날 치러졌습니다. 선거는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와 동네의 미래를 결정하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세입자의 삶’을 중심에 둔 정책과 선거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전세사기가 사회적 재난이 되어 대한민국을 휩쓴 이후, 우리가 살고 있는 집과 동네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세입자들의 목소리를 한 사람씩 천천히 들어보고자 합니다. 이번 <세입자의 목소리를 찾아서> 인터뷰 시리즈는 6월 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공약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세입자들의 경험과 목소리를 기록하고 전하고자 합니다.

이 연재 기사 시리즈는 제9회 지방선거를 계기로 민달팽이유니온과 서울시전세피해세입자연대가 함께 꾸린 '세입자의 목소리를 찾아서' 팀이 기획·제작했습니다.
 가라연 씨가 민달팽이유니온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가라연 씨가 민달팽이유니온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 민달팽이유니온

"저는 보증금을 못 돌려받은 것도 아니고, 엄청 큰 피해를 겪은 것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내가 인터뷰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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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연 씨는 인터뷰를 앞두고 가장 먼저 이런 고민이 들었다고 했다. 임대인이 돈을 들고 도망간 것도 아니고, 전세사기 피해를 당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부산에서 상경한 뒤 약 9년 동안 서울 보광동 달동네와 영등포의 빌라, 오피스텔 그리고 지금의 SH공공임대주택까지 주거지를 다양하게 옮겨 다니며 살아왔다. 집을 빌려주면서 가지가지 하는 '집주인'들을 만나 그만의 내공을 다져왔다.

곰팡이가 번지던 창문 없는 방, 갭투자 잘못돼서 월세를 높게 받겠다 통보한 임대인, 가스가 새던 빌라와 허락 없이 불쑥 일상에 침입하는 임대인들 사이에서 가라연 씨는 '세입자로 산다는 것'의 감각을 몸으로 배워왔다. 많은 세입자들에게 일상처럼 반복되는, 일상적이어서 유별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그래서 각자의 방 안에만 남겨져 있던 세입자 살이의 불안에 대해 지난 12일 가라연 씨와 이야기 나누어 보았다.

-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저는 29살 퀴어 청년 가라연입니다.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에서 입·퇴실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요. 제가 하는 일은 예비조합원분들께 달팽이집을 소개해드리고 계약서를 쓰는 일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장기미임대주택'이라는 공공임대에요."

주거 침입 임대인부터, 보증금 돌려줄 수 없다는 임대인까지… 세입자의 일상

- 상경해서는 어떤 주거를 거치셨어요?

"처음 살게 된 곳은 보광동의 재개발 구역인 달동네였는데요. 굉장히 저렴해서 들어가게 됐어요. 지금 생각하면 불법건축물 아니었을까 싶어요. 큰 주택을 막 쪼개서 세 가구 정도 살고 있었거든요. 제 방에는 창문도 없었고요. 그런데 한겨울 되니까 초록색 곰팡이가 피기 시작하더라고요. 벽지는 물론이고 벽에 안 닿았던 옷과 가방까지 다 곰팡이가 슬어버렸어요. 임대인한테 말했더니 '좋은 집이다. 우리 언니도 살게 했다' 그러는 거예요. 속으로 '언니랑 원수지간인가 보다' 생각했죠. 그런데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왔더니 임대인이 제 방 안에서 페인트를 칠하고 있는 거예요. 진짜 너무 충격이었어요. 한 뼘짜리 공간조차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공간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내가 아무리 잘 가꾸고 소중하게 대해도, 누가 갑자기 쑥 들어와버릴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게 너무 불안했던 것 같아요."

- 상식이 통하지 않는 임대인 때문에 정말 고생하셨겠어요. 그런 일을 겪고 나면, 집을 구할 때의 감각도 달라질 것 같아요. 이후에는 어떤 집들을 거쳐오셨어요?

"그 다음 집은 친구의 집에서 임시로 거주하다가, 함께 살 다른 친구를 만나서 영등포역 쪽 오피스텔에서 살았어요. 그런데 몇 달 지나고 갑자기 임대인이 보증금을 못 돌려줄 수도 있다고 하는 거예요. 자기가 다른 건물을 사느라 돈을 좀 끌어 썼는데, 그게 좀 잘못됐다면서요. 임대인이 갭투자를 잘못해서 저희에게 보증금 500만 원은 돌려주고 월세를 올리겠다고 했습니다. 딱 그 시기가 전세사기 기사들이 나오기 시작할 때였어요. 너무 무서워져서 계약 기간 끝나자마자 바로 이사를 갔어요.

다음 집도 영등포시장역 근처였는데, 전에 살던 집 기억 때문에 임대인한테 계속 '여기 빚 없죠?' 물어보면서 계약했어요. 집이랑 회사가 가까워서 한 동안은 나름 괜찮게 살았던 것 같아요. 근데 이상하게 집에만 들어가면 두통이 있더라고요. 스트레스 때문인가 싶었는데, 어느 날 아예 보일러가 안 되고 뜨거운 물도 안 나오기 시작했어요. 알고 보니까 가스가 조금씩 새고 있었던 거예요. 임대인 반응이 더 황당했는데요. 보일러 안 된다고 했더니 '우리 집 5층 올라와서 씻어라' 이러시고, '4층에 아는 사람이 있으니까 내려보내겠다' 하면서 모르는 남성 입주민을 저희 집으로 보낸 거예요.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을 겪고 나니까 이 집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다음에 도착한 곳이 지금 살고 있는 공공임대주택입니다."

- 상경한 후, 다양한 거처를 겪으셨네요. 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남아있는 동네가 있었나요?

"사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은 이태원이예요. 이주민 노동자들도 많고, 여행객도 많고, 옷차림도 다 다르고요. 진짜 서로 다른 사람들이 다 섞여 있는 곳이잖아요.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이 하나쯤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느낌이 되게 좋았어요. 오히려 그래서 내 공간 같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동시에 그 동네가 저한테 주거 불평등을 제일 강하게 체감하게 만든 곳이기도 했어요. 달동네에서 엄청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면 바로 으리으리한 외교관 거주 빌라들이 있었거든요. 저는 맨날 수도가 파열되고 곰팡이가 피는 집에서 살았는데, 계단 하나 아래에는 엄청 따뜻하고 안전해 보이는 집들이 있는 거예요. 지나갈 때마다 어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안정적인 주거를 누리고, 어떤 사람들은 계속 불안한 집을 옮겨 다녀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런 현실 자체가 되게 이상한 거 같아요."

- 지금은 SH 장기미임대주택에 살고 계신데요. 처음 그 집에 들어가게 됐을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궁금해요. 실제로 살아보니 어떤 점은 좋았고, 어떤 점은 여전히 불안했는지요.

"막상 'SH 됐다' 했을 때는 포기하려고 했어요. 예전에 살던 집보다 거의 두 배 넓어지는데 월세는 비슷했거든요. 대신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야 했는데 그 과정이 진짜 너무 복잡한 거예요. 블로그를 3~6개씩 비교하면서 대출은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어떤 은행을 가야 하는지, 입주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 찾아봤어요. 그때 진이 다 빠졌던 것 같아요. SH나 공공기관에서 제대로 안내를 해주는 느낌은 아니었어요. 먼저 경험한 누군가가 인터넷에 정리해둔 걸 보지 않으면 접근 자체가 어려운 구조였어요. 어떤 은행 지점은 안 된다고 하고, 블로그에서는 '은행원도 잘 모를 수 있으니까 우겨야 된다' 이런 얘기도 하고. 체크카드나 신용카드도 거의 반강제로 만들게 하고. 대출 하나 받는 데도 되게 신경을 많이 썼죠.

그래도 주변에서 '네가 이렇게 집다운 집에 살아볼 기회가 별로 없을 수도 있으니까 한번 살아봐라' 이런 얘기를 많이 했어요. 저도 사실 '나도 집다운 집에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고요. 그리고 처음으로 가전을 산 집이에요. 친구들이 독립 축하한다고 냉장고도 사주고 그랬어요. 그런데 막상 들어와 사니까 죄책감이 되게 심했어요. 친구들은 여전히 좁은 원룸에 사는데 나만 괜찮은 집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있었어요. 이상하게 계속 '나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얼마 전에는 제가 사는 집이 남동향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어요. 해가 되게 잘 드는 집인데, 계속 떠날 생각만 하면서 살다 보니까 그런 것도 모르고 지냈던 거죠."

 가라연 씨가 인터뷰어의 질문을 듣고 있다.
가라연 씨가 인터뷰어의 질문을 듣고 있다. ⓒ 민달팽이유니온

자기 인지를 소모하며 사는 세입자의 삶

- 여러 집을 거치며 살다 보니, 세입자의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셨을 것 같아요.

"임대인은 월세도 받고, 보증금 같은 큰돈도 받잖아요. 그런데도 세입자들은 늘 임대인 눈치를 보면서 살아요. 인터넷에 가끔 '좋은 집주인 미담' 같은 거 올라오잖아요. 저는 그게 미담이 된다는 사실 자체가 되게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원래는 당연히 지켜져야 하는 계약 관계인데, 너무 드문 일이니까 미담이 되는 거잖아요. 보증금이라는 것도 월세 몇 달 밀릴 상황에 대비해서 맡기는 돈이라고 하기엔 액수가 너무 커요. 월세가 50만 원이면 1천만 원은 거의 2년 (동안 내는 금액에) 가까운 돈인데 왜 자꾸 1천만 원, 이천만 원, 1억씩 맡겨야 하는 걸까 싶어요. 이제 막 사회에 나온 청년들이 그런 돈을 턱턱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특히 보증금 대출 지원도 청년들을 지원한다고는 하지만 그 돈이 청년들을 거쳐 결국 집 가진 사람들 자산으로 들어가는 구조라고 느껴요. 임대인은 그 돈으로 또 집을 사고, 대출을 받고, 자산을 불리잖아요. 그러다 그 구조가 무너지면 전세사기가 되는 거고요. 그래서 저는 지금의 대출 구조 자체가 전세사기를 만드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요. 이런 구조 안에서 세입자들은 계속 자기 인지를 소모하면서 살게 되는 것 같아요."

- '자기 인지를 소모하면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대출 알아봐야 하고, 계약 확인해야 하고, 언제 이사가야 할지 계산하면서 사는 것이요. 가사 노동 말할 때, '기획 노동'이라는 말을 쓰잖아요. 세입자들도 비슷한 것 같아요. 늘 불안한 상태로 자기 인지 자원을 계속 깎아가면서 살아가는 거죠.

저는 그래도 활동가이고, 주변에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고, 같이 이야기할 사람들이 있으니까 어떻게든 버텨보자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데요. 제 또래들 중에는 그냥 '원래 사는 게 이런 건가 보다'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되게 많다고 느껴요. 너무 힘들고, 계속 경쟁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점점 고립되는 거죠. 결국 정치에서는 말할 여유가 있는 청년들의 이야기만 남게 되는 것 같고요. 저는 그냥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공공임대에 살았으면 좋겠어요. 죽어서 집을 들고 갈 수도 없는 거잖아요. 집을 저랑 같이 순장할 수도 없는 건데, 왜 인간이 땅을 이렇게까지 소유해야 하는 걸까 싶어요."

 가라연 씨가 세입자에게 필요한 정책을 들어보이고 있다.
가라연 씨가 세입자에게 필요한 정책을 들어보이고 있다. ⓒ 민달팽이유니온

집에서 산다는 의미를 아는 정치인 원해

-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어떤 후보를 뽑고 싶은가요?

"저는 사실 정책이나 방안들도 중요하긴 한데, 기본 마음 같은 게 더 중요하다고 느껴져요. '집에서 산다는 의미를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집을 사지 않아도, 집에서 살 수 있다는 걸 이해하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집을 구할 때 뭐가 어려운지, 집을 옮겨다닐 때마다 공과금 정산이나 전입신고는 얼마나 번거로운지, 대출 정보는 왜 다 흩어져 있고, 그 대출의 돈은 결국 어디로 가는 건지. 이런 것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고민해 본 사람이면 좋겠어요.

집 있는 사람들 마음보다, 사실 그 기저에 있는 '집에서 살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이요. 내가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누수가 없고, 벌레 나오지 않고, 내 한 몸 편하게 누일 수 있는 공간. 안전하고 따뜻한 공간이요. 저는 사실 그게 되게 중요한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공간이 있어야 사람이 내일을 기다릴 수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를 상상해볼 수 있는 거요. 근데 제 또래들 보면 너무 작은 월세방이나 고시원 같은 데서 사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도 혼자 살 때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런 공간에서는 진짜 자기 삶을 생각할 여유 자체가 잘 안 생기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그런 마음을 아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단순히 '집을 사야 한다'거나 '대출을 더 쉽게 해준다'가 아니라, 그 작은 가능성 바깥에 있는 삶까지 이해하는 사람이요."

인터뷰어: 지민 민달팽이유니온 회원

#세입자#전세사기#지방선거#보증금#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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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의 목소리를 찾아서

지민 (minsnail) 내방

'주거권 보장 지금 당장!'을 외치며 청년 세입자 대상의 교육, 상담, 현장대응 그리고 제도개선을 위한 실천행동을 함께 합니다. 무법지대와 다름없는 주택임대차시장에서 세입자 청년들이 겪는 부당한 관행에 2013년부터 함께 대응해왔고, 보증금 먹튀 대응 센터 운영 및 법안 발의 등 세입자 권리를 지키기 위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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