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지는 6월 3일은 ‘무주택자의 날’입니다. 지난 제21대 대통령선거 역시 같은 날 치러졌습니다. 선거는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와 동네의 미래를 결정하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세입자의 삶’을 중심에 둔 정책과 선거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전세사기가 사회적 재난이 되어 대한민국을 휩쓴 이후, 우리가 살고 있는 집과 동네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세입자들의 목소리를 한 사람씩 천천히 들어보고자 합니다.
이번 <세입자의 목소리를 찾아서> 인터뷰 시리즈는 6월 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공약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세입자들의 경험과 목소리를 기록하고 전하고자 합니다. 이 연재 기사 시리즈는 제9회 지방선거를 계기로 민달팽이유니온과 서울시전세피해세입자연대가 함께 꾸린 '세입자의 목소리를 찾아서' 팀이 기획·제작했습니다.
![아름씨가 공약 카드 중 하나를 골라서 인터뷰에게 설명하고 있다. 카드에는 '[피해구제] 채무조정 및 심리치료 지원'이라고 적혀 있다.](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512/IE003618997_STD.jpg)
▲아름씨가 공약 카드 중 하나를 골라서 인터뷰에게 설명하고 있다. 카드에는 '[피해구제] 채무조정 및 심리치료 지원'이라고 적혀 있다. ⓒ 민달팽이유니온
여러 번 발품을 팔아 간신히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하고도 끝내 마음을 놓지 못한다. 혹시 집에 문제가 생길까 봐 이사 후에도 수시로 등기부등본을 떼어보고, 계약서에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특약들을 빼곡히 채워 넣는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세입자로 산다는 것은, 소중한 보증금과 일상을 지키기 위해 쉼 없는 '방어'를 이어가야 함을 의미한다. 온전히 개인의 정보력과 노력에 기대어 위험을 피해야만 하는 임대차 시장 속에서, 세입자의 불안은 어느새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여기, 전세사기라는 거대한 재난이 삶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가장 가까이서 목격한 이가 있다. 다세대 주택이 촘촘하게 들어선 강서구 화곡동에서 전세로 살고 있는 아름(가명)씨다. 그는 오랜 고향 친구와 지인들이 잇따라 전세사기의 늪에 빠져 고통받는 과정을 지켜보며, 더욱 치밀하고 단단한 방어벽을 쌓으며 살아가고 있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삶의 거처를 지켜내고 있는 아름씨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우리 사회의 주거 정책이 앞으로 어떤 방향을 향해야 하는지 물었다.
- 안녕하세요. 지금 살고 계신 동네를 소개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서울시 화곡동 까치산역 인근에서 살고 있는 직장인입니다. 서울 생활은 18년 차이고, 전세로 산 지는 5년이 넘었어요. 지금 집은 두 번째 전셋집인데, 직장을 옮기면서 출퇴근 시간을 줄이기 위해 이사를 결심했죠. 제가 가진 전세 자금에 맞춰 좋은 컨디션의 집을 찾다 보니 이곳으로 오게 되었어요. 우리 동네에는 신혼부부나 2030 직장인, 대학원생들이 많이 살아요. 근처에 화훼 단지와 서서울호수공원도 있어서 산책하기 좋고요. 길고양이들이 살아서 오가는 길에 밥도 주고 인사하며 지내고 있어요."
- 동네 골목 곳곳을 둘러보니 주택들이 참 빽빽하게 모여 있더라고요. 퇴근길이나 일상생활에서 느끼시는 이 동네의 거주 환경, 특히 치안이나 안전에 대한 체감은 어떤 편인가요?
"이전에 살던 강북구 쪽은 '여성 안심 귀갓길' 같은 방범 인프라나 새벽까지 순찰을 도는 안전 요원들이 있었는데, 이곳은 그런 제도적 장치는 부족한 편이에요. 하지만 주변에 가정집이 많고, 밤마다 아저씨들이 체조하거나 흡연하려고 나오기 때문에 인적이 뜸하지는 않아요. 저는 집을 구할 때 항상 주변에 학교가 있고 아이를 키우는 가정집이 밀집한 곳을 우선으로 찾거든요. 방범 장치가 없더라도, 동네 주민들이 오가거나 산책하는 분들이 있는 곳이 그나마 안전하다고 느껴요. 집 앞에 나온 러닝 입은 아저씨들을 보면 좀 안심이 되죠. (웃음)"
전세사기 당한 친구, 계약 일주일 만에 연락 끊긴 집주인

▲아름 씨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 민달팽이유니온
-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직접 전세사기 피해를 당하지는 않으셨지만, 주변 지인들의 피해를 가까이서 지켜보셨다고 들었습니다.
"2018년 쯤에 학창시절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전세사기를 당했어요. 당시에는 서울에 올라와 살던 저와 친구들이 월세에서 전세로 넘어가던 시기였어요. 그 친구는 강서구 목동 쪽에 전세를 구했는데, 계약 전부터 매매가와 전세가가 너무 비슷해서 수상했죠. 저와 친구들이 '이거 깡통전세 같으니 하지 말자'고 극구 말렸지만, 집 구조가 마음에 든다며 부모님과 함께 가서 덜컥 계약을 해버렸어요. 그런데 계약 당일 집주인이 아닌 대리인이 나왔고, 나중에 알고 보니 물이 새서 곰팡이가 핀 천장을 교묘하게 가려둔 집이었어요. 더 끔찍한 건 계약 일주일 만에 집주인과 연락이 끊겼고, 해당 부동산마저 폐업해 버렸다는 거죠."
- 사태를 파악한 이후 친구 분은 어떻게 대처하셨나요?
"처음에는 저희에게 말도 안 하고 숨겼어요. 나중에 사실을 알고 전세사기 피해자 카페에 가입하도록 도와주고, 변호사를 알아봐 주겠다고 설득했어요. 확인해 보니 집주인 이름은 홈리스의 명의를 도용한 것이었고, 똑같은 피해자들이 모인 단톡방도 있었어요. 가장 절망적이었던 건 친구가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부동산 업자가 '전세권 설정만 하면 보증보험과 다를 바 없고 안전하다'라고 속인 걸 그대로 믿은 거죠. 결국 그 집은 경매로 넘어갈 위기에 처했고, 친구는 엄청난 스트레스와 자책감에 시달리다 결국 저를 포함한 고향 친구들을 모두 차단하고 잠적해 버렸어요. 지금도 해결이 안 된 채 문제의 집에 갇혀 살고 있는 것으로 알아요."
- 너무 안타깝네요. 그 친구 분 외에도 주변에 피해 사례가 더 있나요?
"친한 후배의 직장 동료도 전세에 들어갔다가 일주일 만에 집주인과 부동산이 사라지는 똑같은 수법에 당했어요. 다행히 그분은 보증보험에 가입해 둔 상태였지만, 환급률이 70%였고 돈을 돌려받기까지 무려 1년 반이 걸렸어요. 회사에서 법률 지원과 대출을 해준 덕에 버텼지, 개인이라면 감당하기 힘든 시간이었을 거예요.
최근에는 지방에 사는 지인에게도 전세사기 소식을 들었어요. 그분은 원룸 전세에 10년 가까이 살고 있었는데, 건물 주인이 사업이 망했다며 보증금을 못 주겠다고 하더니 건물이 통째로 경매에 넘어간다는 통지서가 날아왔어요. 이제 전세사기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겪고 있는 너무나 흔하고 무서운 현실이 된 것 같아요."
- 주변의 잇따른 사기 피해를 보면서, 집을 구할 때 본인만의 철저한 생존 방식이 생기셨을 것 같은데요.
"저는 계약을 할 때 집주인의 재정 상태까지 꼼꼼히 확인하고 들어가요. 일단 등기부등본은 이사 후에도 한두 달 동안 계속 떼어보는 편이에요. 국세·지방세 완납 증명서도 요구하고, 신분증과 신상 정보도 철저히 대조하고요. 가능하면 집주인이 제가 살 집과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것을 선호해요. 문제가 생기면 바로 얼굴을 보고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특히 계약서에 '특약'을 무조건 두 개 이상 넣어요. "전세 대출이 불가하거나 문제가 생길 시 계약금을 전액 반환한다"는 조항을 걸고, 중개하는 부동산 업자에게도 책임 소지를 명확히 둡니다. 전세권 설정이 내 보증금을 완벽히 지켜주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보증보험은 무조건 가입해요. 소중한 내 돈을 지키려면 세입자가 스스로 독해지는 수밖에 없어요."
- 그렇게 꼼꼼하게 확인해도, 현재의 주거 제도 안에서 세입자가 겪는 불안과 불공정이 존재할 것 같습니다.
"가장 크게 와 닿는 건 가계약금과 선금 관행입니다. 계약 파기 시 세입자만 계약금을 몽땅 날리는 관행이 너무 불공정하다고 느껴요. 직장 발령이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계약을 못하게 되더라도 계약금을 그대로 날리는 거거든요. 제 주변에도 선금을 떼인 지인이 있어요. 좋은 집주인은 돌려주지만, 대부분은 '내 시간을 썼으니까 그 대가로 가져간다'며 안 줍니다. 이런 부분은 특약이 없어도 법적으로 세입자를 보호해 주는 기본 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다른 어려움은, 세입자가 안전한 집을 찾기 위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는 거죠. 수많은 앱을 돌아다니며 허위 매물을 거르고, 건물 시세와 과거 매매 기록을 일일이 비교 추적해야 해요. 이런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부동산의 과거 이력과 사기 위험도를 직관적으로 통합해 보여주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어요."
안전하게 머물 권리를 묻는 이들

▲아름씨가 세입자에게 꼭 필요한 정책이 무엇일지 고민하고 있다. ⓒ 민달팽이유니온
- 말씀을 듣다 보니 세입자 개인이 아무리 발품을 팔고 조심해도 구조적인 한계가 분명해 보입니다. 전세사기 근절과 안정적인 주거를 위해 정부에 요구하고 싶은 조치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 '공약 카드' 중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을 하나 골라서 함께 말씀해 주시겠어요?
"'심리치료 지원 및 채무 조정'을 고를게요. 전세사기를 당하고 잠적한 제 친구도, 지방에서 피해를 당한 지인도 모두 자신을 탓하며 극도로 위축되어 있어요. 사기를 당한 건 그들의 잘못이 아닌데도, 충격과 자책감 때문에 무너지더라고요.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든 피해자가 밖으로 나와야 하는데, 눈앞의 채무 압박과 우울증 때문에 숨어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이들이 스스로를 탓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심리적 치유를 돕고, 감당하기 힘든 빚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제도가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해요.
근본적으로는 지금의 구제책이 벼랑 끝에 몰린 이들에게 너무 까다롭고 가혹합니다. 그분들이 떠안은 거대한 빚은 결국 국가의 주거 안전망이 뚫려서 생긴 결과물이기도 하잖아요.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이 절실합니다.
덧붙여서, 피해를 미리 막기 위한 일상적인 '공공 캠페인'도 꼭 필요하다고 봐요. 집을 구할 때 반드시 알아야 할 기본 정보를 몰라서 덫에 걸리는 분들이 생각보다 정말 많거든요. 지하철 거울 밑에 '불법촬영 금지' 스티커가 붙어 있는 것처럼요. 우리가 매일 타는 버스나 대중교통에 '이런 전셋집은 위험합니다', '계약 전 이것 만은 꼭 확인하세요' 같은 직관적인 문구를 꾸준히 노출했으면 좋겠어요. 부동산 정보에 취약한 사회 초년생들도 출퇴근길에 오가며 자연스럽게 생존 상식을 익힐 수 있도록 말이죠."
"주변 10명 중 6명은 당했을 거예요."
아름 씨는 전세사기가 더 이상 뉴스에나 나올 법한 남의 일이 아니라고 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도, 제도의 빈틈에서 벌어진 피해는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 남는다. 다가오는 선거를 앞두고 세입자들은 고민한다. '나의 보증금과 소중한 거처를, 전세사기라는 거대한 불안으로부터 누가 지켜줄 것인가.' 안전하게 머물 권리를 묻는 이들의 표심이 어디를 향할지 지켜볼 일이다.
인터뷰어 : 차에녹 복음과상황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요청으로 가명으로 진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