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성산동 성미산마을에 살면서,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있습니다. 마을주민이자 선생님·아이들과 학교를 함께 꾸려가는 양육자로서 겪은 일을 전합니다.

▲4월 29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도롯가에서 성미산학교 양육자들이 9박 10일의 이동학습 마치고 도착한 아이들을 맞이하고 있다. ⓒ 선대식
지난달 29일 저녁 도롯가에 버스 한 대가 서서히 멈추자,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버스 문이 열리고 학생들이 한 명씩 내리자, 양육자들은 오랜만에 보는 아이들을 반갑게 맞았다. 곳곳에서 웃음꽃이 피는 가족 상봉이 이뤄졌다. 울컥하는 양육자도 있는 것 같았다.
6학년인 아이는 선생님, 친구·선배들과 9박 10일 동안 제주도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고 손빨래를 하며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며 체험과 학습을 이어갔다. 까맣게 탄 아이의 얼굴을 보자, 왠지 더 늠름해 보였다. 아이는 제주도에서 무엇을 보고 듣고 느꼈을까. 아이의 노트에는 그 여정과 소감이 빼곡히 담겨있었다.
음식 손수 만들고 손빨래하며 보낸 9박 10일
성미산학교 중등 학생들은 봄과 가을에 이동학습을 간다. 이번에는 생명과 평화를 주제로 제주도 곳곳을 방문했다. 비행기 대신 전세버스와 배를 이용해 제주도로 이동했는데, 아침 일찍 서울에서 출발해 늦은 밤 숙소에 도착한 이유였다. 나는 왜 비행기를 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제한된 예산을 감안하고 탄소발자국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다'라는 답을 듣고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4월 29일 제주도에서 출발해 완도로 향하는 배에서 성미산학교 학생들이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 성미산학교
아이가 이번 이동학습에서 제주 4·3 사건을 알게 된 것이 인상적이었다. 아이는 3일 차에는 제주 4·3평화공원으로 향했다. 아이는 '제주도는 불타는 섬이 됐다'는 문장으로 시작해 4·3 사건 경과 과정 빼곡히 적었다.
아이가 제주도에 있는 동안 나는 극장에서 4·3 사건을 다룬 영화 <내 이름은>을 봤다. 정지영 감독, 염혜란 주연배우와 함께하는 GV(관객과의 대화)에도 참석했다. 나와 아이는 각각 서울과 제주에서 국가 폭력의 아픈 역사를 되새긴 셈이다.
아이는 제주 서귀포 대정읍 섯알오름도 찾았다. 이곳은 1950년 7월과 8월 해병대에 의해 민간인 수백 명이 학살된 곳이다. 아이의 노트에는 제주도 출신 해병대원에게 이곳 민간인들을 학살하도록 하는 지시가 있었다면서, 그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기록했다. 4·3사건에 대한 소감도 적어놓았다.
"잘못이 없는 사람들을 죽인 것은 엄청 잘못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4·3을 계속 기억해야겠다."
돌고래 보호를 통해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알리는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 제주돌핀센터를 방문한 일은 아이에게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 아이의 글이다.
"사람들은 돌고래를 보려고 배를 타고 돌고래를 쫓아다닌다. 배가 빠르면, 스크루 때문에 돌고래 등지느러미가 찢어지기도 한다. 또한 돌고래 서식지에 풍력 발전기를 짓는다. 돌고래는 서식지를 빼앗기는데, 돌고래 보호구역은 한 곳밖에 없다. 돌고래는 낚싯줄에 걸리거나 쓰레기를 먹어서 죽는다. 가마우지, 갈매기도 낚싯줄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다. 돌고래를 육지에서 관찰하자. 돌고래 보호구역을 늘리자. 돌고래를 많이 알리자."
곶자왈 말 보호센터 '마레 숲'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경주마 등으로 이용된 뒤 버려지거나 도축될 위기에 처한 말을 구조해 돌보는 시설이란다.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아이는 말의 목을 긁어주니 말이 좋아해서 즐거웠는데, 말똥 치우는 건 또 무척 힘든 일이라고 했다. 아이는 해발 1700m 한라산 윗세오름에도 올랐다. 노트에는 힘겨웠던 등반 과정이 고스란히 담겼는데, 결국 '해발 1700m를 올라가서, 뿌듯했다'라는 소감으로 끝났다.

▲4월 23일 성미산학교 학생들이 알뜨르비행장에서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성미산학교
선생님들에게 9박 10일의 이동학습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많은 노력과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안전문제에 많은 신경을 써야했고, 양육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예산을 최소한으로 정했는데 그만큼의 편리함과 효율은 덜어낼 수밖에 없었다. 출발부터 고생길이었다.
선생님들은 사전에 설명회까지 열어 양육자들의 궁금증이나 걱정을 청취했다. 선생님들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던 양육자들은 응원과 지지를 보냈다. 결국 여행용 캐리어 대신 60리터짜리 배낭을 메고 제주도로 떠났던 아이는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선생님들과 이들이 인솔한 학생 모두 마찬가지였다.
시내버스를 타고 음식을 손수 만들고 손빨래를 해야했던 불편함은 아이에게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 유명 관광지가 아닌 생명과 평화를 보고 듣기 위해 찾았던 곳에서 아이는 마음에 무엇을 심었을까. 아이를 비롯해 이동학습을 다녀온 학생들이 숙제로 제출해야 하는 글이 기다려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