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연로하신 아버지를 모시고 살면 아버지 생신과 어머니 제사는 기본적으로 챙기는 행사다. 오늘 같은 어버이날도 중요한데 아버지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리지 못했다. 다니는 경로당에서 아버지가 카네이션을 엊그제 달고 오셨기 때문이다. 매년 이맘때 경로당 옆에 있는 유아원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들께 공경하는 뜻으로 선물한 것이다.

 아버지께 어버이날 인사를 드리며.
아버지께 어버이날 인사를 드리며. ⓒ nataliekinnear on Unsplash

8일 새벽, 아버지께 어버이날 축하 인사를 드렸다.

"어버이날입니다. 축하드립니다."
"고마워, 아비도 건강하고..."

이어 내가 말을 하기도 전에 아버지는 작심한 듯 말을 꺼내셨다. "어버이날 선물은 전혀 고려하지 말라"는 것이다. 벌써 눈치채고 하신 말 같았다. 며칠 전 아버지 봄 점퍼에 대해 아내와 이야기하면서 어버이날 선물로 정하고 말씀드릴 참이었다.

어버이날 외식 하지 말자는 아버지

AD
그리고 아버지는 하나를 더 거론하셨다. "외식도 준비하지 말라"는 것이다. 바깥에서 식사하는 것이 번거롭다며 만류했다. 바쁜 손자들에게도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선물과 외식까지 모두 거부하는 아버지를 보며 손을 잡았다. 그렇게까지 반대하실 필요가 없다는 뜻이지만 아버지는 완강했다. 사실 아버지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특히 외식은 내심 걱정되는 부분이다.

어느 날부터 아버지는 식사하실 때 음식을 흘리고 바닥에도 자주 떨어트렸다. 사실 나도 그런 실수를 더러 한다. 아버지가 손이 떨리거나 인지력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음식을 흘리거나 떨어지면 아버지 스스로 식탁 아래로 머리를 숙이고 그것을 치우려고 하는 것이 반복됐다. 그때마다 내가 대신 치우거나 돕지만 아버지는 그게 매우 신경 쓰이신 모양이다. 외식을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그런 사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사진은 지난해 어버이날 카네이션 선물
사진은 지난해 어버이날 카네이션 선물 ⓒ 이혁진

몇 달 전 경로당에서 오신 아버지 옷을 보고 놀랐다. 옷과 바지에는 음식 국물 흘린 자국이 여러 군데이고 닦은 흔적도 없었다. 그걸 모르고 귀가하셨다니 놀랐다. 아버지 성정으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기쁜 날인데도 눈물이 난 날

그런데 내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옷에 흘린 음식 자국을 보여주면서 옷을 바로 세탁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그 지저분한 옷을 유심히 보고 충격을 받으셨다. 이후 아버지는 식사 때마다 조심하는 게 역력하고 외식도 부담스럽고 귀찮다고 말씀 하신다. 자존심 강하신 아버지는 외식할 때마다 매번 앞치마를 목에 거는 것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집에서 먹는 것이 제일 맛있다고 에둘러 말한다.

일단 우리는 어버이날 외식은 생략하기로 했다. 그런데 반전이 생겼다. 아버지가 다음 주 내 생일에는 외식할 장소를 알아보라고 특별히 지시했다. 어버이날 외식은 반대하면서 자식 생일 외식은 하겠다는 것이다. 그날 음식 흘릴 것을 감수하실 용기를 내신 것이다. 나는 아버지 제안을 재차 확인했다.

"아버지, 그럼 아들 생일에는 외식 하시기로 약속하신 겁니다."

97세인 아버지와 72세 아들 부자는 오늘 어버이날 대화를 이렇게 마무리했다. 기쁜 날인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났다. 아버지는 시력이 안 좋아 내 눈물을 보지 못했다. 옥신각신하면서도 자식 사랑을 보여주신 아버지께 감사하는 날이다. 부디 하루하루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60대 이상 시민기자들의 사는이야기
#어버이날#선물#외식#자식사랑#카네이션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재

‘은퇴 후 살림하는 남자’(은살남)

일상을 메모와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기존 언론과 다른 오마이뉴스를 통해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남북한 이산가족과 탈북민 등 사회적 약자입니다.





독자의견1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