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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8일은 '어버이날',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효를 으뜸가는 가치로 여기고 있는데, 굳이 하루를 정해 '어버이날'로 기념하게 된 배경이 문득 궁금해졌다. 어버이날은 1900년대 초 미국의 안나 자비스라는 여성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리며 흰 카네이션을 나누어 준 마음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한국 전쟁 이후 어머니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국무회의를 거쳐 1956년에 처음으로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공식 지정했고 이후 아버지와 어른들까지 공경하자는 의미로 범위가 확대되면서 '어버이날'로 명칭이 바뀌었다.
어릴 적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를 다닐 때 5월이 되면 학교에서 종이로 카네이션을 만들고 부모님께 드리는 편지를 꼭 쓰게 했다. 책가방 깊숙이 넣어 집으로 돌아와 쑥스럽게 내밀었던 기억이 아직 남아 있다. 그 기억이 아직 선명한데 어느덧 나도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어버이날이면 나는 부모님을 챙기고, 나의 자녀들은 나를 챙긴다.
유독 생각나는 춘매씨

▲어버이날이 되면 그립고 생각나는 한 분. ⓒ thefriscobay on Unsplash
매년 '어버이날'이 되면 그립고 생각나는 한 분이 있다. 내 시어머니 춘매씨다. 살아생전 늘 먼저 가신 남편(시아버지)을 그리워하셨다. 그렇게 어머니가 아버님 곁으로 훌쩍 떠나신 지도 11년째다. 내가 결혼할 당시, 어머니는 혼자셨다. 얼굴도 모르는 시아버지 얘기를 참 많이도 들었다. 일찍 사별한 남편을 그리워하시던 어머니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머니는 마흔이 넘어 얻은 막내아들을 유난히 예뻐하셨다. 나는 춘매씨의 막내며느리다. 언젠가부터 남편이 퇴근할 즈음 전화를 하면 매번 통화 중이었다. 어머니와 통화 중이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거의 매일을 퇴근하면서 시골에 계신 어머니께 전화해 말동무를 해주곤 했다. 아침부터 있었던 소소한 일에서 곁에 안 계신 남편(시아버지)이 보고 싶은 마음까지 막내아들에게 털어놓으며 어머니의 하루는 끝이 나곤 했다.
현관문에 들어서는 남편에게 '왜 그렇게 통화 중이었어? 어머니랑 통화했어?'라고 물으면, 남편은 멋쩍게 '어. 안 끊으시네. 매번 같은 말씀이지 뭐'라고 답하곤 했다. 남편이 야근이라도 하는 날엔 내가 대신 전화를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익숙했던 통화도, 수화기 너머 들려오던 어머니의 투정 담긴 목소리도 가슴속 그리움으로만 남아 있다. 그때는 몰랐다. 어머니가 끊지 못하고 계속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이, 텅 빈 집안에 홀로 계신 외로움 때문이었다는 것을.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 길었던 통화 속에 담겼던 지독한 어머니의 고독을 헤아린다.
가끔 어머니께 다니러 가면 냉장고 속 날짜 지난 음식들을 버리고, 이방 저방 구석구석 먼지를 훑어 내고, 특히나 바닥이 미끄러워 넘어지기 십상인 욕실 바닥을 빡빡 문질러 씻어내곤 했다. 그때마다 오느라 고생했는데, 와서 청소만 하냐며, 그만하라고 손사래를 치셨다. 하지만 정작 깨끗해진 집안을 둘러보시는 어머니의 얼굴엔 기쁨이 가득했다. 이제는 아무리 먼지를 닦아내고 바닥을 박박 닦고 싶어도 어머니의 공간에 갈 수 없다. 내 어머니 춘매씨가 너무나 보고 싶고 그립다.
'어머니, 아버님이랑 잘 계시죠? 저는 잘 있습니다. 당신의 막내아들과 잘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어머니
내가 어버이날이면 그리워하는 시어머니가 계시듯, 내 곁에는 또 한 명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나의 아버지다. 팔순이 넘은 아버지는 당신의 어머니인 나의 할머니를 그리워하신다. 아버지는 딸기를 제일 좋아하신다. 할머니가 생전에 딸기를 유독 좋아하셨기 때문이란다. 어쩌면 아버지가 딸기를 좋아하는 건 딸기를 드시며 할머니를 떠올릴 수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얼마 전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어머니가 초저녁에 꾸벅꾸벅 졸고 있으면, 방에 들어가 편히 주무시지 왜 여기서 자냐고 언성을 높인 적이 많았는데, 요즘 내가 TV 앞에서 졸아. 이제야 어머니 마음을 알 것 같아서, 그때 소리 지른 게 너무 죄송하고 생각이 나."
최근 들어 저녁을 먹은 후, 졸고 계신 아버지에게 방에 들어가 편히 주무시라고 얘기하곤 했는데, 아버지는 그때 할머니에게 했던 그 말을 그대로 자식들에게 들으며 할머니를 생각하고 계셨던 거다.
어버이가 되어 카네이션을 받는 마음

▲10년전 받은 어버이날 용돈봉투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 김희
이제는 내가 자식들에게 카네이션을 받는 어버이가 되었다. 10년 전, 대학교 1학년이던 딸이 아르바이트로 귀하게 모아 내밀었던 '5천만 원'(오만 원권 한 장, 1천원권 한 장, 만 원권 한 장)을 나는 지금도 고이 간직하고 있다. 아르바이트로 어렵게 벌어 용돈으로 쓰던 딸이 내민 귀한 돈이었기 때문이다.
오래전 돌아가시고 안 계신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팔순의 아버지, 막내아들을 그토록 예뻐했던 시어머니, 그런 춘매씨가 그리운 나, 돈 버느라 고생하는 엄마를 챙겼던 내 딸의 마음에서, 나는 깨닫는다. 어버이날은 앞서간 부모의 외로움과 고독을 뒤늦게나마 헤아리며, 그리워하고, 다시 그 사랑을 자식에게 받으며 서로의 인생을 보듬어가는 날이라는 것을. 우리가 주고받는 카네이션 한 송이는 단순한 꽃 한 송이가 아니다. 할머니에서 아버지로, 시어머니에서 남편에게로, 그리고 나와 내 딸에게로 이어지는 끊어지지 않는 사랑의 동아줄이었다.

▲10년전 선물받은 봉투대학교 1학년이던 딸에게 받은 어버이날 용돈 봉투. ⓒ 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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