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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5.06 13:22최종 업데이트 26.05.06 13:22

친정에 있던 19년 된 김치냉장고가 멈췄다

자식들 오면 활짝 열리는, 엄마의 사랑이 담긴 저장식품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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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에 있던 김치 냉장고가 멈췄다. 19년을 썼다고 하셨다. 벌써 그렇게 되었구나. 친정에 김치냉장고를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친정에 있는 김치 냉장고는 저장식품 창고다. 한때 유행하던 뚜껑식으로 윗쪽에 자주색 유광 팬넬이 붙어 있다. 양쪽 뚜껑을 열면 김치통이 들어 있을 것 같지만 김치는 보이지 않는다. 제일 윗쪽에 검정 비닐 봉지와 크고 작은 통을 들어내야 김치통이 보인다.

한쪽에는 된장과 고추장이 담긴 통과 함께 잡곡과 밑반찬, 짱아찌와 검은 비닐 봉지에 무언가가 담겨 있다. 이게 다 뭘까 싶어서 김치냉장고 뚜껑을 열면 미간이 찌푸려지곤 했다. 저녁식사 시간이 되면 엄마는 제대로 고정되지 않는 뚜껑을 머리로 받히면서 김치를 꺼내신다. 식사하다 말고 '아. 맞다' 하면서 김치 냉장고 쪽으로 가신다.

"이번에 새로 담근 물김치가 있는데 안꺼냈네"라는 말과 함께 김치통에서 새로운 김치를 꺼내 주신다. 김치가 종류별로 나오고, 김치 냉장고 속에서 대기조로 기다리고 있던 오이지와 반찬들이 다 나오면 그제서야 뚜껑은 더이상 열리지 않는다. 가족들이 모이는 날이면 며칠 전부터 김치냉장고 안에는 두 집으로 갈 분량으로 반찬과 김치들이 나눠서 담기기 시작한다.

식사가 끝나면 김치 냉장고 뚜껑은 다시 바빠진다. 두 딸 집으로 보내질 김치와 반찬을 꺼내기 위해서 바쁘게 열렸다 닫힌다. 냉기는 점점 사라져 버린다. 가족들이 모이는 날이면 김치 냉장고의 기능이 상실되어 버리는 것 같다. 평소에는 열릴 일이 없는 김치냉장고, 가족들이 오면 바쁘게 일하던 김치 냉장고가 19년 동안 자신의 기능에 충실하다 생을 마감했다.

 새로 구입한 김치 냉장고.
새로 구입한 김치 냉장고. ⓒ 이종연

엊그제 엄마가 뚜껑식 김치 냉장고를 주문해 달라고 하셨다. 나는 그건 김치통을 꺼내고 넣기 힘들다고, 지난번에 허리가 많이 아프셨으니 안 된다고 했다. 엄마는 그래도 뚜껑식이 김치가 맛있다고 강조하셨다. 나는 내 멋대로 스탠드형으로 주문해 드렸다.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 드리고 싶지만 이번만큼은 엄마의 허리를 생각해서 내 생각을 밀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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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맛이 왜 그리 중요할까. 본인의 아픈 허리보다 김치 맛이 중요해서 요즘은 찾지도 않는 뚜껑식 김치 냉장고를 왜 사야만 하는 걸까. 그래야 하는 엄마의 마음을 따라가 본다. 엄마는 통화 할 때도 언제나 "밥은 먹었니?" 물으시고 집에 가면 " 더 먹어. 왜 그것 밖에 안 먹어?"라고 하신다. 가족들은 장난 삼아 "어머니가 만들어 놓으신 음식을 다 먹어야 끝난다"고 한다.

박재연 소통전문가의 책 <나는 왜 네 말이 힘들까>에는 소통이 안 될 때는 번역기를 돌리라고 한다. 번역기를 돌려보니 밥 먹었니, 더 먹어, 김치 냉장고는 뚜껑식이어야 한다는 모든 말이 다 사랑이라는 말로 들린다. 엄마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는 의미에서 김치냉장고 아랫 부분은 서랍식으로 골랐다. 서랍 두 칸이 뚜껑식을 사지 못한 아쉬운 마음을 대체해 드릴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오래된 친정의 김치냉장고를 떠나보내며 그 안에 담긴 사랑과 정을 새로운 김치냉장고에 옮겨 담는 일만 남았다. 그 안에 꺼내주시는 사랑까지도 맛있게 먹어야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sns에도 실립니다


#부모님댁김치냉장고#묵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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