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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5.14 11:36최종 업데이트 26.05.14 11:36

멸종의 목록이 적힌 달력이 있다

[시로 읽는 오늘] 이지호 '멸종 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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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작가회의 시분과위원회에서 기획한 '시로 읽는 오늘'을 연재합니다. 시로 아침을 시작한다면, 수많은 갈등과 전쟁도 줄어들 것입니다. 독자들은 힘 있는 언어를 익혀 튼튼한 내면을 가꿀 수 있고, 다양한 시를 통해 새로운 시민의 감수성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의 첨예한 문제를 시인의 예민한 감각으로 길어 올린 한국시를 매주 두 편씩 선정하여, 추천 글과 함께 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멸종 달력
- 이지호

멸종의 목록이 적힌 달력이 있다
우수나 소만도 없는 달력
움트지 않는 고백으로
숫자를 거느린 생몰연대
날짜들과 이어진 날짜들
찢어진 꽃잎은 과거로 진화해 갈 뿐이다

철의 씨앗이 가득한 대장장이는 자연의 모양과 그들의 울음소리로 연장을 만들다 두 손이 멸종에 이르렀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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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일도 없이 숨어 있는 위기의 식물들 동물들

지린내에 기댄 광릉요강꽃이 휘청거리는 향기로 남는다
자태에 어긋나는
천한 이름이 피우는 말간 슬픔
수명은 도도한 흐름의 방향타다

곰이 인간이 버린 아이스크림 나무를 핥는다
동물원에서 붙여 준 이름에는 없는
목말랐던 야생의 이름으로 전설이 되어 가지만
관중이 버린 비굴한 식욕은 무거운 끝을 가진다

빼앗긴 서식지가 달력 안에서 기생하지만
여전히 늙어 가는 것으로 가벼워지는 숫자들
윤전기 소리마저 작아지고 있다는 소식과
새로운 종을 생산해 내는 기술의 속도
씨앗은 먼 미래이고 꽃은 멸종의 이름으로 만개해 있다

붉은 표시의 날들 주위로 멸종하는 평일의 한때
생일이 없는 두발짐승이
달력을 기웃거린다

출처_시집<색색의 알약들을 모아 저울에 올려놓고>, 걷는 사람, 2021
시인_이지호: 2011년 창비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말끝에 매달린 심장><색색의 알약들을 모아 저울에 올려놓고>가 있다.

 달력 속에서 멸종된 안녕이 만개하고 있다.
달력 속에서 멸종된 안녕이 만개하고 있다. ⓒ 박유하 시인(디지털 포엠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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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이라는 단어를 접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우리는 사라지는 존재들에 익숙해졌고, 그 자리에 남은 서늘한 감정에도 무뎌졌다. "멸종의 목록이 적힌 달력"에 "숨어있는 위기의 식물들 동물들" 목록은, 인간의 관점에서 소외되어 보호받지 못하는 수많은 종이 존재한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이상 기후로 서식지가 파괴되고, 멸종 위기에 있는 것은 비단 동식물만은 아니다. 인간도 대자연의 위기 앞에서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불안과 슬픔이 "생일이 없는 두발짐승"으로 멸종 달력 앞을 서성이게 한다. 자연의 시간으로 우리에게는 며칠의 시간이 남았을까. "씨앗은 먼 미래이고 꽃은 멸종의 이름으로 만개해있다"라는 시인의 말처럼 아이들이 사라진 텅 빈 거리를 막연히 바라보게 된다. (정미주 시인)

#이지호시인#멸종달력#색색의알약들을모아저울에올려놓고#한국작가회의#시분과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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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시로 읽는 오늘

(사)한국작가회의는 이 땅의 대표적인 문인단체로서 표현의 자유와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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