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가정의 달이다. 하지만 부모 이혼과 가정폭력 등으로 위기에 처한 청소년에게 5월은 잔인한 달이다. 공동체 행복과 사회 안전망 구축은 내 가정과 내 자식뿐 아니라 소외된 불우 아동과 위기 청소년에게도 사랑과 희망이 분배될 때 가능할 것이다. 부모와 사회로부터 버려지고 외면당한 아동과 위기 청소년의 눈물을 닦아주는 부부를 소개한다.
부모에게 버려진 청소년
초등 6학년 때 버려진 정후(가명·23), 자신을 학대하던 부모의 이혼으로 가정이 해체되면서 오갈 데가 없어진 그는 친척 집과 청소년 쉼터 등을 떠돌며 살았다. 하지만 불우한 환경에 좌절하지 않았다. 고깃집과 떡볶이 가게 알바와 건설 현장 잡부와 택배 상하차 등의 일하며 검정고시 공부해서 괜찮은 대학에 합격했다. 주변 사람들은 역경과 고난을 이겨낸 정후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고난은 끝나지 않았다. 청소년 쉼터에서 나쁜 형들의 폭력과 갈취, 악덕 사업주의 임금 착취와 체불을 견뎌냈던 정후가 군 훈련소에서 무너졌다. 불행한 성장 과정을 파악한 군은 그를 관심 사병으로 분류했고 공황장애 증세가 심해지자 의가사 제대시켰다. 좋은 부모 혹은 따뜻한 조부모가 있었으면 병 치료받게 하고 보약을 먹이면서 심신 안정을 취하게 했을 것인데...
험한 세상으로 원대 복귀한 정후는 병 치료보다 생존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사고당했다. 배달 대행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오토바이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보험을 들지 않은 오토바이를 배정한 대행업체가 교통사고로 수백만 원의 수리 비용이 발생하자 책임을 정후에게 떠넘겼다. 불행은 그치지 않았다. 나쁜 선배와 엮이면서 모아둔 돈을 날리고 재판까지 받게 되면서 백반증과 탈모까지 발생했다.
위기 청소년에게 기부한 '복학 장학금'이 전용됐지만

▲위기청소년과 불우아동을 돕고 있는 신경식-박재미 부부 ⓒ 조호진
검정고시 영어 과목에서 100점 만점을 받는 등 우수한 성적으로 2021년 K대 경영학과에 합격한 정후는 한 청소년 재단의 장학금으로 대학에 등록했다. 이 재단이 2학기 장학금도 지급하겠다고 하자 "더 어려운 학생에게 줬으면 좋겠다"며 사양했다. 정후는 대학 1학년 1학기에는 주 2~3일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여름방학에는 밤부터 새벽까지 택배 상하차 일하면서 생활비와 학비를 벌었다. 이렇게 고생해서 번 돈 100만 원을 자신을 도와준 청소년 재단에 기부할 정도로 기특한 청소년이었는데…
"부모에게 버림받았으면서도, 나쁜 형들의 폭력에 시달렸으면서도 부모와 세상을 원망하기보다 그 고통과 아픔에 지지 않으려고 눈물겨운 노력을 쏟으면서 홀로서기를 하는 정후를 도와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향해 달려간 성실한 학생이었으며, 저희가 운영하는 '소년희망공장'에서 일할 때도 책임감이 남다르게 강한 일꾼이었으며 버림받은 상처로 앓았던 우울증을 이겨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청년입니다."
이런 정후를 포기할 순 없었다. 정후를 돕고 있는 비영리 민간단체 '위기청소년의 좋은친구 어게인'(아래, 어게인)은 후원자인 신경식(55) 박재미(52) 부부에게 정후의 복학 장학금 지원을 요청했다. 위기에 처한 정후를 이대로 둔다면 어렵게 들어간 대학 포기는 물론 인생을 자포자기할 것만 같았다. 이들 부부는 복학 장학금을 흔쾌히 기부했고 정후도 역경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박재미씨는 정후 사연을 듣고 눈물 흘렸다. 최우수 특급전사로 뽑힐 정도로 건강했던 둘째 아들이 강직성 척추염에 시달리다 의가사 제대하는 과정을 겪었기에 정후의 아픔이 더 크게 와 닿았다. 부모와 가족 도움 없이 그 아픔을 감당하느라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이들 부부는 정후가 절망을 딛고 일어서길 기도했다.
그런데 상황이 더 나빠졌다. 오토바이 사고가 또 발생하고 우울증이 재발되는 등 상황이 긴박해지면서 이들 부부의 목적 후원금인 '복학 장학금'이 '긴급 생활비'로 전용됐다. 어게인 측은 이들 부부에게 정후의 상황을 알리면서 후원금 전용을 사과했다. 이들 부부는 "위기에 처한 정후에게 긴급하게 필요한 건 복학보다 생활이고, 생존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정후를 위해 더욱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정후는 현재 절망과 싸우고 있다.
"형편이 나아지면 도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전각가 신경식씨는 3남매가 태어날 때마다 기부금을 늘렸다. ⓒ 조호진
신경식씨는 부모 도움 없이 결혼했다. 그런데 취업한 외국계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임금이 7~8개월이나 체불됐다. 쌀은 물론이고 아기 분유마저 떨어지자 건설 현장으로 달려갔다. 엄동 추위를 솜바지로 달래면서 번 돈으로 아내의 허기를 채워주고 아기의 울음을 달래준 눈물겨운 시절이었다.
"형편이 나아지면 도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들 부부는 결혼하면서 어려운 아이들을 돕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궁핍이 닥쳐왔다. 남편이 "지금은 우리 살기도 팍팍하니 형편이 나아지면 그때 돕자"고 아내에게 말했다. 그러자 이웃 사랑에 대해서는 강경파인 아내가 "형편이 나아지면 기꺼이 도울 수 있을 것 같냐?"고 반문하면서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데는 경제적 능력 못지않게 그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면서 중단 없는 후원을 이어갔다.
첫째 아들(26)이 태어나자 첫째 아들 이름으로, 둘째 아들(23)이 태어나자 둘째 아들 이름으로 그리고, 셋째 딸(16·중3)까지 모두 후원 대열에 합류했다. 셋째 딸은 동아일보사와 인제군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한 '2025 여초서예대전' 중고등부 부문에서 대상을 받는 등 서예와 전각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경기도 파주에서 공방을 운영 중인 신씨가 어려운 아이들 돕게 된 계기를 밝혔다.
"정부와 지자체가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 있지만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은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안타까운 사실을 알게 되면서 관계기관이 추천한 아동 한 명에게 50만 원~150만 원가량을 지원했습니다. 그런데, 한부모 가정 중에 엄마가 큰 병에 걸리면서 어린 자녀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연을 전해 듣고 300만 원을 후원한 적이 있습니다. 복지관 관장이 기업이 후원한 것으로 알고 찾아왔는데 작은 도장 공방인 것을 보고 놀라워한 적이 있습니다."
3남매에게 '1등'이 아닌 '나눔'을 가르친 부모

▲13년째 전각가의 길을 걷고 있는 신경식씨가 새기고 싶은 이름은 '행복'이다. ⓒ 신경식
이들 부부가 3남매에게 강조한 것은 '공부해라', '1등 하라'가 아니라 '어려운 이웃을 도와야 한다'였다. 큰아들이 "우리 집부터 번듯한 데로 이사 가고 나서 후원하면 안 되느냐"라고 볼멘소리를 한 까닭은 자기 집도 없이 이사 다니는 게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파주에서만 11번이나 이사 다니는 형편인데도 집을 장만하는 일보다 어려운 이웃 돕는 일을 앞세우는 부모의 이해하기 힘든 모습에 항의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아빠 신씨는 "아이들에게 잘못한 게 많다"면서 이렇게 고백했다.
"초등학생인 큰아들의 그림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놀이공원과 쇼핑에 다녀온 것을 그렸는데 제 큰아들의 그림에는 물품 구입 때문에 간 이마트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습니다. 주말이면 체험 프로그램 운영 때문에 더 바빴기 때문에 아이들과 놀러 갈 여유가 없었습니다. 물론, 기부금을 가족을 위해 사용하고 어떻게든 짬을 내면 남들처럼 해외여행도 가고 브랜드 옷을 사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큰아들 중학생 때, 브랜드 패딩이 유행했다. 엄마 박씨가 큰아들에게 중저가 패딩을 사주었는데 그 패딩을 입고 등교한 큰아들이 다음 날부터는 입지 않았다. 다른 학부모들에게 "요즘 아이들은 브랜드 패딩이 아니면 안 입는다"는 말을 들었다. 청소년들에게 브랜드 패딩은 그냥 옷이 아니라 자존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박씨는 미안한 마음으로 브랜드 패딩을 사주었다. 겨울이 끝날 무렵에 이월 상품으로 대폭 할인 판매할 때였다.
엄마 박씨는 "큰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진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럴 때면 부모의 도움 없이 살아가는 아이들이 마음에 걸렸다"고 말했다. 아빠 신씨는 불우 아동과 청소년을 돕는 과정에서 발생한 아들과의 갈등을 이렇게 밝히면서 사과했다.
"고아와 한부모, 병든 부모를 둔 아이들은 부모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이 아이들의 아픔을 외면한 채 내 자식만 챙기는 건 죄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아이들이 원하는 브랜드 옷을 사주고, 학원비를 지원해주라는 단서를 달아서 기부했습니다. 취업에 성공한 보육원 출신 청년에겐 브랜드 옷을 사주었으나 우리 아이들에겐 중저가 또는 이웃에게 얻어온 중고 옷을 입혔습니다.
엄마 아빠를 이해해주길 바랐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큰아들은 상처가 얼마나 컸던지 군대 입대를 앞두고 엄마 아빠와 말다툼한 뒤 한 달 동안 가출했다가 입대했고, 외박과 외출을 해도 집에 오지 않았습니다. 엄마 아빠가 미안하다고 큰아들에게 사과하고 안아주면서 지금은 관계가 많이 회복됐습니다. 이 자리 빌어서 큰아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들 부부가 2013년부터 2025년까지 전달한 기부금은 4633만 2000원. 사회복지 기관 등을 통해 나눈 기부금은 아프리카 말라위 아동과 국내의 어려운 아동과 청소년, 그리고 청년 돕는 일에 사용됐다.
미담인 도장 만들기 체험에 50만 명 넘게 참여

▲신경식-박재미 부부가 운영하는 '캘리세상미담인'의 도장 만들기 체험에는 국내는 물론 외국인 등 50만 명이 넘게 참석했다. ⓒ 신경식
신경식씨는 전각가(篆刻家)이자 인문학 강사다. 경기도 파주의 박물관 학예사, 파주문화원 교육 강사, 파주평생교육기관 교육 강사로 활동했지만 비정규직이었다. 박봉으로 3남매를 키우기 힘들었던 신씨는 박물관 학예사 경험과 도장을 만들어 주변 사람에게 선물했던 취미를 살려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은 도장'이란 뜻의 공방 체험장 '미담인'을 만들었다. 아내 박씨와 함께 2013년 공동 창업했으니 어느덧 13년의 세월이 흘렀다.
"2013년 창업 초기에는 '인재'(印材)를 직접 만들어 나무 도장으로 사용했는데 너무 힘들었습니다. 수제도장 만들기 체험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 하려고 가시나 돌출 부분을 다듬기 위해 일주일에 3~4일을 밤샘 작업을 하다보니 손바닥과 손목에 무리가 가면서 거북이 등짝처럼 엉망이 됐습니다. 밤샘 작업을 하다가 손톱을 자르는 등 손이 크게 상하는 문제 때문에 2019년부터는 나무 재료 비중을 줄이고 돌 도장을 점차 늘렸습니다."
전각가의 길을 13년 째 걷고 있는 신씨는 고된 작업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 손목과 팔 인대가 아파서 젓가락만 들어도 팔이 아프더니 팔꿈치 인대가 찢어졌다. 잠자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럽다.
아내 박씨는 경기도 파주 헤이리에서 전각&수제도장 만들기 교육·체험 공방을 운영하고 인문학 전각 강사인 남편 신씨는 전국 각지로 출장 강연을 다닌다. 이들 부부는 ▲경기인재개발원 공무원 특강 ▲서울대학교 외국인 교환학생 체험 ▲연세대학교 외국인 유학생 체험 ▲송파글마루도서관 책도장 만들기 특강 ▲충남 시립도서관 직원 역량 강화 교육을 비롯해 1천 회가 넘는 출강을 통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2013년부터 전각&수제도장 만들기와 출강 체험과 체험 키트를 통한 비대면 도장 만들기 체험을 한 인원은 2024년 8월 현재까지 자그만지 50만 6000명이다.
이들 중 5만 명이 넘는 학생과 공무원, 외국인 관광객들은 자신의 이름을 직접 디자인하고 새기면서 세상에 하나뿐인 수제도장을 소장했다. 2016년부터 올해 겨울까지 4만 5000여 곳의 초중고, 유치원, 어린이집 졸업 도장을 만들었다. 국내 최초로 운영 중인 '미담인'의 전각&수제도장 체험은 2016년과 2018년 경기관광공사 인증 우수 체험프로그램으로 선정되고 2020년과 2023년 교육부의 교육 체험기관으로 인증됐다.
에필로그, 기부는 긍휼한 마음으로

▲전각가 신경식씨의 손 ⓒ 신경식
전각가의 손바닥은 갈라지고 오래 낀 목장갑은 낡았다. 다섯 식구의 가장인 그는 거북등처럼 갈라진 손으로 인장을 새기고 전국 각지로 특강을 다니면서 가족을 부양했다. 이 세상의 다리가 끊어질지라도 가장의 길이 끊어지면 안 되기 때문에 가장의 무거운 짐을 지고 여기까지 왔다. 그가 가정에만 충실했다면 지금보다는 더 부유해졌을 것이다. 그런데, 그 길을 일부러 선택하지 않았다.
전각가인 그가 도장에 꼭 새기고 싶은 이름은 '행복'이다. 내 가정과 내 자식만 행복한 편협한 행복이 아니라 불우한 이웃들과 그 아이들도 함께 행복해지는 온전한 행복을 새기고 싶다. 그래서 이들 부부는 함께 행복해지는 이름을 새기기 위해 온몸을 갈아 넣으면서 돈을 벌고 있다. 이를 위해 아내 박씨는 헤이리에 '수수'라는 전통찻집을 차렸다. 공방 '미담인'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들 부부는 불우 아동의 상처와 멍을 씻어주기 위해 우리 사회가 애쓰지 않는다면 5월은 결코 온전한 가정의 달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신경식씨는 어린이날을 앞두고 "불우한 아동들에게 어린이날은 먼 나라 축제"라면서 "병든 한부모와 실의에 빠진 기초생활 수급 가정 아동들에게 어린이날은 슬프고 우울한 날"이라고 안타까워하면서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는 한부모 가정과 기초생활 수급 가정 어린이에게 각각 50만 원씩 100만 원을 기부했다. 이들 부부의 기부는 시혜를 베푸는 가진 자의 그것이 아니라 긍휼한 마음의 나눔이다.
불우 아동과 청소년 돕는 일은 쉽지 않다. 선한 뜻으로 기부한 돈이 뜻대로 사용되지 않은 경우가 있다. 기부금이 불우 청소년이 아닌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의 술값으로 사용되거나 술병이 폭력 도구로 사용되는 경우가 없진 않다. 후원금을 유용 또는 횡령했다는 뉴스 또한 끊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의심의 눈초리로 불을 켠 후원자들은 기부를 중단하기도 하지만 이들 부부의 기부하는 마음은 긍휼함이다.
"후원금이 후원 아동 아버지의 술값으로 사용되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단전을 막기 위한 전기세와 추위를 달래주는 가스값으로 사용되길 바라고 믿는 마음으로 후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