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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자무싸 스틸컷
모자무싸 스틸컷 ⓒ JTBC
9년 전이었다. 사고로 박리된 망막을 붙이는 수술 후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친한 친구가 서울까지 올라왔다. 친구는 잘 될 거라든지 흔히 건네는 희망을 가지라는 말 따위는 하지 않았다. 곁에서 묵묵히 내 손을 잡고 앉아 있었다. 끝내 내 앞에서는 울지 않았다.

돌아가기 전 친구는 남편에게 말했다고 했다. 보호자로 교대할 사람이 필요하면 언제든 오겠다고. 밤이든 낮이든 상관없이 오겠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한 후 돌아섰다고 했다. 언제든 도움을 주겠다는 말이 얼마나 안심하게 만들었는지 그 말이 아직도 남아있다.

최근 몰입해서 보고 있는 JTBC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아래 모자무싸)에서 가장 인상 깊은 문구 하나가 있었다. 두 주인공이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감정을 확인하는 철길건널목 앞 문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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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혔을 때 돌파하세요.'

차량이 철도 건널목을 지날 때 차단봉이 내려져 갇히는 상황에 대비한 문구 같았다. 열차에 치이는 위기에 처했을 때 차단봉을 부수고라도 빠져나가라는 명징한 말로 닿았다.

내 마음에 이런 의문이 들었다.

'말은 쉽지. 갑자기 갇혔을 때 그걸 혼자 돌파해 내기가 어디 쉽나??'

돌이켜보면 나는 오랫동안 마음이 갇힌 상태로 살았다. 시력을 잃어가는 과정 속에서 누군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한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 앞에서 수없이 작아졌다. 턱과 허들 앞에서 자주 망설였고, 보이지 않는 장벽 앞에서는 멈춰 서기 일쑤였다. 할 수 없는 것들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나는 점점 더 무가치하다는 감각 속에 갇혀 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달랐다. 백지 앞에 앉으면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허들도 난간도 상관없이 훌쩍 뛰어넘었다. 두 팔을 휘저으며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단단히 걷는 것, 가고 싶을 때 어디든 갈 수 있는 게 얼마나 사람답게 만드는지 갇혀 본 사람은 안다.

글쓰기는 내게 차곡차곡 돌파해 내는 과정이었다. 여전히 해방을 얻지 못한 채 늘 내 발목을 잡는 지난 시간들에서, 때때로 나약하게 쪼그라드는 자존감으로부터, 가장 사소한 것에서도 각인되는 무가치함에서 말이다. 이렇게 시민기자로 글을 쓸 수 있는 데까지 왔으니 눈부신 결과가 아닐까 한다.

백지 앞에서는 철저하게 혼자여야 했다. 오히려 좋았다. 끝없이 출렁이는 문장들을 쏟아내는 일은 나를 끝 모를 자유의 세계로 데리고 갔다. 단어와 단어를 잇고, 문장과 문장을 꿰매어 하나의 완성품을 직조해 내는 일은 가슴이 벅차서 터질지도 모르겠다는 마음까지도 알게 했다.

'모자무싸'에서 극 중 변은아(고윤정)가 황동만(구교환)에게 이런 말을 한다.

"혼자 하면 지쳐요. 옆에서 재미있다, 재미없다 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덜 지쳐요. 제가 봐줄게요."

아, 삶이란 게 원래 지침을 기본값으로 가지고 가는 거구나. 그런데 그 곁에 어떤 사람이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말로 들렸다. 내 마음의 감정 시계에도 초록불이 뜨던 장면이었다. 삶은 원래 지치는 방향으로 흐른다. 끝까지 가는 파워, 대책 없이 쏟아지는 무기력의 물살을 가르는 돌파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함께 쓰는 글 공동체에서 그런 사람들을 만났다. 서로의 글을 읽고 저마다의 문장에 마음을 보태던 시간과 진심 어린 말들, 글마다 달리던 온기 가득한 댓글에서도 그랬다. 혼자라면 차곡차곡 쌓이지 못했을 글을 함께라서 쓸 수 있었다.

 나를 살리는 댓글
나를 살리는 댓글 ⓒ 이희진

글을 통해 소통하는 동안은 편견도 허들도 없었다. 무가치하다고 말할 때 존재만으로도 가치 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었다. 더 멀리, 더 먼 곳까지 함께 가보자고 손 내미는 이들을 만났다. 나는 때때로 고개를 내저었지만, 우리가 곁에 있다고 가만가만 토닥이는 친구들이 있었다.

나는 불안의 신발을 신고 걷는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걸음은 느리고 조심스럽다. 삶도 그렇다. 나도 모르게 시시때때로 직면하는 무가치함은 이내 쨍쨍한 감정에도 먹구름을 드리운다. 다만 온기를 머금고 무작정 달려든 환대는 내 인생에도 날씨를 만들기에 충분했다. 혼자서는 돌파할 수 없는 길을 함께 걸어 나왔다. 사람을 살리는 행위가 비단 의사의 그것만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글쓰기가 가져다준 효용은 이런 게 파워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늘 신고 다니는 불안의 신발을 벗어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용기, 아무렴 맨발로도 괜찮을 것 같다는 무모함, 어디든 뛰어볼 수 있을 것 같은 벅참이 고요하고 조용했던 내 일상을 흔들었다.

'무가치'라는 '갇힘'은 비단 나 혼자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사실 저마다의 무가치함과 힘겨운 싸움 중이다. 각자가 짊어진 삶의 무게는 가치로움을 짓누르고 하루하루를 무심코 소비하게 만든다. 의식의 흐름은 홀로 내버려 두면 반드시 나를 끌어내리고 곤두박질치게 만드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른다.

다만 사람을 살리는 한 마디, 조심스레 건넨 이웃의 따뜻한 손길은 중력을 거스르는 경험을 선물한다. 감히 창조 질서를 역행해 보는 무시무시한 파워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하는 발칙한 상상도 해 본다.

늘 신고 다니는 불안의 신발끈을 매만져 본다. 언젠가 이 불안도 벗어볼 날이 있지 않을까? 그런 날에는 빌리 엘리엇 한 장면처럼 나도 폴짝폴짝 뛰어볼 것이다. 어쩌다 운 좋은 날, 새로운 신발을 신게 된다면 한 번도 갱신해 본 적 없는 속도를 뛰어넘어 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sns와 브런치에도 올라갑니다.


#무가치함을#돌파하는#환대#다정함#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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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주부이자 선생님, 글과 아이들을 사랑하는 사람. 어둠 속에서도 가장 찬란한 빛을 이야기하는 아이러니한 생의 주인공. 다정한 이웃들과 동행하는 반딧불 라이프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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