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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며 수많은 인연을 만나고 헤어진다. 어떤 인연은 팽팽한 줄처럼 이어지지만, 어떤 인연은 사소한 오해나 가치관의 차이로 '툭' 끊어지기도 한다. 예순을 넘겨보니 알겠다. 인연이란 결코 일방통행으로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상대에 대한 배려와 믿음이 없다면 그 길은 금세 끊기고 만다. 누군가와 마음을 주고받는 일이 절대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는 요즘이다.

나는 늦은 나이에 대학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나이라 시험 기간은 늘 불안하다. 이번에도 장학금을 놓치지 않으려 열흘 동안 외부 연락을 끊고 공부에 매달렸다. 홑벌이하는 남편의 어깨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지난 4월 19일, 마지막 시험을 치르자마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같이 나온 50년 지기다. 한때는 여럿이 어울렸으나 세월의 풍파 속에 이제 내 곁에 딱 하나 남은 죽마고우다.

시험 끝! 친구에게 전화한 이유

겹벚꽃 경산 환성사에 겹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겹벚꽃경산 환성사에 겹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 황윤옥

"나 드디어 시험 끝났어! 언제 한번 볼까?"
"그래? 고생했네. 내가 꽃구경시켜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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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와 글쓰기에 파묻혀 지내는 '집순이'인 나에게 콧바람을 쐬어 주고 싶었나 보다. 친구는 퇴직 후에도 전국을 누빌 만큼 활동적이다. 거창 창포원에 데려가겠다는 말에 며칠 전부터 어린아이처럼 가슴이 설렜다.

지난해 12월 정년퇴직한 친구는 요즘 국화 분재를 배우고 수영을 하며 인생 2막을 즐기고 있다. 지난 겨울, 퇴직 축하 여행 이후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라 기대가 컸다. 약속 날인 지난달 29일 아침, 친구는 구미에서 대구까지 직접 차를 몰고 우리 집 앞으로 왔다. 늘 언니처럼 나를 챙기는 고마운 친구다.

"창포원 대신 경산 환성사에 가자."

꽃구경을 원 없이 하려던 계획은 틀어졌지만 상관없었다. 친구와 함께라면 어디든 좋으니까. 우리는 숟가락 개수까지 다 알 정도로 가난했던 시절을 함께 지나왔다. 눈빛만으로도, 숨소리 하나만으로도 서로의 속내를 읽어내는 사이다.

환성사 마당의 겹벚꽃은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평일 산사는 고요했고, 스님의 염불 소리는 붕 떠 있던 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 주었다. 짧은 여행을 마치고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친구가 묵직한 가방 하나를 건넸다.

"이거 내가 직접 담근 된장이랑 간장이야. 입에 맞을지 모르겠네."

가방 안에는 된장과 간장이 얌전하게 놓여 있었다. 그 옆엔 껍질을 말끔히 벗은 대파들이 위풍당당하게 곁을 지키고 있었다. 친구가 건넨 것은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래 전 친정엄마에게 받았던 지극한 사랑과 닮아 있었다.

엄마 손맛을 떠오르게 한 친구의 선물

친구가 주고 간 선물 친구가 직접 담근 된장과 간장, 그리고 껍질까지 다 벗긴 대파입니다.
친구가 주고 간 선물친구가 직접 담근 된장과 간장, 그리고 껍질까지 다 벗긴 대파입니다. ⓒ 황윤옥

육남매를 키운 엄마의 손맛은 우리에게 사랑이자 위로였다. 자식들이 다 출가한 뒤에도 엄마는 된장, 고추장은 물론 김장까지 도맡아 하셨다. 엄마의 장독대와 베란다에는 늘 반질반질하게 닦인 항아리들이 가득했다. 파리가 앉아도 미끄러질 만큼 윤이 났다.

내가 친정에 가는 날이면 엄마는 유리병에 된장을 꾹꾹 눌러 담아 주셨다. '친정 장은 사 먹어야 잘 산다'라는 속설을 핑계로 나는 엄마 주머니에 천 원짜리 한 장을 찔러 넣어드리곤 했다. 그러다 40대 초반, 처음으로 직접 된장을 담가보았다. 일흔 넘으신 엄마의 손맛을 미리 배워둬야겠다는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시킨 대로 담근 첫 장은 노르스름하니 맛이 일품이었다. 하지만 자신만만하게 도전한 두 번째 장이 문제였다.

어느 여름날 장독을 열었다가 나는 까무러칠 뻔했다. 하얀 벌레들이 꿈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위가 약한 나는 고함을 지르며 뚜껑을 덮어버렸다. 연신 헛구역질을 하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빨리 좀 와봐! 장독에 구더기 생겼어!"

달려온 엄마는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맨손으로 벌레를 잡아내셨다. 나는 그 모습을 보지도 못하고 부엌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관리를 잘못했다며 혀를 끌끌 차는 엄마 앞에서 나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나 이제 절대 장 안 담글래. 평생 엄마표 된장만 먹을 거야."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라는 말이 딱 내 처지였다. 그 후로 엄마가 여든둘의 연세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나는 늘 천 원을 내고 엄마의 된장을 사 먹었다. 집에 돌아와 맛본 '친구표 된장'은 노르스름하고 짭짤한 것이 내 입에 딱 맞았다. 떠나신 지 13년, 이제는 다시 맛볼 수 없는 엄마의 장맛을 친구의 된장이 메워주고 있었다. 50년 지기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고마움을 전했다.

"친구야, 정말 맛있다. 잘 먹을게. 우리 조만간 또 보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엄마표된장#친구표된장#환성사#50년지기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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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가 좋아서 세종사이버대 문예 창작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다해 정성껏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현재 브런치 작가입니다. 사는 이야기를 주로 씁니다. 가끔 음식 이야기도 씁니다. 삼강 문학상 수필 부문 신인상 당선. 2026 글로벌경제 시니어신춘문예 동화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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