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를 앞두고, ‘불평등물어가는범청년행동’이 새 비전과 정책을 제시합니다. 3중 전환(인구·디지털·기후)과 3대 불평등(노동·주거·관계)을 교차한 9개 의제 칼럼을 연재합니다.
"지하철이 곧 옵니다."
스마트폰 앱의 이 한 문장에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계단을 뛰어 올라갑니다. 경기도 외곽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청년들에게 이 메시지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삶의 질'을 결정하는 선고와 같습니다. 이번 차를 놓치면 다음 약속은 늦어지고, 오늘 밤 나를 위한 휴식 시간은 15분 줄어듭니다. 수도권 청년들에게 이동은 권리가 아니라, 매일 치러야 하는 가혹한 전쟁입니다.
길 위에서 치르는 이 매일의 전쟁은 '출퇴근이 불편하다'는 투정으로 끝날 문제가 아닙니다. 교통 인프라의 격차는 곧 일하고, 배우고, 치료받을 수 있는 기회의 격차로 이어집니다. 이동할 수 없다는 것은 곧 인간답게 살 권리가 훼손된다는 의미입니다. 팍팍한 이동 환경은 필연적으로 타인에게 다가갈 여유를 앗아가며 우리의 '관계'와 '돌봄'을 서서히 무너뜨립니다. 더 큰 비극은, 불평등하고 소모적인 현재의 교통 구조가 지역의 승용차 의존도를 높여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재난과도 곧장 맞닿아 있다는 점입니다.

▲공공교통에 대해 청년들이 갖는 이미지와 생각 ⓒ 청년다음랩
수도권 집중의 역설, 멀어지는 삶의 거리
수도권의 비싼 임대료를 견디지 못해 우리는 점차 도시 외곽으로 밀려났습니다. 그 결과, 하루 평균 3~4시간을 길 위에서 보냅니다. 퇴근길 버스 창가에 머리를 기대고 졸다 보면 문득 허무해집니다.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걸 시간, 친구와 고민을 나눌 시간, 혹은 나 자신을 돌볼 에너지는 이미 만원 지하철 안에서 소진된 지 오래입니다.
우리는 흔히 다정함을 개인의 성품이라 여기지만, 사실 다정함은 타인의 안부를 살필 수 있는 시간적·심리적 여유에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매일 길 위에서 에너지를 전부 쏟아부어야 하는 구조 속에서, 우리는 누군가에게 다정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원마저 박탈당하고 있습니다. 수도권 중심의 개발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서 가장 가까운 이들과 연결될 시간을 빼앗아 갔습니다. 수도권의 교통 인프라는 화려하지만, 정작 그 안의 시민들은 '과밀'과 '장거리 통근'이라는 늪에 빠져 있습니다.
'15분 도시', 관계를 회복하는 마법의 시간
그래서 '15분 도시' 구상은 매력적입니다. 내 집 근처 15분 거리 안에서 일하고, 병원을 가고, 소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는 단순히 이동 시간을 줄이는 문제가 아니라, 깨져버린 일상의 '관계'를 거리의 재해석을 통해 복원해보려는 시도입니다.
거대한 GTX 노선이 우리 삶의 반경을 넓혀줄지는 몰라도, 정작 역까지 가는 길조차 막막한 이들에게는 여전히 먼 나라 이야기일 뿐입니다. 광역 교통망이라는 화려한 이름보다, 집 앞 정류장에서 목적지까지의 마지막 빈틈을 메워주는 지자체 직영 수요응답형(DRT) 공공셔틀버스가 우리 일상의 지도를 훨씬 촘촘하게 채워줄 수 있습니다. 정해진 노선과 배차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승객이 부르면 원하는 정류장으로 유연하게 찾아오는 이 똑똑한 버스는 골목 구석구석을 잇는 훌륭한 대안이 됩니다.
여기에 보행자와 완전히 분리된 안전한 자전거 전용도로까지 갖춰진다면 어떨까요? 차창 밖으로 휙 지나치던 동네 풍경을 두 발로 직접 누비며 이웃과 눈 맞출 수 있는 자전거 인프라는 우리 일상을 훨씬 다정하게 연결해 줄 것입니다. 원하는 곳에 닿을 수 있는 이동권은 일상을 지탱하고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어야 합니다.
지역에 상관없는 이동권, 모두를 위한 기후 정의
여러 모습으로 벌어지는 교통난들은 수익성을 앞세워 국가가 손을 놓아버린 곳에서 길 위에 방치된 시민들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겪는 이동의 고통은 지역에 따라 그 형태만 다를 뿐, 결국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결과물입니다. 누군가는 빽빽한 만원 열차에 몸을 구겨 넣어야 하고, 누군가는 텅 빈 정류장에서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립니다. 이처럼 도처에서 벌어지는 교통난은 국가가 수익성을 이유로 공공성을 내려놓은 빈자리에 시민들이 남겨진 결과입니다.

▲2026년 2월 4일부터 시행된 모두의카드 홍보 사진 ⓒ 국토교통부
최근 정부는 기존 K-패스 체계에 더해, 일정 금액으로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하는 선불 정액권 방식의 '모두의 카드' 정책을 새롭게 도입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시민을 아우르겠다는 포부와 달리,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과연 '모두'를 위한 것인지 깊은 의문이 듭니다. 정액권 이용 범위에 수도권의 고가 민자사업인 GTX나 신분당선은 포함하면서도, 지역 시민들의 핵심 광역수단인 무궁화열차와 시외버스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지역에 상관없이 이동의 자유를 누리는 것은 국가가 책임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의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현재의 정책은 공공성보다는 비용 대비 편익의 잣대로 노선마다 혜택의 선을 긋고 있습니다. 결국 누군가의 필수적인 일상을 외면한 채 '모두'라는 이름을 붙인 지금의 제도는, '수도권만의 카드'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지역 차별적 정책을 뜯어고쳐야 하는 이유는 우리 앞에 놓인 기후 위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구 평균기온 1.5도 마지노선이 무너진 지금, 전체 온실가스 배출의 14.1%가 수송 부문에서 나오고 그중 96.6%가 도로수송입니다. 자가용 없이도 어디든 닿을 수 있는 촘촘한 공공교통망이 전 국토에 깔리지 않는다면 탄소 배출 저감은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자가용 없이는 만남조차 불가능한 지역의 열악한 교통망은, 스스로 운전할 수 없는 이들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가까운 물리적 거리마저 거대한 장벽으로 뒤바꿔 놓기 때문입니다. 지역의 발을 다시 잇는 일은 수도권 집중이라는 기형적인 구조를 깨트리는 시작이자, 탄소 배출을 실질적으로 낮추는 가장 확실한 '기후 투자'입니다.
'어쩔 수 없이' 타는 수단에서 '삶을 잇는' 수단으로
이제 교통 행정은 적자와 흑자를 따지는 관료들의 통계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몇 가지 교통 혜택을 늘려달라는 가벼운 민원이 아닙니다. "이용객이 적어서, 돈이 안 돼서"라는 핑계로 방치되었던 우리의 발을, 이제는 맑은 공기를 마시듯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당연한 권리'로 국가가 최소한의 책임을 다하라는 요구입니다. 갈 수 없다면 삶을 꾸려갈 수 없기에, 교통은 명백히 먹고사는 문제의 출발점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현장에서 이동의 제약을 온몸으로 겪는 시민들이 정책을 직접 평가하고 제안하는 직접적인 참여 체계가 필수적입니다. 나아가 시민의 이동권이 정치적 상황이나 지자체의 재정 여건에 따라 흔들리지 않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교통을 모든 시민이 마땅히 누려야 할 법적 권리로 확립하고,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을 명확히 규정하는 '공공교통 기본법' 같은 제도적 울타리가 필요합니다.
교통정책의 우선순위가 '효율성과 경제성' 중심에서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로 완전히 전환될 때, 비로소 우리는 길 위에서 낭비되던 시간을 되찾아 서로를 돌보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구든, 어디서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당연한 권리가 되는 세상을 꿈꿔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