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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 집에서 차로 조금 떨어진 근교 공원을 찾았다. 한 시간 반 남짓 싱그러운 숲길을 산책하고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차에 오르려는데 옆에 세워진 승용차 운전석과 조수석 유리창에 무언가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가 확인한 문구는 어느 차주가 자필로 정성껏 눌러쓴 '알림 문'이었다.
"SORRY- NO VALUABLES INSIDE (미안합니다. 차 안에 귀중품이 없습니다.)"

▲캐나다의 한 공원 주차장에서 발견한 차량 유리창. "죄송합니다. 내부에 귀중품이 없습니다" ⓒ 김종섭
처음에는 '유리창에 이런 것까지 써 붙여야 하나' 이해 되지 않았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왠지 마음 한구석에 씁쓸한 뒷맛이 남았다. 차를 부술지도 모르는 잠재적 범죄를 늘 경계하며 살아야 하는 이곳의 현실이 차주의 메모지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처음엔 가져갈 게 없다며 도둑에게 사정 하는 차주의 행동이 조금 너무하다 싶기도 했다. 하지만 미안하다며 저자세로 호소해야만 하는 심정을 헤아려보니,이 짧은 문구 뒤에 절박하게 녹아있는 마음이 이내 이해 된다는 생각에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풍경이다. 골목마다 방범용 카메라가 감시자의 눈이 되고, 주차된 거의 모든 차량에는 블랙박스가 '움직이는 감시자' 역할을 하는 한국의 환경에 익숙했던 나로써는, 캐나다의 이런 풍경이 이민 초기부터 참 적응되지 않았다. 공공장소에서 누군가 차 유리를 깨고 물건을 훔쳐가는 영화 같은 일이 이곳에서는 일상의 불안으로 존재한다.
캐나다의 대다수 승용차에는 외부를 감시하는 블랙박스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 공원이나 도로 같은 공공장소 역시 사생활 보호라는 명목 아래 감시 카메라(CCTV) 설치를 극도로 자제한다. 이 '보이지 않는 눈'의 공백을 노리는 차량 털이범들이 주차장을 배회하며 손쉽게 유리창을 부순다는 소식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이 뿐만이 아니다. 공공장소 뿐만 아니라 아파트 주차장이나 노상 주차장을 걷다 보면 운전대에 거대한 쇠막대 자물쇠를 채워 놓은 차들을 종종 보게 된다. 21세기에 첨단 보안 시스템 대신 물리적인 자물쇠에 의지해야 하는 풍경이 이곳에서는 여전히 유효하다.
캐나다인들에게 카메라 설치는 '안전'보다 '개인의 사생활 침해'라는 인식이 훨씬 강하다. 내 안전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에게 내 동선이 기록되는 것을 더 큰 위협으로 느끼는 듯하다. 불편함을 감수 하고서라도 지키고자 하는 그들의 가치는 오래도록 정착된 이곳의 단면일 것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이상 캐나다의 치안이 허술해 보인다고 투덜대기보다는 그들의 방식에 적응하며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숲길을 걸으며 맑은 공기를 마시는 그 평화로운 순간에도, 주차장에 둔 내 차 유리가 무사할지 슬며시 걱정해야 하는 현실은 여전히 마음 한구석을 씁쓸하게 만든다.
주차장에서 마주친 메모 종이는 각자의 일상을 스스로 지켜내야만 하는 이곳 사람들의 고단한 마음 같아 보여 자꾸만 눈길이 머물렀다. 사생활을 지키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아무 걱정 없이 가방을 차에 두고 내려도 마음 편했던 한국의 주차장이 문득 그리워지는 하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