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깊숙한 곳에는 20년 전의 흔적이 담긴 낡은 종이 한 장과 거래가 멈춘 주식계좌가 잠들어 있습니다. 제 젊은 날의 한 페이지이자, 가장 아팠던 시절의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물건들입니다.
20여 년 전, 제가 다니던 회사는 급격한 매출 감소와 악화된 시장 상황으로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었습니다. 회사는 직원들에게 '고통 분담'을 요구하며, 석 달 치 급여의 40% 이상을 현금 대신 비상장 자사주 증권으로 지급했습니다.
상장 계획조차 불투명한 회사의 주식은 언제, 얼마의 가치를 가질지 알 수 없는 종잇조각에 가까웠습니다. 당시 회사 내부에서조차 미래를 낙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회사는 사실상 강매하듯 증권을 떠넘겼고, 직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더 안좋아졌고, 기울어가는 배를 견디다 못한 동료들은 하나둘 흩어졌습니다. 100명이 넘던 직원은 어느새 40명도 남지 않게 됐습니다. 저 역시 밀린 월급 대신 종이 뭉치만 손에 쥔 채 정든 일터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렇게 회사를 그만두고 5년이 더 흐른 어느 날, 해당 증권의 통일주권이 발행된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비로소 주식계좌를 만들었습니다. 종이 증권이 계좌 속 숫자로 변하던 날, 제게도 실낱같은 희망이 생겼습니다.
이 숫자들이 언젠가 기적처럼 상장되어 받지 못한 내 피 같은 월급을 조금이나마 보상해 주지 않을까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상장은 끝내 무산됐고, 주식은 현금화되지 못한 채 계좌 속 숫자로만 남았습니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저는 가끔 그 계좌를 들여다봅니다. 아무 의미도 없는 숫자 속에서 제 젊은 날의 아픈 초상을 읽어내곤 합니다.
다시 떠오른 오래된 기억

▲노사 합의가 원만하게 이루어진 장면을 상상해 봤습니다 ⓒ AI 생성 이미지
최근 연일 뉴스에 등장하는 삼성전자의 노사 갈등, 이른바 성과급 사태를 지켜보며 문득 그 오래된 주식계좌가 떠올랐습니다. 총파업일이 21일로 다가왔다는 소식이 들리지만, 긴 대치 끝에도 노사는 서로의 입장 차만 확인했을 뿐 끝내 접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제대로 된 교섭다운 교섭이 이루어지지 못한 채 협상이 결렬되었다는 뉴스를 보며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물론 20년 전 나락으로 떨어지던 제 옛 직장과 세계 시장을 무대로 수십조 원의 실적을 올리는 현재의 삼성전자를 동일 선상에 놓을 수는 없습니다. 주식계좌가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남긴 쓰라린 상흔이라면, 삼성전자의 갈등은 회사가 거둔 성과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를 둘러싼 이해관계의 충돌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사측은 미래의 치열한 기술 패권 경쟁에 대비하기 위한 투자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노조는 상한선 없는 투명한 이익 배분과 제도화를 요구하며 맞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두 사건의 껍데기는 달라도 그 기저에 흐르는 본질은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결국 핵심은 회사가 제시하는 보상 체계와 미래 가치에 대해 구성원들이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옛말에 생활이 안정되어야 바른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노조가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물질적 욕심이 아닐 것입니다. 불투명한 산정 방식 속에서 자신의 노동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상실감, 그리고 일한 만큼 공정하고 투명하게 인정받고 싶다는 인간적인 욕구에 더 가깝습니다.
그러나 반대편에 선 사측의 입장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그들의 고뇌 역시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글로벌 반도체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천문학적인 재원을 쌓아두어야 하는 경영진의 절박함은 단순한 인색함이 아닌 생존을 위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투자 없이는 미래가 없다는 사측의 판단과 두려움 역시 충분히 일리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기업이 더 크고 탄탄한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때론 구성원의 인내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인내는 경영진이 투명한 저울을 내어놓고 결과를 공정하게 나눌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때만 자발적 동행으로 이어집니다.
갈등의 비용은 결국 모두에게 돌아간다
이 평행선 같은 대치를 바라보며 가장 속이 타들어 가는 이들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이 기업의 가치를 믿고 피 같은 돈을 투자한 저 같은 소액주주들을 포함한 주주들과 평범한 국민들입니다. 주주들의 눈에는 이 갈등이 자칫 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소모전으로 보일 수 있으며, 내 자산이 안개처럼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원망이 교차합니다.
국민들과 국가가 느끼는 위기감은 더욱 깊습니다. 삼성전자는 단순한 대기업이 아니라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중추이자 국가적 자존심이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경쟁사들이 사활을 걸고 전력 질주하는 지금, 내부 갈등으로 발이 묶인 모습을 보며 국민들은 나라 경제 전체가 흔들릴지 모른다는 깊은 우려를 안고 있습니다.
결국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의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 보는 '역지사지'의 지혜가 아닐까 합니다. 노조는 사측이 짊어진 글로벌 생존의 무게와 주주들이 느끼는 불안감을 헤아리는 배려가 필요하고, 사측 역시 밤낮없이 땀 흘린 직원들이 느끼는 소외감과 정당한 보상에 대한 갈증을 외면하지 않는 안목이 요구됩니다. 서로를 향해 뻗은 손이 욕심이 아닌 상생을 위한 화해의 손을 내밀 때, 비로소 닫힌 문이 열릴 것입니다.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파업의 날이 파국이 아닌, 서로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측은 복잡한 수식 뒤에 숨기보다 직원들이 납득할 수 있는 투명한 기준을 제시해야 하고, 노조 역시 기업과 국가 경제라는 더 큰 울타리를 함께 고민하는 성숙한 태도를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훗날 이 뜨거웠던 갈등의 순간이 누군가의 서랍 속에 남은 아픈 기억이나 국가적 손실로 기록되는 대신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성숙한 상생의 문화로 나아가기 위해 치렀던 값진 진통으로 기억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