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면 위 70cm 높이에서 세상을 읽는 특수 교사입니다. 누군가에게 나를 증명하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삶을 나누며 울림을 주는 강연가를 꿈꿉니다.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이었다. 업무를 위해 방문한 건물의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에 차를 세웠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내게 주차 구역 옆의 '빗금 친 공간'은 단순히 여유 공간이 아니라,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통로다. 하지만 볼일을 마치고 돌아온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당혹스러움 그 자체였다. 한 차가 그 소중한 빗금 공간을 절반 이상 침범한 채 주차되어 있었다.

▲장애인 주차장장애인 주차장에서 휠체어 이용자인 필자가 탑승하려는 모습 ⓒ 박혜현
내가 차에 오르기 위해서는 문을 완전히 개방하고 휠체어를 바짝 붙일 공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 차 때문에 문은 절반도 열리지 않았다. 나는 정중히 차주에게 전화를 걸어 이동 주차를 요청했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로 돌아온 답변은 사과가 아닌 날 선 짜증이었다.
"충분히 탈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세요?"
당신의 '충분히'와 나의 '불가능' 사이의 간극
볼멘소리를 하며 나타난 차주는 현장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조용해졌다. 휠체어와 내 몸이 들어갈 틈조차 없는 물리적 상황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뒤에야 그의 얼굴에 민망함이 서렸다. 그는 "이 정도면 될 줄 알았다"며 서둘러 차를 뺐지만, 그가 남긴 "예민하다"는 단어는 한동안 내 마음속을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
접근성이란 단순히 턱을 없애고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물리적 개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타인의 삶의 방식과 필수적인 생존 조건을 이해하려는 심리적 거리, 즉 '인식의 문턱'을 낮추는 것이 핵심이다.
그 차주에게 그 빗금 공간은 '조금 침범해도 대세에 지장 없는 빈 땅'이었겠지만, 내게 그곳은 '운전석에 앉기 위해 반드시 확보되어야 하는 생명선'이었다. 비장애인의 시각에서 정의된 '충분히'라는 기준이 장애인의 '생존권'을 예민함으로 치부 해버리는 순간, 진정한 의미의 통합 사회는 멀어진다.
많은 이들이 장애인 주차 구역이나 그 옆의 하차 공간을 사회적 '배려'의 산물로 오해하곤 한다. 하지만 이는 배려가 아니라 평등한 이동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 권리'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 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주차를 방해하는 행위는 엄연한 과태료 대상이다. 특히 빗금 부분(휠체어 활동 구역)을 침범하는 행위는 주차 방해 행위에 해당하여 5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법이 이토록 엄격한 이유는 명확하다. 그 공간이 없으면 누군가는 목적지에 도착하고도 차에서 내리지 못하거나, 반대로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고립 상태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날 나를 '예민한 사람'으로 몰아세웠던 차주의 태도는 우리 사회가 장애인의 이동권을 대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투영한다.
겉으로는 장애인 인권을 외치지만, 정작 자신의 편의가 조금이라도 침해받는 상황이 오면 상대의 불편을 '과도한 요구'로 규정 해버리는 태도 말이다.
인식의 접근성, '상상력'에서 시작된다

▲오토박스 이용필자가 차량에 휠체어를 싣는 모습 ⓒ 박혜현
진정한 인식의 접근성은 '상상력'에서 시작된다. 내가 무심코 세운 이 차가 누군가의 길을 막지는 않을지, 내가 침범한 이 작은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절벽이 되지는 않을지 상상해보는 힘이다.
건물에 엘리베이터를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엘리베이터가 왜 필요한지, 주차장의 빗금이 왜 비어 있어야 하는지 시민 모두가 내면화 하는 과정이다. "몰랐다"는 말은 현장에서의 민망함을 면하게 해줄지는 몰라도, 반복되는 차별을 정당화 해주지는 않는다.
우리는 누구나 잠재적 장애인이며, 노화나 사고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오늘 내가 지킨 주차장의 빗금 공간은 미래의 나, 혹은 내 가족이 안전하게 세상으로 나오게 돕는 보루가 된다.
차주가 느끼고 간 그 '민망함'이 단순한 부끄러움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이 타인의 불편에 공감하지 못했던 성찰로 이어지고, 나아가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문턱을 낮추는 실천으로 변모하기를 기대한다.
나는 더 이상 주차장에서 '예민한 사람'이 되어 싸우고 싶지 않다. 주차장의 빗금이 비어 있는 것이 당연한 상식이 되는 세상, 장애인이 이동을 위해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세상. 그 세상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오늘 당신이 주차선을 확인하며 남겨둔 '한 뼘의 배려'에서 시작된다.
장애인 주차 구역의 빗금은 비워두는 것이 맞다. 그것은 예민함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향한 최소한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이 글은 필자가 최근 건물을 방문했다가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에서 겪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15년 차 특수교사이자 장애인식개선 강사로 활동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전해왔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의 '인식의 문턱'은 높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장애인 주차구역 옆의 빗금 공간은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여백일지 모르나, 휠체어 이용자에게는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이 글을 통해 물리적 배리어를 없애는 것 만큼 중요한 '인식의 접근성'에 대해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