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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재 기사 시리즈는 제9회 지방선거를 계기로 민달팽이유니온과 서울시전세피해세입자연대가 함께 꾸린 '세입자의 목소리를 찾아서' 팀이 기획·제작했습니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지는 6월 3일은 ‘무주택자의 날’입니다. 지난 제21대 대통령선거 역시 같은 날 치러졌습니다. 선거는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와 동네의 미래를 결정하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세입자의 삶’을 중심에 둔 정책과 선거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전세사기가 사회적 재난이 되어 대한민국을 휩쓴 이후, 우리가 살고 있는 집과 동네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세입자들의 목소리를 한 사람씩 천천히 들어보고자 합니다. 이번 <세입자의 목소리를 찾아서> 인터뷰 시리즈는 6월 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공약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세입자들의 경험과 목소리를 기록하고 전하고자 합니다.
 주연 씨가 자택에서 진행되는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주연 씨가 자택에서 진행되는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 민달팽이유니온

주연씨에게 첫 자취방은 서툰 독립의 꿈이자, 팍팍한 서울살이를 견디게 해 줄 안식처여야 했다. 그러나 4.2평의 좁은 방은 곧 1억 원의 빚을 짊어지게 한 절망의 공간으로 돌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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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반이라는 뼈깎는 시간 끝에 보증금을 돌려받았지만, 그가 악착 같이 모았던 2천만 원은 사라졌고 수천만 원 대출이 빚으로 남았다. 하지만 그는 고립되는 대신 거리로 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전세사기가 개인의 무지가 아닌 '구조적 재난'임을 깨달은 그는 이제 디자인 전공을 살려 주거 정책을 연구하는 대학원생이 되었다. 지난 4월 12일 은평구의 다세대주택에서, 세입자의 안전한 일상을 묻는 그를 만났다.

- 현재 거주하시는 은평구에서의 삶은 어떠신가요? 이전에 살던 동네들과 비교해 본다면요.

"지금 사는 곳은 작년 3월에 계약해서 딱 1년이 되어갑니다. 은평구는 주변 지인들이 많이 살아서 오게 됐는데, 꽤 안정감이 들어요. 고양이를 키우고 있어서 집을 비울 때 돌봄 품앗이를 하기도 하고, 혼자 아플 때 챙겨줄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게 큰 위안이 되더라고요. 제가 서울에 올라와 처음 독립했던 곳이 신림동이었는데, 그곳은 4평 정도라 고양이 짐을 놓으면 제 공간이 없었어요. 사람 사는 동네라기보다 그저 자고 일어나 출근만 하는 '잠만 자는 공간'에 가까웠죠."

- 그 첫 독립의 공간이었던 신림동 집에서 전세사기 피해를 겪으셨습니다. 피해 사실은 언제,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계약 만료 후 이사를 가야 하는 당일 날까지도 돈이 들어오지 않았어요. 집주인이 '아직 다음 세입자가 안 구해져서 돈을 못 주겠다'라고 통보하더라고요. 너무 당황스러웠죠. 임시방편으로 부모님께 돈을 빌려 급하게 등촌동 월세방으로 이사를 와야 했고, 당장 은행에 가서 전세자금 대출 연장을 해야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집주인은 여러 채의 건물을 가진 임대 사업자였고, 같은 건물에서만 저를 포함해 4명 이상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집주인은 전화를 피하며 '나도 살기 힘들다'는 말만 반복했고, 결국 임차권 등기명령을 걸고 2년 반 동안 보증금 반환을 계속 요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당시 중소기업청년 전세대출(중기청)을 이용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신림동 집 계약 과정에서 의심스러운 정황은 없었나요?

"당시 건물의 실거래가가 18~20억 원이었는데 빚이 9억 원 정도 잡혀 있었어요. 그래서 처음 찾아간 은행에서는 대출 승인이 어렵다며 거절당했죠. 그때 은행 직원이 저에게 대놓고 '이런 것(빚이 많은 건물의 대출)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니 안 하는 게 맞다'라고 까지 했어요. 그래서 불안하니까 계약을 파기하려 했는데, 집주인이 자기가 지정해 주는 은행으로 가라고 하더니 은행장까지 불러서 대출을 승인받게 만들더라고요. 돌아보면 그때 멈췄어야 했는데, '다들 전세로 살고, 경매 넘어가도 돌려받을 수 있다'는 중개인의 말과 '월세는 돈 아깝다'는 주변인들의 의견을 듣고 계약을 한 게 너무 후회되네요."

- 보증금 1억 원을 전액 돌려받기까지 무려 2년 반이 걸렸습니다. 그 지난한 시간 동안 삶이 어떻게 흔들렸나요?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시기였어요. 돈이 묶여버리니까 학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생활비와 대출 이자를 벌기 위해 일을 계속 나가야만 했어요. 제일 억울한 건, 제가 대학생 신분으로 계약직 일을 하며 악착 같이 모았던 제 돈 2천만 원이 다 날아갔다는 거예요. 원래 졸업 전시와 취업 준비를 위한 여유 자금이었는데, 전세사기를 겪으며 그 돈은 저를 위해 써보지도 못했네요. 그로 인해 학자금 대출 2천만 원, 생활비 대출 1500만 원 등 빚이 산더미처럼 쌓였고 대출 이자를 갚느라 지금도 계속해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죠, 신용 점수도 낮아지고 돈이 모이질 않는 상황이기도 하고요."

"피해를 수습하느라 생긴 빚인데, 내 잘못도 아닌데"

 주연 씨의 집 창가에는 푸릇한 식물이 자라고 있다.
주연 씨의 집 창가에는 푸릇한 식물이 자라고 있다. ⓒ 민달팽이유니온

- 산재한 대출이 신용 점수나 장기적인 경제 활동에도 큰 지장을 주고 있다고 하셨는데요. 하나의 큰 대출로 갈아타는 것도 어려운 상황인가요?

"네, 여러 대출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보니 신용 등급에 무척 안 좋은 영향을 주고 있어요. 이 악순환을 끊고 이자 부담을 줄이려고 하나의 큰 대출(대환대출)로 뭉치고 싶은데, 그마저도 쉽지 않네요. 은행에서 큰 대출을 받으려면 '4대 보험이 가입된 정규직으로 3개월 이상 일한 이력'을 요구하거든요. 저는 당장 눈앞의 대출 이자와 월세를 감당하려고 학교 조교 일과 계약직을 전전하고 있어서 그 요건을 채울 수가 없어요. 전세사기 피해 때문에 정규직 취업을 준비할 시간 여유조차 빼앗겼는데, 정작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정규직이어야만 한다는 게 너무 막막하죠. 피해를 수습하느라 생긴 빚인데, 내 잘못도 아닌데."

- 원하시던 진로도 포기하셨다고요.

"원래는 브랜딩 쪽 스튜디오나 회사에 취업할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전세사기 수습 때문에 포트폴리오를 준비할 여유가 전혀 없었고, 생계가 급해 당장 계약직으로 근무가 가능한 곳에 취업을 선택했어요. 그러다가 운이 좋게 보증금을 돌려받은 뒤 대학원 진학을 택했어요. 그래도 전세사기 피해 경험이 제 진로를 트는 계기가 되긴 했습니다. 정책 디자인 분야로 전공을 바꿔, 제가 겪은 전세사기와 연관이 있는 사회 서비스나 정책 문제를 직접 다뤄보고 싶었거든요."

- 홀로 감당하기 벅찬 시간이었을 텐데, 피해자 연대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계기가 있나요?

"어딘가에 도움을 청하고 싶은데 도무지 연결이 안된다는 막막함이 컸어요. 무료 법률 상담을 받아봐도 당시엔 변호사들조차 전세사기에 무지해서 큰 도움이 안 됐죠. 인터넷으로 계속 목소리를 낼 곳을 찾다가 민달팽이 유니온과 대책위(전세사기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 말고도 혼자 속앓이 하는 피해자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고, 그분들을 대변하고 함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싶었어요."

"기형적인 구조와 이를 방치한 사회 탓"

 주연 씨의 반려묘가 인터뷰어의 무릎에 앉아 있다.
주연 씨의 반려묘가 인터뷰어의 무릎에 앉아 있다. ⓒ 민달팽이유니온

- 국회나 청문회에도 참석하셨는데, 제도권이 이 문제를 대하는 태도를 보며 어떤 점을 느끼셨나요?

"가장 상처받았던 건 피해자 탓을 하는 시선이었어요. 지인들에게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을 오히려 국회의원들에게 들었죠. '학생, 청년들이 어려서 잘 몰랐다', '정보를 많이 찾아보지 않아서 그렇다'며 정책 입안자들이 임대인의 처지에서만 말하는 걸 보고 큰 실망감을 느꼈어요. 이 문제는 결코 개인의 부주의 때문이 아니에요. 세입자가 들어와야만 보증금을 빼 준다는, 임대인이 세입자의 돈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책임지지 않는 기형적인 구조와 그것을 방치한 사회의 탓이죠."

-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습니다. 세입자로서, 피해 당사자로서 가장 시급하게 도입되어야 할 주거 정책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당장 일상이 멈춘 피해자들을 숨 쉬게 하려면 '보증금 반환 보장과 선지급'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임차 보증금 3분의 1을 최소 보장 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다행입니다. 두 번째로는 '세입자 보증금 보호 강화'가 필요할 것 같아요. 집주인이 보증금을 마음대로 운용하지 못하게 법적인 제한 장치를 둬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예방 측면에서는 '월세 상한제'와 '공공임대주택 평수 보장'이 시급해요. 공공임대주택을 늘린다 해도 지금처럼 4~5평 수준이면 집으로 느끼기에는 어렵습니다. 최소 6~10평은 보장되어야 집의 기능을 하는 것 같아요. 또한 전세의 대안으로 월세를 찾게 되는 상황에서, 계약 갱신 때마다 집주인 마음대로 월세를 많이 올리지 못하도록 보장이 되어야 할 것 같아요. 지금도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면 임대료 상한을 5% 내로 제한하는 제도가 있지만, 그보다 더 강한 수준으로 상한을 걸어 두는 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선거에서 표를 던질 정치인을 고르는 주연 씨만의 기준이 생겼을 것 같습니다.

"임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진짜 서민과 세입자의 입장에서 주거 제도를 설계할 수 있는 사람을 뽑을 겁니다. 서민의 현실과 동떨어진, 기득권의 의견만 대변하는 정치인은 절대 뽑지 않을 거예요. 개인적으로는 앞으로도 주변 지인들이 집을 계약할 때면 꼭 따라가서 함께 살펴봐주고, 여유가 생기면 대책위에 디자인 작업으로 활동을 지원하면서 세입자 연대를 이어 나가고 싶습니다."

 주연 씨가 세입자들을 위한 정책이 나열된 카드를 놓고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말하고 있다.
주연 씨가 세입자들을 위한 정책이 나열된 카드를 놓고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말하고 있다. ⓒ 민달팽이유니온

'어려서, 몰라서' 당한 것이 아니었다. 주연 씨는 공인중개사의 말을 믿었고, 은행의 문을 두드렸으며, 국가가 마련한 대출 제도를 이용했다. 그러나 그 안전을 담보해야 할 시스템의 방관 속에서, 청년의 땀방울이 밴 2000만 원은 공중으로 흩어졌고 그의 20대는 빚과 불안으로 얼룩졌다. 보증금은 집주인의 사업 자금이 아니라 세입자의 전 재산이다. 다가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는 기형적인 전세 제도의 사각지대를 방치한 채 '운이 나빴다'며 세입자의 책임으로 돌리는 정치가 끝을 맺어야 한다. 집은 누군가의 불로소득을 위한 인질이 아니라, 그가 현재 은평구에서 꿈꾸고 있는 삶처럼 '예측 가능한 내일'을 담보하는 기본권이기 때문이다.

인터뷰어: 지성일 민달팽이유니온 회원, 도시 산책자

#세입자#전세사기#주거권#부동산#지방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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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세입자의 목소리를 찾아서

지성일 (minsnail) 내방

'주거권 보장 지금 당장!'을 외치며 청년 세입자 대상의 교육, 상담, 현장대응 그리고 제도개선을 위한 실천행동을 함께 합니다. 무법지대와 다름없는 주택임대차시장에서 세입자 청년들이 겪는 부당한 관행에 2013년부터 함께 대응해왔고, 보증금 먹튀 대응 센터 운영 및 법안 발의 등 세입자 권리를 지키기 위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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