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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4.27 09:54최종 업데이트 26.04.27 09:54

맨발로 느끼는 일상의 행복... '숲세권'에 삽니다

동산 두 개를 오가며 걸은 길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는 공원과 숲이 가까운, 이른바 '숲세권'에 살고 있다. 요즘은 역세권, 학세권처럼 '세권'이라는 말이 일상처럼 쓰인다. 슬리퍼를 신고도 생활이 가능한 동네를 '슬세권'이라 부르기도 한다.

우리 집을 기준으로 큰길 하나만 건너면 남쪽으로는 삼필산이 있고, 동쪽으로는 수목원이 있다. 서쪽으로는 달서구가 운영하는 한실 공원이 있다. 삼면이 숲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숲세권이라 할 수 있다. 번화가로 나가려면 시간이 걸리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숲이 주는 선물, 사계절 신선한 공기와 새들의 노랫소리를 생각하면 번화가와 조금 먼 거리 쯤은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

몇 년 전부터 맨발 걷기가 유행했다. 특히 황토 맨발 걷기가 건강에 좋다는 방송을 몇 차례 본 적이 있다. 내가 사는 곳 주변에 황톳길이 있나 싶어 일부러 찾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원하는 곳이 없어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얼마 전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다가 발길을 돌려 동쪽에 있는 한실 공원으로 향했다. 그곳은 여름에는 어린이 물놀이장으로, 다른 계절에는 어린이 놀이터로 이용하는 곳이다.

맨발걷기 동산에 잔디와 토끼풀이 천지입니다.
맨발걷기동산에 잔디와 토끼풀이 천지입니다. ⓒ 황윤옥

맨발 걷기를 하며 떠올린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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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위의 작은 동산에는 사철 푸르른 소나무가 빽빽하게 있고, 어르신들의 쉼터인 정자도 있다. 이번에 내 발길이 머문 곳은 한 블록 떨어진 다른 동산이었다. 올라가는 길부터 잔디와 토끼풀이 천지였다. 나도 모르게 신발을 벗어 들고 걷고 있었다. 맨발에 닿는 감촉이 얼마나 부드럽고 폭신한지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 들었다. 그늘진 곳의 잔디를 밟을 때면 시원한 기운이 발을 타고 온몸으로 전해졌다.

그때부터였다. 시멘트 바닥을 걷는 대신 동산을 찾게 된 것은. 발바닥에 가득 차오르는 시원함이 건강을 선물해 주는 것 같았다. 맨발 걷기가 유행이라더니, 직접 해 보니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며칠을 다녀도 보이지 않던 것이 어느 날 눈에 들어왔다. 거무죽죽한 잔디 씨앗이 오밀조밀 피어나 동산을 가득 덮고 있었다. 그 풍경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자니, 잊고 있던 까마득한 옛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오밀조밀 잔디씨 자세히 보면 잔디에 씨가 수두룩 달렸어요.
오밀조밀 잔디씨자세히 보면 잔디에 씨가 수두룩 달렸어요. ⓒ 황윤옥

내가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였다)에 다니던 시절에 봄이면 꼭 내주는 숙제가 있었다. 바로 '잔디 씨 훑어오기'였다. 그 숙제가 있는 날이면 동네 친구들과 삼삼오오 짝을 지어 들판으로 나갔다. 어린아이들이 가는 곳은 항상 정해져 있었다. 경부고속도로가 지나는 둑길이나 방천 둑이었다. 잎이 길쭉하고 부드러운 싱아도 많이 있었다. 친구들과 쪼그려 앉아 씨를 훑다가, 지겨워지면 싱아를 뜯어 씹었다. 새콤한 맛이 났다. 싱아는 들풀이면서도 잔디와 함께 봄을 알려주는 어린 시절의 간식이었다.

잔디 씨를 훑어서 갔지만, 운동장은 졸업할 때까지도 먼지 폴폴 날리던 흙 운동장 그대로였다. 어떤 이유에서 잔디 씨를 훑어오라고 하였을까. 아마 체험 학습의 일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이야 숲 체험이니 딸기밭 체험이니 해서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많이 다닌다. 그땐 학교에서 단체로 하는 활동이 없어서 그런 체험 활동 숙제를 내주었는지 모르겠다.

동산 이정표 이정표를 따라가면 숲속 모험 놀이터가 있어요.
동산 이정표이정표를 따라가면 숲속 모험 놀이터가 있어요. ⓒ 황윤옥

집 가까이에 황톳길은 아니지만, 맨발 산책길을 알게 된 것은 작은 행운이다. 동산 두 개를 오가며 걷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주변 어르신들의 잔잔한 대화 소리와 시끌벅적한 아이들의 고함은 내 생체 나이를 거꾸로 돌려놓는 듯했다.

지난 21일 오후에는 동산에서 좀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보았다. 깊이 들어간들 산세가 험하지는 않다. 말 그대로 동산이다. 길을 따라가 보니 정자에는 어르신 몇 분이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누군가에게 쉼을 주는 곳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흐뭇해졌다.

동산 맨 끝자락에는 아이들을 위한 '숲속 모험 놀이터'가 있었다. 안전 장비도 비치되어 있고 안전 요원도 상주해 있었다. 제법 높고 넓었다. 아이들이 체험하기 좋은 여러 기구도 군데군데 준비되어 있었다. 나중에 손자들을 만나게 된다면 꼭 데려가고 싶은 곳이 또 하나 늘었다.

숲속 모험 놀이터 동산 끝자락에 위치한 어린이 모험 놀이터입니다.
숲속 모험 놀이터동산 끝자락에 위치한 어린이 모험 놀이터입니다. ⓒ 황윤옥

멀리 가지 않고도 집 가까이에서 자연을 접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내가 느낀 숲세권의 장점이다. 자연을 바라보며 자연에 스며들어 맨발 걷기를 직접 해 보니 기분도 좋아지고 어딘지 모르게 건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오늘도 맨발로 구름처럼 폭신한 잔디를 밟고 단단한 흙길을 걸었다. 다음엔 황톳길 맨발 걷기도 도전해 봐야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맨발걷기#숲세권#한실공원#잔디씨#싱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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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가 좋아서 세종사이버대 문예 창작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다해 정성껏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현재 브런치 작가입니다. 사는 이야기를 주로 씁니다. 가끔 음식 이야기도 씁니다. 삼강 문학상 수필 부문 신인상 당선. 2026 글로벌경제 시니어신춘문예 동화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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