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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운동장의 축구골대
학교 운동장의 축구골대 ⓒ 연합=OGQ

중학교 때까지 사고뭉치로 명성이 자자했던 한 아이가 고등학교 진학 후 눈빛이 달라졌다. 반항기로 가득했던 얼굴은 장난기 가득한 선한 표정으로 바뀌었고, 덩달아 옷차림도 단정해졌다. 등굣길 교문에서 말을 걸면 귀찮다는 듯 대꾸조차 하지 않더니, 이젠 주먹 인사를 나누는 살가운 사이가 됐다.

4월 초까지만 해도 지각을 밥 먹듯 하더니, 이젠 이른 시간 반 친구와 어깨동무하고 등교한다. 수업 시간 때마다 엎드려 자기 일쑤고, 깨워도 삐딱한 자세로 듣는 시늉도 안 하더니 요즘엔 수업 태도가 확연히 달라졌다. 칠판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눈빛에서 그동안 소홀했던 공부에 대한 의지가 느껴진다.

정규수업만 끝나면 하교하던 아이가 담임교사를 찾아와 방과 후 수업과 야간자율학습까지 하겠다고 했단다. 중학교의 내신 성적으로 미루어 기초가 턱없이 부족해 진도를 따라가기가 여간 쉽지 않을 텐데도 어떻게든 버텨 보겠다는 자세가 대견하다. 우선은 형 같고 삼촌 같은 담임교사의 헌신과 교감 덕분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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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벌거숭이인 데다 공부에도 젬병인 그가 학교를 좋아하게 된 진짜 이유가 뭘까. 입만 열면 중학교 때 선생님들을 험담하는 그가 학교생활이 즐겁다고 말하는 걸 두고, 그를 아는 모두가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의 지금 모습을 중학교 때 선생님들은 상상하지조차 못할 거라고 말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마음껏 공을 찰 수 있어서 좋아요."

그에게 고등학교에 와서 가장 좋은 점이 있다면 하나만 꼽아보라고 했더니,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이렇게 대답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는 운동장에서 공을 차려면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눈치를 봐야 했다는 거다.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 내로라하는 축구광이다. 그의 이름을 대면, 누구라도 축구부터 떠올릴 정도다.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에 미쳐 살았다는 그는 중학교 시절 내내 가방에 축구화와 축구공을 넣어 다녔다고 한다. 친구들 사이엔 학교 밖 클럽에 가입하여 정식으로 축구를 배우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단다. 또래 남자아이들 대부분이 축구에 '진심'이었다고 말했다. 혼자만 유별난 경우가 아니라는 뜻이다.

아이들이 '죽고 못 사는' 축구

사실이 그랬다. 자타공인 '축구 마니아'라고 불리는 아이가 한 반에 적어도 예닐곱은 되고, 그들은 하나같이 미래에 축구와 관련된 직업을 갖고 싶어 한다. 축구를 잘하는 아이 주변엔 친구들이 끊이지 않고, 학급 내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 못지않게 발언권도 세다. 좋든 싫든 남자고등학교에서 축구는 '필수 교양'에 해당한다.

흥미로운 건, 중학교 시절 그를 비롯해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들 스스로 '비주류'였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그랬던 그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른바 '주류'가 되었으니, 등교하는 발걸음이 가벼울 수밖에 없다. 이구동성 중학교 때까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느낌이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다른 아이들과도 이야기를 나눠봤다. 그들은 1년에 한두 번뿐인 체육대회 날이 별로 기다려지지 않았단다. 교실 수업이 없는 날이어서 좋긴 했어도, 그냥 종일 '멍 때리며' 보냈다고 한다. 외려 체육대회가 빨리 끝나길 바랐단다. 끝나면 축구 좋아하는 아이들끼리 운동장이나 근린공원에 따로 모여 공을 찼다고 한다.

체육대회 때 축구는 마치 '번외 경기'처럼 진행됐단다. 한때 여자 연예인들이 모여 공을 차는 TV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잠시 운동장이 북적이기도 했지만, 그마저 금세 시들었단다. 잠자코 듣던 한 아이는 여자아이들과 함께하는 축구가 무슨 축구냐며 고개를 가로젓기도 했다. '체육'이 빠진, 무늬만 체육대회였다는 거다.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에 우리끼리 모여 공 차는 걸 선생님들이 좋아하지 않으셨어요."

설마 학교에서 축구를 못 하게 했으랴마는, 체육대회 종목에서도 빠지고, 설령 있다고 해도 천덕꾸러기 신세였다는 게 그들에겐 깊은 상처로 남은 듯했다. 당장 축구나 농구 등의 구기 종목은 교사가 아닌 자기들끼리 심판을 봤다고 한다. 경기 규칙을 제대로 알고 있는 여교사가 드물다는 이유에서다.

아이들은 흡사 학예회나 축제처럼 진행되는 체육대회에 불만을 토로했다. 공 차고 뛰면서 땀도 흘리고 몸싸움하다가 경련도 일어나면서, '운동다운 운동'을 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체육대회의 단골 종목인 단체 줄넘기나 피구, 종이 뒤집기 등이 무슨 운동이냐며 눈을 흘겼다.

기실 아이들의 말엔 치기 어린 투정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생각해 볼만한 대목이 아예 없진 않다. 짬만 나면 운동장에 나가 뛰어놀려고 하는 아이들과 웬만하면 실내에서 차분히 앉아 책 읽기를 바라는 교사들의 '신경전'에서 칼자루를 쥔 쪽은 교사다. 안전사고부터 걱정하는 건 교사의 '본능'이다.

만에 하나 사고라도 날라치면, 교사가 오롯이 책임을 떠안게 된다. 더욱이 축구와 같은 거친 운동은 다칠 위험이 커서 늘 조마조마할 수밖에 없다. 학교 운동장에 안전시설이 확충되어 과거에 비해 위험 요인이 줄어들었다고는 하나,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시간을 늘리기엔 역부족이다.

결국 아이들이 '죽고 못 사는' 축구는 방과 후, 학교 밖의 일이 됐다. 이는 그들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교문 밖으로 나도는 이유가 됐고, 학교에 대한 불신까지 부추겼다. 일부 학부모는 자녀가 방과 후 밤늦게까지 축구한다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술과 담배를 배우고 비행을 저지르게 됐다며, 애먼 학교를 탓하기도 한다.

맞장구쳐줄 수 있는 교사의 존재

"운동을 좋아하는 젊은 남자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요."

응당 남자아이라면 담임으로 젊은 여자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 할 줄 알았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 보면, 학부모들조차 은근히 자녀의 담임으로 남교사를 더 선호하는 눈치다. 이태 전 학교폭력 사안과 관련되어 만난 한 학부모는 중학교엔 자녀의 '운동 욕구'를 채워줄 교사가 단 한 분도 안 계셨다며 생뚱맞은 핑계를 댔다.

고등학교에 와서 '개과천선'한 그와 또래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든 생각이 하나 있다. 만약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운동을 좋아하고 그들과 함께 운동장에서 축구를 즐기는 남자 선생님이 계셨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그들의 '마초적인 기질'을 바룰 때 바루더라도 순간 맞장구쳐줄 수 있는 교사의 존재가 절실했을 것도 같다.

얼마 전 한 동료 교사가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횡행하는 페미니즘에 대한 맹목적인 반감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조롱과 혐오가 우리나라 교직 사회의 극단적인 여초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주장을 폈다. 이른바 '양성성 교육'을 위해서 학교의 세대별 남녀 교사의 성비를 비슷하게 맞출 필요가 있다는 지적에 여교사들조차 동의를 표시했다.

어느덧 초등학교 시절 6년 동안 단 한 번도 학급 담임으로 남교사를 만난 적이 없다는 사례는 특이하기는커녕 당연한 걸로 받아들여진다. 부러 한 학급을 조사해 보니, 중학교까지 포함해 무려 9년 동안 줄곧 여교사만 만났다는 아이가 24명 중 15명이나 됐다. 이젠 고등학교도 더 이상 예외가 아니다.

이는 공식적인 통계로도 확인된다. 최근의 교원 임용 현황 등 각급 학교별 교사 성비를 보면, 초등학교의 여교사 비율은 80%에 이르고, 중학교도 별반 차이가 없다. 고등학교의 경우, 초중학교에 견줘 상대적으로 비율이 낮지만, 가파르게 늘어나는 추세이며 이미 60% 안팎에 이르고 있다.

그마저 남교사는 교장과 교감 등 관리직의 비율이 높아, 아이들과 직접 대면해 교육하는 여교사의 비율은 통계 수치보다 더 높을 것이다. 듣자니까, 초등학교의 경우 남교사가 단 한 명도 근무하지 않는 곳이 전국에 허다하다고 한다. 언제부턴가 '교사=여성'이라는 등식이 우리 사회의 상식이 됐다.

사족. 이는 남교사와 여교사의 비율 문제가 아니라 교사별 개인차에서 비롯된 거라는 주장과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교사 개개인의 책임으로 몰고 갈 우려가 있다는 반론이 있을 줄 안다. 솔직히 이를 재반론할 깜냥은 못 되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학교든 기업이든 성비가 8:2보다는 5:5가 훨씬 바람직하다는 것!

#축구광#체육대회#교사여초현상#양성성교육#사회적약자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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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나의 스승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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