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법은 국정원이 다룰 수 있는 정보의 범위를 엄격히 한정하고 있다. 국외 및 북한 정보, 방첩, 대테러, 국제범죄조직, 내란·외환, 국가보안법 관련 안보침해행위. 그게 전부다. 세월호 유가족의 집회 참석 여부, 단식 일정, 심지어 "짜장면이나 시켜 먹고"라는 사적인 대화까지 기록한 국정원의 행위는 법령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국정원이 세월호 관련 시민단체 활동가의 정보공개를 거부한 사건에서, 법원은 "특정 공직자의 비위 첩보, 정치적 활동 등 동향 파악 등을 위한 정보의 수집은 국가정보원법에서 정한 국가정보원의 직무 중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서울행정법원 2019. 8. 16. 선고 2018구합61345 판결).
사회척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국정원은 세월호 진상규명에 반대하는 여론을 형성하고 이슈 전환을 목적으로 유가족과 민간인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사찰을 진행했으며, 이를 청와대 등에 보고했다. '보수(건전) 세력(언론)을 통한 맞대응'이라는 제목의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국정원은 2014년 9월부터 2016년까지 '세월호 특조위 대응 T/F'를 내부적으로 운영하며 특조위의 자료 제출 요구에 대한 대응 논리를 수립하고, 내부 직원들을 체계적으로 교육했다. 조사를 받아야 할 기관이 오히려 조사 기관의 일거수일투족을 역으로 감시한 것이다.
조사과정에서 사참위가 열람한 세월호 관련 국정원의 불법사찰 문건이 수십만 건에 달하지만, 아직도 피해자들은 정확하게 자신이 피해자인지 알지 못한다. 사참위가 조사과정에서 열람할 수 있었던 문서 자체에도 피해자의 이름이 지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의 정보와 비밀을 다룬다는 이유로 불법행위를 확인할 최소한의 증거도 가해자의 허락을 받아서 볼 수 있었고,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피해자의 이름은 지워진 채 조사되었다. 가장 광범위한 사찰이 이루어졌지만 1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피해자가 누구인지 확인되지 못했다.

▲2026.04.11. 4.16세월호참사 12주기 기억약속시민대회세월호참사 12주기 기억약속시민대회에서 국정원 불법사찰 문건 중 비식별처리로 전달받은 사찰문건을 공개하고 공론화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 4.16연대
30여 년 전에도, 2년 전에도, 민간인 사찰은 위법행위였다
국정원과 같은 정보기관의 민간인 사찰이 단순한 행정적 일탈이나 회색지대가 아니며,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법행위라는 것은 새로운 법리가 아니다. 법원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를 반복해서 확인해왔다.
1990년 보안사 민간인 사찰 실태가 폭로된 뒤, 피해자 147명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법원은 보안사가 정치인, 법조인, 교수, 종교인, 언론인 등을 상대로 미행과 탐문 등의 방법으로 비밀리에 사상·신조를 포함한 개인정보를 수집한 행위가 "헌법이 보장하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 또는 위법한 것"이라고 판단했다(서울지방법원 1995. 9. 29. 선고 91가합49346 판결).
30여 년이 지난 2023년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가 세월호 가족들의 인적사항·요구사항·정치성향 등을 조직적으로 사찰한 사건에서, 법원은 이렇게 판단했다.
"기무사 소속 공무원들의 행위는 세월호 유가족들인 원고들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대한 침해로써 원고들에 대한 불법행위가 성립한다. 따라서 피고 대한민국은 기무사 소속 공무원들의 불법사찰이라는 고의에 의한 위법행위로 인하여 원고들이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2022.09.07. 국정원 사찰 · 공작 진실규명 정보공개 특별법안 발의 기자회견국정원감시네트워크, 내놔라내파일시민행동,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은 강민정 의원이 대표발의한 「국가정보원의 사찰 등 진실규명 및 정보공개 등에 관한 특별법안」의 주요 내용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오늘(9/7, 수) 오전 11시, 국회 소통관에서 개최했다. 기자회견에는 세월호 참사 가족들과 지원단체인 4.16연대 활동가들,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 참여연대 등 국가정보원 불법 사찰·공작의 피해자들이 참석해 독립적인 국정원 불법사찰 · 공작 진실규명위원회의 설치, 정보주체에 대한 사찰정보의 공개, 사찰정보의 사용금지 · 폐기, 피해자들에 대한 배보상 등을 규정한 특별법 제정을 국회에 촉구했다. ⓒ 4.16연대
국정원 사찰도 마찬가지다
보안사 사찰, 기무사 사찰, 국정원 사찰은 동일한 범죄다. 국정원은 법령상 직무범위를 벗어나, 민간인의 사생활과 정치적 활동을 비밀리에 수집·관리했다. 법원이 그동안 반복해서 확인한 법리는 국정원 사찰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
그런데 검찰 세월호참사 특별수사단은 2021년 국정원의 유가족 사찰 혐의를 불기소처분했다. "직권을 남용한 위법한 행위로 보기 어렵고, 유가족 등의 권리를 현실적으로 방해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민간인 사찰 그 자체가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라는 법원의 일관된 입장에 비추어 볼 때, 납득하기 어려운 결론이었다.
대법원은 국정원법에 직권남용 처벌 규정 취지에 대해 이렇게 밝힌 바 있다.
"국가정보원법에 직권남용죄에 관한 처벌 규정을 별도로 두고 있는 취지는 국정원의 원장·차장·기획조정실장 및 그 밖의 직원이 자신에게 부여된 직무권한을 남용하여 다른 기관·단체의 권한이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함에 있다."
또한 국정원 직원들이 민간인이나 정치인에 대한 사찰 및 이에 대한 보고를 한 행위는 "국가정보원법 제3조에서 정한 국정원의 정당한 직무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고 판시했다(대법원 2021. 3. 11. 선고 2020도12583 판결). 최소한 법의 관점에서 국정원의 불법행위는 명백한 범죄다.
사찰이 피해자들에게 남긴 것
법적 판단을 잠시 내려놓고 생각해보면, 사찰이 유가족들에게 남긴 것이 무엇인지가 더 선명하게 보인다. 피해자 가족들 사이에서는 "우리의 말과 행동이 또 기록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불안이 퍼져, 어떤 가족들은 공개적인 발언을 주저하고 활동 참여 자체를 망설이게 되었다. 사랑하는 자녀를 잃은 슬픔 위에, 국가의 감시라는 두 번째 짐이 얹혔다.
국정원의 특조위 사찰은 결국 진실을 요구한 국민 전체를 사찰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참사의 진실을 밝혀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권력의 감시와 통제 대상이 되는 사회는 그 누구에게도 안전하지 않다.
국정원은 그동안 사찰 피해자들의 정보공개청구에 대해 "정보가 특정되지 않았다", "국가안전보장과 관련된 정보"라는 이유를 들어 여전히 공개를 거부해왔다. 그러나 이 거부는 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국제인권규범은 중대한 인권침해 피해자에게 진실에 대한 권리, 정의에 대한 권리, 배상의 권리를 보장한다. 세월호 참사는 국제인권법의 관점에서 국가의 작위·부작위로 인한 생명권 침해라는 중대한 인권침해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참사 이후 이루어진 국정원의 사찰 행위는 마땅히 공개·규명되어야 할 인권침해 기록물이다.
유엔 진실·정의·배상 및 재발방지 특별보고관의 일반권고에 따르면 대규모 인권침해에 관한 기록보관소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것은 국가안보 등의 사유로도 허용될 수 없다. '국가안보'는 무제한의 방패가 아니다.
다행히 최근 국정원이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앞두고 피해자들의 요청을 수용해 기존에 공개하지 않은 목록 12만여 건을 비롯하여 법령으로 제한하지 않는 세월호 참사 관련 자료에 대한 공개를 약속했다. 이종석 국정원장은 지난 3월 말 세월호 유가족 측을 면담하고 정보공개를 위한 테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임기 내 가능한 모든 의혹을 마무리 짓겠다고 했다.
테스크포스에서 공개를 검토하고 있는 자료는 당시 국정원 서버 내 키워드 검색으로 확인된 총 68만 3천여 건의 자료 목록을 비롯해 비공개 처리됐던 목록 12만 건, 자료 공개 요청에도 제출되지 않은 문건과 제출됐지만 내용이 가려진 문건 3천여 건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늦었지만 올바른 문제 해결을 위한 의미있는 첫 걸음으로 평가할 만 하다. 속도감 있는 논의를 통해 신속한 자료공개가 이루어지길 희망한다.

▲2026.04.11. 4.16세월호참사 12주기 기억약속시민대회4.16세월호참사 12주기 기억약속시민대회에서 국정원 불법사찰을 공론화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 4.16연대
남겨진 과제
정보가 공개되는 것으로 문제가 끝나지 않는다. 정보공개는 국가폭력의 진실을 확인하는 기록일 뿐 이다. 기록을 통해 국정원의 불법사찰의 진상이 규명되면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
국정원의 공식 사과가 있어야 한다. 국정원은 지금까지 사찰 피해자들에게 어떠한 사과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진정한 사과는 법적 책임의 시작이자, 피해자의 존엄을 회복하는 최소한의 조치다.
둘째,
재발 방지를 위한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독일은 국가공안부문서법을 통해 사찰 피해자에게 자신에 관한 문서의 정보청구권·열람권·인도권을 보장했다. 현행 정보공개법 체계 아래에서 국정원이 '국가안보'를 방패로 삼는 한, 앞으로 제2, 제3의 민간인 사찰이 발생할 위험은 여전히 남아 있고, 피해자들의 진실을 알 권리는 공허한 선언에 머물 수밖에 없다. 사찰 피해자의 접근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법과 제도의 마련이 필요하다.
셋째,
피해자의 피해회복에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국가배상법은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국가가 그 손해를 배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기무사 사찰 피해자인 세월호 유가족들이 법원에서 위자료를 인정받았듯이, 국정원 사찰 피해자들도 동일한 권리를 가진다. 국가가 자발적으로 배상에 나서지 않는다면, 피해자들은 법원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다. 법원을 통한 소송보다 불법행위를 저지른 국가의 적극적인 피해 회복 노력이 우선되기를 희망한다.
조영관 변호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세월호T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