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6.04.22 10:47최종 업데이트 26.04.22 10:47

역사 속 여성들의 진짜 면모, 다시 읽어낸 기록

[리뷰] <여자, 기록을 가로채다>

 책표지
책표지 ⓒ 푸른역사


책 <여자, 기록을 가로채다>(2026년 3월 출간)는 역사 기록에 대체로 주변인으로 등장하기 마련인 여성들의 이야기를 주체적인 시각으로 그려내자는 기획 의도로 출간된 결과물이라고 이해된다. "역사 속 여자, 00하다"라는 주제로 기획 되어 모두 4권의 결과물로 출간되었는데, 그 첫 번째에 해당하는 이 책에서는 남성들의 기록에 등장하는 2명의 여성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고려의 문인 이곡이 기록한 <절부 조씨전>을 통해 '고려 말 절부 조씨'의 삶에 초점을 맞춘 내용이 앞에서 소개되고, 이어서 한말의 문인 이건창이 기록한 <가련전>을 대상으로 17~18세기를 살았던 함흥의 기생 가련에 대한 삶을 소개하고 있다. 2명의 저자들이 협력한 결과물로, 이 책에서는 남성들이 쓴 기록과 함께 저자들의 '역사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여성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즉 대상 작품들은 여성의 "입을 통해 남성 지식인의 손으로 역사에 기록되었"지만, 여성들이 지니고 있던 "구술 기억이 문자 기록으로 전환되었을 가능성"에 입각해 새롭게 해석하고자 한 것이라고 이해된다.

AD
고려의 문인 이곡은 친구의 처외조모인 조씨의 사연을 전해 듣고, 70대 후반의 나이까지 꿋꿋하게 살아온 여성 조씨의 일생을 절개를 지킨 여성이라는 의미인 '절부(節婦)'라는 수식어로 기록하였다. 고려시대 무신 정권이 몽고와 전쟁을 치르던 와중에, 무인인 아버지를 따라 강화도를 탈출했던 어린 여성이 바로 조씨였다. 무신정권의 잔여 세력이 일으켰던 '삼별초의 난' 당시 진압에 참여했던 아버지를 일찍 잃었지만, 13살의 나이로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게 된다. 하지만 조씨는 17살이 되던 해에 시아버지마저 원나라의 일본 원정에 참여했다가 세상을 떠났으며, 10년 후인 27살의 나이에 한반도 중북부를 휩쓸었던 카다안(哈丹)의 침입에 맞서 군사로 동원된 남편마저 죽음을 맞는다. 이처럼 힘겨운 상황에서도 여성들의 노동을 지칭하는 '여공(女工)'에 힘써 그녀는 가정을 꾸려나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 남은 딸과 생활하다가 이후 결혼했던 딸도 1남 1녀를 남기고 먼저 세상을 떠나, 조씨는 손주들을 키우며 살았다고 한다. 조씨의 손녀 사위가 이곡과 함께 과거에 급제한 친구였기에, 친구 집에 자주 드나들던 이곡이 조씨의 사연을 듣고 쓴 기록이 <절부 조씨전>이다.

저자는 "이곡의 어머니도 열다섯에 혼인했다가 40대에 남편을 잃고 남은 일생을 수절해 훗날 여든셋의 나이로 사망했다"라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어머니보다 3살이 적은 조씨 할머니의 사연을 알게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이곡은 같은 칠십 대인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렸을 것이라고 추론하고 있다. 그리하여 기록을 통해 남긴 "조씨에 대한 찬탄은 곧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찬탄이자 그 어머니의 자식인 자신의 영광"으로 여겼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원작자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나타난 조씨의 삶을 통해서 당시 여성들의 주체적인 면모를 읽어낼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어지는 내용은 이건창의 <가련전>을 통해 드러난, 조선 후기 기생 가련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함흥에서 처음 만났던 목씨 성의 한양 청년과 인연이 되어, 그 청년의 당파인 남인의 입장에서 함흥을 찾는 사대부들과 평생 정치 담론을 펼쳤다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겨있다.

숙종이 재위하던 시절 남인과 노론 사이의 치열한 권력 투쟁이 전개되었고, 정국의 주도권을 일시에 바꾸는 여러 차례의 '환국(換局)'이 일어났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건창은 <가련전>에 그녀의 말을 인용하면서, "차라리 남인의 종이 될지언정 / 노론의 첩이 되진 않겠다"라는 단호한 심정을 담은 내용을 남기기도 했다. 함흥의 기록에서도 가련을 여성이지만 의협심이 강하다는 의미인 '여협(女俠)'으로 칭했다고 하니, 그녀에 관한 당시의 평가를 짐작할 수 있다고 하겠다. 더욱이 80대 후반의 나이에 함흥을 찾은 사대부 권섭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한시와 노래를 주고받았다는 내용의 별도의 기록을 덧붙여 소개하고 있다.

남성들에 의해 기록된 두 작품은 모두 한문으로 표기되어 있기에, 여성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기록할 수 없었다. 다만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던 남성들에 의해 기록으로 전해지면서, 비로소 두 여성의 삶은 남성들의 '기록을 가로채' 지금까지 전해질 수 있었다고 하겠다. 남성들의 시각에 어느 정도 굴절되었던 기록을 대상으로, 주체적인 관점에서 여성의 삶을 새롭게 읽어내고자 한 것이라고 이해된다. 저자들은 이를 "전근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일방적 기록에 내재된 여성의 의지를 발견하려는 시도"라고 규정한다.

여자, 기록을 가로채다 : 고려 절부 조씨 부인*조선 기생 가련

장지연, 윤민경 (지은이), 푸른역사(2026)


#열부조씨전#가련전#역사속여자#기록과상상력#여성들의주체적삶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김용찬 (chany64) 내방

한국문학(고전문학)을 전공하는 연구자로서, 주로 책과 영화에 대한 리뷰를 쓰고 있다.(순천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기자의 다양한 분야에 대한 도서 리뷰는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