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폐된 조선소, 마지막 공정의 안전 사각지대
▲쇳가루 먼지로 뿌연 작업장
용접흄과 쇳가루 먼지가 가득찬 악세솔 메공 작업장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조선소는 밀폐구역 작업이 많다. 특히 도크(Dock)에서 건조 중인 배 안은 여기저기가 다 밀폐구역이다. 밀폐구역은 환기가 매우 중요하다. 환기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질식사고나 폭발사고 등 중대재해 발생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응급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2인 1조 작업이 필수다.
작년 11월 24일 한화오션 5번 플로팅도크에서 건조 중인 LPG운반선 내부 가장 아래 바닥에서 '악세솔 메공' 용접작업을 하던 하청노동자가 호흡곤란과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일이 발생했다. '악세솔'이란 배를 만드는 동안 배 안으로 쉽게 드나들기 위해 배 바닥에 임시로 만들어 놓은 지름 1미터 정도의 구멍을 말한다. 정식 명칭은 엑세스 홀(access hole)이지만 조선소에서는 누구나 악세솔이라고 부른다.
배를 만드는 동안 임시로 만들어 놓은 출입구멍이기 때문에 배 내부 작업이 다 마무리되면 철판을 대고 용접해 그 구멍을 다시 막아야 한다. 이를 '악세솔 메공' 작업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악세솔 메공 작업을 할 때는 환기가 매우 어렵다. 마지막 작업이다 보니 기존에 설치되어 있던 환기팬이 이미 철거된 경우가 많고, 모든 공간이 다 막혀 있어 환기팬을 설치하기도 마땅치 않다.
그리고 배의 가장 아래 바닥에서의 작업이다 보니 용접할 때 나오는 흄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그대로 작업공간에 머물러 있기도 하다. 또한, 다음 작업인 도장을 위해 비닐을 쳐 놓는 경우가 있는데 그 때문에 밀폐 효과가 더 커지기도 한다. 재해 노동자가 작업 당시 촬영한 동영상을 보면 시야가 몇 미터도 확보가 안 될 만큼 작업공간이 용접흄과 쇳가루먼지로 가득찬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악세솔 메공' 작업하다 호흡곤란 온 노동자, 산재는 불승인?
해당 노동자는 아침 8시부터 하루종일 악세솔 메공 작업을 했는데 오후 3시부터 숨쉬기에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다 오후 5시 30분 작업을 마무리하고 장비를 정리할 때에는 증상이 심해져서 어지럽고 심장이 빨리 뛰어 걷기가 힘든 상태가 되었다. 다행히 함께 일하던 동료의 부축을 받아 배 위로 올라올 수 있었는데, 옆으로 50미터, 위로 50미터 정도를 이동해서 배 위로 올라오는 데만 40분이 넘게 걸렸다. 배 위로 겨우 올라와서는 더 이상 움직이기 어려워 사내 응급구조대에 신고했고 출동한 응급구조대에 업혀서 엘리베이터을 이용해 내려와 사내구급차에 실려 근처 병원으로 이송됐다.
병원 검사 결과 '급성 심근경색' 소견이 나왔다. 그런데 거제에는 심근경색 응급처치가 가능한 병원이 없어 급하게 1시간 정도 걸리는 대학병원으로 이송됐다. 대학병원에서 다시 검사를 한 결과 다행히 심근경색은 아니었다. 그리고 며칠 지나 증상도 곧 호전되었다.
심근경색이 아닌 것은 다행이었지만, 그리고 며칠 만에 상태가 호전된 것은 다행이었지만, 다행이 아닌 일도 있었다. 대학병원에서는 심근경색 대신에 '급성 심장막염'이라는 진단을 했는데, 근로복지공단에서는 급성 심장막염에 대한 산재 신청을 불승인했다. 급성 심장막염은 주로 바이러스 감염에 의해 발생하지 밀폐공간 환기 불충분이나 가스 흡입으로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산재가 아니니 사고가 아니다, 재발방지 대책 없이 유지되는 현장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산재 신청이 불승인되자 원청이자 작업장 안전에 대한 책임이 있는 한화오션이 급성 심장막염은 사고와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여기에 더해 한화오션은 해당 노동자의 재해를 '사고'라고 부르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심근경색이든 심장막염이든 개인 질병이 원인이라면 작업과 무관한 것이고 그렇다면 '사고'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것이다. 사고가 아니라고 판단하니, 제대로된 보고나 사고에 대한 조사, 원인 분석 등이 있었을 리 만무하다. 당연히 재발방지 대책 마련과 작업환경 개선 역시 없었다.
그래서 사고가 발생한 지 5개월이 지나도록 한화오션 하청노동자는 여전히 똑같은 조건과 환경에서, 환기가 거의 안 되고 용접흄과 철가루 먼지 가득한 상황에서 악세솔 메공 작업을 하고 있다.
반면, 악세솔 메공 작업에 대해 잘 아는 하청노동자들은 사고 소식을 듣고 누구나 작업 환경의 열악함과 환기 문제에 대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해당 노동자의 호흡곤란, 어지럼증과 같은 증상이 환기 문제 때문이라는데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산재 신청이 불승인 되었다는 이유로 한화오션은 이 같은 현장 노동자들의 의견이나 하청노동조합의 주장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결국 밝혀진 원인, 그러나 원청은 '인정 못해'
그러던 중 새로운 의학적 소견이 제시되었다. 병원 진료기록을 가지고 인제대학교 부산백병원 직업환경의학과에 의뢰를 했더니, 심근경색이나 심장막염이 아니라 '일산화탄소 중독증상'이라는 소견이 나왔다. 일산화탄소 노출 지표로 사용되는 '카복시 헤모글로빈'(CO-Hemoglobin)의 재해 당시 검사 결과가 10.7%으로 일산화탄소에 70ppm 이상 노출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이는 고용노동부의 8시간 노출기준인 30ppm을 두 배 이상 초과하는 수치라는 것이다.
'일산화탄소 중독증상'이라는 새로운 의학적 소견을 듣자 환기가 안 되어 앞이 보이지 않게 뿌옇던 작업 환경이며, 재해 노동자의 호흡곤란, 어지럼증 등의 증상이며 모든 것이 다 제대로 꿰어 맞춰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한화오션에 이 같은 사실을 알리고 다시 한 번 제대로 된 사고조사와 원인 분석, 재발방지 대책 및 작업장 환경 개선을 요구했다. 그러나 한화오션은 의학적 소견만으로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라며 여전히 '사고'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산화탄소 중독증상이라는 의학적 소견이 너무 명확했기에, 근로복지공단도 일산화탄소 중독증상으로 다시 신청한 산재 신청에 대해서는 결국 승인 결정을 내렸다. 배 안의 밀폐된 공간에서, 용접흄과 쇳가루 가득한 상황에서 하루종일 용접 작업을 하다 생긴 어지럼증과 호흡곤란이 개인 질병이 아니라 작업 환경 때문이었다는 것을 비로소 인정받은 것이다.
한화오션은 이제 뭐라고 할까? 더 이상 심근경색이니 심장막염이니 하며 '사고'가 아니라고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그동안의 모습을 사과하고 즉각적인 사고조사와 재발방지대책 마련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보여주기식 '안전 투자'말고, 현장이 변해야
조선소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해 사회적 여론이 집중되면, 기업은 안전에 1조를 투자하니 2조를 투자하니 언론에 발표하기 바쁘다. 그러나 정작 현실에서는 사고에 대한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거나 기업의 책임을 회피하기 바쁘다. 또한, 현장을 가장 잘 아는 노동자의 목소리에 전혀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그 결과 이번의 경우에도 재해가 발생한 지 5개월이 지나도록 한화오션은 사고조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고, 똑같은 일산화탄소 중독 위험 속에서 노동자들은 일해야 했다. 그 5개월 동안 다른 노동자가 더 큰 재해를 당하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다.
한화오션은 이번 사고에 대해 책임 회피로 일관한 모습을 제대로 성찰하고 반성해야 한다. 사고 후 5개월 동안 산재를 인정받기 위해 몸과 마음으로 고생한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사과를 해야 한다. 그리고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사고조사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철저히 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하청노동자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하청노동조합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김용균재단 회원이자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