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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사는 것은 웰빙, 잘 죽는 것은 웰다잉, 잘 늙어가는 것은 웰에이징이다. 100세 시대, 삶에서 가장 긴 구간을 웰에이징하기 위한 마음은 모두에게 중요하다. 인생의 중반부에 들어선 지금, 후반부를 웰에이징하기 위한 결심들을 소개한다.
"오늘도 변함이 없이 이 시간을 기다려주신 전국에 계시는 가요무대 가족 여러분. 이곳까지 직접 찾아와 주 많은 방청객 여러분. 그리고 멀리 계시는 해외 동포, 해외 근로자 여러분. 지난 한 주 안녕하셨습니까?"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전해드릴 것이 있어서 잠시 들렀던 친정집 거실 TV에서 흘러나오는 <가요무대>의 오프닝 멘트였다.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30여 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멘트도 그대로, 멘트를 전하는 아나운서도 그대로, 소파에 앉아 그걸 보고 있는 아버지도 그대로였다.

내가 학생이던 시절, 40대였던 아버지는 그때도 <가요무대>의 열렬한 애청자였다.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을 따라 부르며 엄마 손을 꼭 잡던 모습이 생각나고, 손가락을 튕기다가 주먹을 부딪는 기교를 부리며 노래 박자를 맞추시던 모습도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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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무대>가 아직도 해요? 김동건 아저씨가 아직도 진행하셔요? 어쩜, 옛날이랑 똑같으시네?"

70대 후반의 아버지는 뭐 그런 질문이 다 있느냐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시더니 다시 화면에 빠져 드셨다. 예전처럼 손가락을 튕기며 박자를 맞추는 흥은 안보였지만, 여유롭게 화면을 응시하며 온전히 노래를 즐기고 계신 모습이 편안해 보였다.

아버지가 70대까지 즐겨보는 <가요무대>

 <가요무대> 사회를 보는 김동건 아나운서(우)
<가요무대> 사회를 보는 김동건 아나운서(우) ⓒ KBS

1985년부터 시작한 <가요무대>는 흘러간 옛 가요와 트로트를 주로 들려준다. 41년이나 된 장수 프로그램인데도 <전국노래자랑>에 이어 꾸준히 5~7%대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초저녁이면 잠드는 노인들조차 월요일 밤 10시에 본방 사수를 하게 만드는 <가요무대>의 매력은 무엇일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노랫말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2020년 가요무대 35주년을 맞아 프로그램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가요무대에서 많이 불렸던 노래는 '울고 넘는 박달재', '찔레꽃', '꿈에 본 내 고향', '나그네 설움' 등이다. '고향', '어머니', '이별', '눈물'처럼, 애잔하면서도 보편적인 정서를 담고 있는 노래는 시청자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당신들의 치열했던 중장년 시절을 관통했던 아픔과 그리움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가사를 들으면 절로 감정이 복받쳤을 것이다.

<가요무대>만이 가진 '속도'도 또 하나의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가요만큼이나 빨라진 세상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기 힘들다는 뜻이기도 하다. 빠른 템포와 화려한 퍼포먼스로 가득한 요즘 음악방송과 달리 <가요무대>의 무대는 정중하고 차분하다.

세상이 아무리 빨라져도 당신들의 속도에 맞는 노래를 들려드리겠다는 <가요무대>만의 독보적인 분위기는 노인들에게 자신들이 존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할지도 모르겠다. 뒤처지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헉헉대던 고단함을 알아준 프로그램이었으니 충성 시청자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노인들이 느리고 전통적인 노래만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19와 함께 2020년을 장식한 트로트 경연프로그램은 고립되었던 노인들을 새로워진 트로트의 세계로 이끌었다. 이노션 월드와이드가 2020년 실시한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트로트의 전통적 요소에 예능, 다양성, 즐거움이 더해서 '뉴트롯'이라 불리는 트로트의 전성시대가 열렸다고 한다.

소파에 앉아 가요무대를 시청하던 노인들은 뉴트롯의 시대를 맞이해 팬덤의 주체가 되기 시작했다. 가수 임영웅의 호주 팬클럽인 시드니 영웅시대는 회원들의 평균 연령이 65세이며, 최고령 회원이 91세에 달할 정도로 고령층 중심의 팬덤이라고 한다.

트로트뿐만이 아니다. 아이돌 팬덤에서도 노년층이 차지하는 비중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있고 디지털 기기 활용 능력이 높은 액티브 시니어층이 젊은 시절에 포기해야 했던 덕질을 만끽하고 있다.

<가요무대>든, <미스터 트롯>이든, K팝이든, 장르를 불문하고 노인들에게 노래는 노래 이상의 의미다. 물론 노래가 노인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나이와 성별, 국적과 종교, 장소와 상황을 불문하고 노래는 사람을 살게 하는 힘이다. 노래를 통해 기쁨을 공유하고 슬픔을 치유받는다.

특정 노래를 들으며 과거의 시간과 공간을 소환해 과거의 나를 만나고, 함께 듣고 부르면서 고립을 넘어서는 연대를 경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노인에게 노래가 특별한 의미인 이유는, 기억이다. 일생 동안 자신을 살린 수많은 노래에 대한 기억이 차곡차곡 쌓여있기 때문이다.

루리 작가의 동화 <나나 올리브에게>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내 이름이 뭐였는지 기억이 안 나요. 앨범을 숨겨 둔 게 어느 벽돌 뒤였는지도 기억이 안 나요. 기억이 안 나는 것투성인데, 그 노래만큼은 처음부터 끝까지 외워 부를 수 있어요. 레코드판이 돌아가기 시작하면 달달한 냄새와 따뜻한 공기와 햇볕 냄새가 나는 이불 같은 것들이 떠올라요."

이야기속 화자인 할머니는, 기억은 점차 희미해져 가지만 행복한 시절 늘 듣고 불렀던 노래만큼은 선명하게 떠오른다고 했다. 머리가 아닌 마음에 각인된 것, 귀를 통해 들어와 몸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세포 하나하나에 전해진 진동이 노래여서 인간은 끝까지 노래만큼은 놓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르신들에게 노래는 버팀목

 <전지적 참견 시점>에 출연한 황민호 군.
<전지적 참견 시점>에 출연한 황민호 군.

초중고등학교에서 프리랜서 토론 강사로 활동하고 나는 최근 '앞으로 결석이 잦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학생 한 명을 만났다. 알고 보니 <미스터 트롯 2>에 참가했던 황민호군이었다. 쉬는 시간 복도에서 친구들에 둘러싸여 있는, 말 그대로 '스타'였다.

나중에 친정 어머니에게 그때 스타를 몰라봤다고 말하자 "어머, 민호? 황민호? 리틀 장구 프린스잖아. 고 녀석 보통 아니야. 장구 치면서 얼마나 노래를 잘하는지. 지방 행사 가면 할머니들이 주머니에 용돈 막 넣어주고 그러더라. 실물을 보니 어떻디? 귀엽게 생겼지?"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셨다.

수업 시간을 틈 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 공연을 많이 다닐 텐데,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호응이 대단하지요?
"마음은 아직 청춘이라고 느껴지는 게, 항상 신나고 즐겁게 춤추고 노래를 따라 불러주세요."

- 그렇게 좋아해 주는 분들을 보면 어떤 마음이 들어요?
"제 노래를 듣고 더 신나셨으면, 더 힘이 나셨으면 해서 열심히 부르려고 해요."

- 노인분들에게 '노래'란 무엇이라고 생각요?
"버팀목인 것 같아요. 다양한 의미에서요."

앳된 외모와는 달리 성숙한 답변이 나와 적잖이 놀랐다. 민호군의 말대로 노인분들에게 노래는 버팀목이다. 다만, 외롭고 쓸쓸한 노년을 지지해 주는 진부하고 뻔한 단어로 쓰인 버팀목이 아니다.

젊고 활기찼던 과거에만 매몰되어 현재를 잃지 않도록 해주는 것, 인생의 그 어느 때보다 더 즐겁고 활기차게 즐길 수 있는 능동적인 노인이 되게 해주는 것, 나이듦에 굴복하지 않고 희미해지는 기억 앞에서 초라해지지 않도록 잡아주는 것이다.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 하나가 있는가? 그렇다면 잘 늙을 준비 하나는 끝났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인생의 중반부에 들어선 지금, 후반부를 웰에이징하기 위한 결심들을 소개한다.
#노인#노래#가요무대#나이#트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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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자신과 세상을 주의깊게 관찰하여 삶의 의미와 재미를 발견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늘 봄같은 기운이 세상에 가득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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