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민들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 속에서도 제30회 한라산 청정 고사리 축제장을 찾은 주민들과 방문객들이 행사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 고창남
제주의 봄은 '고사리 장마'와 함께 찾아온다고 했던가. 제주에서는 고사리가 날 무렵 내리는 비를 '고사리 장마'라 부르는데, 축제가 열린 이날 역시 대지를 적시는 촉촉한 봄비가 내려앉았다. 이 촉촉한 빗줄기를 머금고 덥석 쥐면 부러질 듯 탱글탱글하게 솟아오른 고사리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4월의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들녘은 연둣빛 생명력이 가득했다.
18일~19일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1622-5번지 일대에서 '제30회 한라산 청정 고사리 축제'가 열렸다. 올해로 서른 돌을 맞이한 이번 축제는 '자연이 살아 숨 쉬는 남원읍에서 혼디 고사리 꺾으멍 지꺼지게(함께 고사리 꺾으며 기쁘게)'라는 슬로건 아래, 제주의 대표적인 생태 관광 축제로서의 위상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비 날씨가 대수냐" 고사리 손맛에 빠진 연인원 1만여 명의 인파
개막 당일, 제주의 하늘은 시샘하듯 비를 뿌렸다. 궂은 날씨 탓에 행사가 위축될 법도 했지만, 한라산 자락의 정취를 느끼려는 이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우비를 입고 장화를 신은 가족 단위 방문객과 관광객들은 빗속에서도 꺾는 재미가 쏠쏠한 '고사리 손맛'에 푹 빠진 모습이었다. 주최 측 추산에 따르면 첫날에만 약 5000여 명의 인파가 축제장을 찾았다.
개막식에는 고권우 남원읍장, 오순문 서귀포시장, 송영훈 제주특별자치도의원(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오승식 제주특별자치도의회 교육위원장, 김문화 대한노인회 남원읍회장, 김철윤 남원읍 주민자치위원장, 김기창 남원읍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장, 강복순 재경남원읍민회 회장 등이 내빈으로 참석했다.
이번 축제는 시작부터 '격식'보다 '실속'과 '즐거움'을 택했다. 관례적인 대회사, 환영사, 축사 등 긴 인사말을 과감히 생략하고 서면으로 대신했다. 대신 부무현 남원읍 축제위원장의 힘찬 개회 선언과 내빈들의 케이크 커팅 후 곧바로 축제의 본 마당이 펼쳐졌다.

▲길트기한남리 들녘을 깨우는 남원읍 민속보존회의 길트기 공연 ⓒ 고창남
개막 첫날인 18일은 지역 주민들이 주인공이 되는 무대로 꽉 채워졌다. 풍물패의 신명 나는 길트기 공연을 시작으로 한남 라인댄스, 의귀 댄스 동호회, 위미2리 해림댄스동아리, 태흥 폴개, 위미1리 경로당 동백댄스 동아리의 무대가 이어졌다. 신흥1리 하모니카 연주와 소리꾼 조은별의 로컬뮤지션 공연은 빗소리와 어우러져 운치를 더했다.
특히 초대 가수 전유진의 축하 공연이 시작되자 행사장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이어 고사리 어린이 챌린지 대회와 어르신 장작 윷놀이 예선이 펼쳐지며 세대를 아우르는 축제의 장이 마련됐다.

▲해림댄스동아리위미2리 해림댄스동아리 공연 ⓒ 고창남

▲전유진초대 가수 전유진의 축하 공연 ⓒ 고창남
단순한 축제 넘어 '교육'과 '상생'의 장으로
올해 축제의 가장 큰 특징은 30주년을 맞아 단순한 체험을 넘어 교육적 가치와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동시에 잡았다는 점이다. 고사리 꺾기 체험에는 전문 해설사가 동행해 고사리의 유래와 효능, 올바른 채취 방법 등을 설명하며 참가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가마솥을 이용해 전통 방식 그대로 고사리를 삶고 말리는 시연은 어르신들에게는 향수를, 아이들에게는 살아있는 생태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다.
부무현 축제위원장은 서면 대회사를 통해 "고사리는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솟아오른 봄의 생명력 그 자체"라며, "올해는 특히 축제장과 남원 상권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상가 겸용 이용권'을 발행해 지역 소상공인과 상생하는 축제로 거듭나고자 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번 축제에서는 1만 원권 형태의 이용권 2종이 발행되어 축제장 내 음식점은 물론 남원읍 관내 상가와 시장에서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고물가와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지역 경제에 실질적인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의지다.
이틀간 이어진 '고사리 성찬', 비 갠 뒤 더해진 열기
축제 둘째 날은 다행히 비가 그치고 많은 인원들이 축제장을 찾았다. 19일에도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하례1리 노인회 난타 동아리와 남원1리 댄스회, 위미3리 트멍애, 신례1리 경로당의 라인댄스 등 마을별 동아리들이 그간 갈고닦은 실력을 뽐냈다. 임실 필봉 농악 공연과 청소년 페스티벌은 축제에 젊은 에너지를 불어넣었으며, 초대 가수 김용필의 축하 공연은 방문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행사장 곳곳에 마련된 17개 마을별 부스에서는 고사리를 활용한 향토 음식들이 관람객들의 후각을 자극했다. 고사리 전, 고사리 빙떡, 고사리 파스타, 고사리 김밥 등 이색적인 메뉴들이 등장했다. 특히 제주도가 추진하는 '가성비 높은 제주 관광' 기조에 맞춰 음식 가격을 예년보다 10~33%가량 낮게 책정해 방문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격려차 방문한 오순문 서귀포시장은 서면 축사를 통해 "고사리 축제는 단순히 먹거리를 즐기는 행사를 넘어 우리 가슴속에 남아있는 일상의 추억을 공유하고 자연의 가치를 되새기는 자리"라며 축제의 의미를 높게 평가했다.
30년 역사의 저력, '지속가능한 축제'를 향하여
1995년 시작된 한라산 청정 고사리 축제는 이제 남원읍을 넘어 제주의 자부심이자,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생태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남원읍장고권우 남원읍장 ⓒ 고창남
고권우 남원읍장은 서면 환영사에서 "30회를 맞이한 것은 지역 주민들의 헌신적인 애정 덕분"이라며, "실종객 없는 안전한 축제,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지속가능한 축제를 만들어가겠다"고 약속했다.
축제는 고사리축제 가요제 본선과 줌바댄스 공연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오후 4시 30분부터 진행된 시상식과 공동모금회 희망 기부 전달식은 축제의 온기를 지역사회에 나누며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어린이들비누방울 놀이를 즐기는 어린이들 ⓒ 고창남
현장에서 만난 한 주민은 "비가 와서 걱정했는데, 오히려 비 안개 머금은 들판에서 고사리를 꺾으니 운치가 더 있다"며 "지역에서 쓸 수 있는 이용권 덕분에 축제를 즐기고 시장도 들를 계획"이라고 만족감을 표했다.
비바람 속에서도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던 제30회 한라산 청정 고사리 축제. 자연이 내어준 선물 '고사리'를 매개로 사람과 사람, 마을과 마을을 잇는 제주의 봄은 한남리 들녘에서 더욱 짙게 익어가고 있다.

▲부무현인터뷰에 응하는 부무현 남원읍 축제위원장 ⓒ 고창남
부무현 남원읍 축제위원장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비가 오는 중에도 찾아주신 많은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올해는 30주년인 만큼 '상생'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개막식의 불필요한 절차를 줄이고 주민들의 무대를 늘린 것도 그 이유입니다. 축제장에서의 소비가 축제장 담장을 넘어 우리 남원읍 골목 상권까지 흘러 들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용권을 도입했습니다. 남원 고사리의 향처럼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축제가 되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N제주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