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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는 본격적인 건기에 접어들었다. 손빨래한 옷을 설렁 짜서 말려두면 점심 먹기 전에는 다 마른다. 이른 아침 창문을 잠시 열어두면, 집안이 소독되는 느낌이다. 그만큼 덥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한낮 풍경 머리 위로 초록 잎이 그늘을 만들어도 햇빛은 여전히 뜨겁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한낮 풍경머리 위로 초록 잎이 그늘을 만들어도 햇빛은 여전히 뜨겁다. ⓒ 전세정
낮 동안에는 밖에서 오 분도 걷기 힘들 만큼 푹푹 찌다가, 해가 지면 다시는 안 그칠 것처럼 비가 쏟아진다. 곳곳에 길이 잠기는 일도 드물지 않다. 이런 날씨가 매일 반복되다 보니, 사실 봄이 왔다는 것도 달력을 보고서야 알게 된다. 그날이 그날 같아지고, 시간 감각이 흐릿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계절 감각만 흐릿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서는 관계도 계절처럼 짧다. 마음을 열려고 하면 누군가는 주재 기간이 끝나 한국으로 돌아간다. 겨우 친해질 즈음이면 떠날 준비를 하는 일이 이곳에서는 낯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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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타지 생활이 길어질수록 사람에 대한 기대가 점점 줄어들었다. 외롭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관계에도 '적당함'이라는 거리를 두게 된다. 어차피 헤어질 거라는 마음이 먼저 들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는 계절을 대신 전해주는 친구가 한 명 있다. 나는 그 친구를 속으로 '계절 요정'이라고 부른다. 그 친구와 나는 인도네시아에서 처음 만났다.

같은 나라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며 서로를 의지하던 육아 동지였다. 우리 아이들이 태어난 해는 2014년. 낯선 나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함께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있어서, 힘들 땐 서로의 친정이 되어주곤 했다.

그 친구는 아이가 네 살이 되었을 때 한국으로 돌아갔다. 벌써 8년 전 일이다. 그렇게 헤어지고 난 뒤에도 우리는 한국에 갈 때마다 꼭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외국에서 동갑내기 친구를 만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취향이 비슷한 친구를 만나는 일은 더 어렵다. 그래서인지 그 친구는 내게 단순한 친구가 아니다. 시간을 함께 건너온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한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친구는 계절마다 사진을 보내준다. 봄이면 벚꽃, 가을이면 단풍, 겨울이면 눈 내린 풍경. 여름이면 장맛비에 젖은 거리까지도 빠짐없이 보내준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 친구는 늘 계절처럼 찾아왔다.

한국에 돌아간 뒤 친구는 큰 수술을 여러 번 받았다. 병원에 누워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더 크게 느껴졌다. 나 역시 수술대에 오른 적이 있었기에 그 시간이 얼마나 길고 무거운지 알고 있었다. 몸이 아플 때면 이상하게 그 친구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카톡 휴대폰이 울렸다. 잠실에 사는 친구에게서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분홍색 벚꽃이었다. 동영상과 함께 화면 속 벚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안부를 전하는 따뜻한 친구의 목소리와 함께
사진 속 바람이 내게까지 불어오는 것 같았다. 이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봄의 기척이, 드디어 손끝에 닿았다.

#봄#우정#해외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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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에서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습니다. 낯선 도시에서 살아가는 일상의 장면들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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