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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4.15 13:12최종 업데이트 26.04.15 13:12

평교사로 행복하게 퇴직했습니다

모든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교사들 대부분은 한 번쯤 승진을 꿈꿀 터이다. 나도 그랬다. 교직에 첫발을 디뎠을 때는 승진하고픈 생각이 아예 없었다. 청바지에 백발을 휘날리며 퇴직하는 순간까지 수업을 하고 싶었다.

허나 마흔 즈음이 되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유혹에 좀체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의 나이에 승진에 대한 욕망이 나를 세차게 흔들어댔다. 교장이 되어 자신만의 교육 철학을 펼치고 싶다는 원대한 꿈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수업에 싫증이 났기 때문이었다. 학생들 대부분은 수업 시간에 꾸벅꾸벅 졸았고 일부는 대놓고 꿈나라로 갔다. 그들을 제지할 방법이 없었다. 이쪽에서 조는 아이를 깨우면 저쪽 아이가 고개를 떨구었다. 체벌은 물론이려니와 말로 심하게 혼내는 것도 금지되어 이었기에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좋은 말로 타이르며 깨어 있는 몇몇 아이들과 간신히 수업을 이어갔다. 그러니 수업에 염증이 날 수밖에.

어서 빨리 승진해서 수업 지옥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승진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고 나서 생각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연구 점수, 벽지 근무 점수, 근무 평정 점수 등 각종 점수를 차곡차곡 쌓아야 승진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른 점수야 어찌어찌 쌓는다 해도 벽지 근무 점수가 가장 큰 문제였다. 벽지 근무 점수를 쌓으려면 가족과 떨어져 홀로 지내야 했다. 그러면서까지 승진하고 싶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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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진을 포기하자 수업이,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짐이 되어 다시 나를 압박했다. 교사가 수업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수업에 염증을 느끼지 않고 수업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때까지 나는 교사 주도의 일제식 강의 수업을 하고 있었다. 퇴직까지 20여 년이 남은 상태에서 계속 그런 식으로 수업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수업 방식에 관한 책을 여러 권 구입해 읽고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수업 방식을 실천하고 있는 사례를 찾아보았다.

이미 많은 교사들이 일제식 강의 수업에서 벗어나 학생 중심 수업을 실천하고 있었다. '아, 이거다!' 싶었다. 그렇게 수업하면 나의 수업에 대한 염증은 씻은 듯 사라지고 학생들도 즐겁게 수업에 참여할 수 있겠다 싶었다. 허나 막상 그런 수업을 시도하자 아이들의 반응은 시큰둥하기만 했다. 아이들의 표정에는 '지금 뭐 하세요?'라고 쓰여 있었다. 대학 진학이 지상 최대 과제인 일반계 고등학교에 근무하고 있었던 터라, 내가 새롭게 시도한 어설픈 학생 중심 수업은 학생들에게 아무런 호소력이 없었다. 어쩔 도리 없이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는 일제식 강의 수업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7~8년 정도 수업을 이어갔다. 수업 중 학생들은 날이 갈수록 지리멸렬했고 수업에 대한 나의 염증도 그에 비례해 심화했다. 퇴직을 10년쯤 앞둔 때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에 들어가면서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심정을 느끼곤 했다. 수업 방법을 바꾸어야만 했다. 예전에 시도했다 실패한 학생 중심 수업을 다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전의 처절한 실패를 반복하지 말아야 했기에 준비를 철저히 해야 했다. 여러 자료를 참고하며 2년 동안 수업 방법을 바꿀 준비를 했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학생 중심 수업 방법이 '하브루타' 수업이다.

하브루타 수업은 '질문과 대답'이 핵심인 수업이다. 교사가 질문하고 학생이 대답하는 형식이 아니다. 학생이 질문하고 학생이 대답한다. 질문과 대답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질문과 대답으로 이루어지는 대화라고 할 수도 있다. 이 수업에서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teacher)'이 아니라 '조정자(coordinator)'가 된다. 그러니 이 하브루타 수업의 중심은 교사가 아니라 학생이다.

처음에는 약간 삐걱거리기도 했지만 2년 동안의 준비 덕분에 나의 하브루타 수업은 이내 순조롭게 궤도에 안착했다. 학생들은 내 수업을 재미있어 했고 나도 수업이 매우 즐거웠다. 교직에 첫발을 디딘 지 25년이 훌쩍 지난 뒤 느끼는 감정이었다. 퇴직할 때까지 10년 가까이 그렇게 즐겁게 하브루타 수업을 했다. 해마다 다른 학생들을 만났지만 학생들은 대개 나의 하브루타 수업을 좋아했다. 그래서 정년 퇴직할 때까지 평교사로 교단에 설 수 있었다.

지금 교단에 있는 후배 교사들 중에도 나와 같이 수업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 있을 터이다. 그런 교사들에게 강력하게 권한다. 당장 수업 방법을 바꾸어 보라고. 학생들을 수업의 중심에 놓아 보라고. 그 수업이 꼭 하브루타 수업일 필요는 없다. '배움의 공동체' 수업도 좋고 '거꾸로 수업'도 좋고 '협동 학습' 수업도 좋다. 학생들이 수업의 주인이 되는 방식이라면 그 어떤 형태의 수업이라도 좋다. 그런 수업을 제대로 한다면 교편을 놓는 그날까지 매우 즐겁게 수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교사들 대부분이 승진에 신경 쓰지 않고 학생들과 함께 즐겁게 수업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학교는 지금보다 훨씬 더 바람직한 공간으로 탈바꿈하리라는 점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


#평교사#수업#학생#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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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게 지방 소도시에서 교사로 재직하다 퇴직. 2년을 제외하고 일반계고등학교에서 근무. 교사들이 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학교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있음. 과연 그런 날이 올 수 있을지 몹시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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