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 kind, for everyone you meet is fighting a hard battle(친절하라, 네가 만나는 모두가 힘든 전투를 치르고 있다)."
서구에선 꽤 유명한 말이다. 언젠가부터 한국서도 가끔 마주하는 이 문구를 처음 지은 사람이 누구일까를 이따금 생각해본다. 글을 쓰는 이유가 읽는 이를 깨우고 움직이는 것이라면, 이 문장만한 글은 세상에 그리 많지가 못하다. 정말이지 그렇다. 누구에게나 삶이 있다. 자신만의 전장이 있다. 오로지 나만 고된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님을 안다면 누구에게도 불친절할 수는 없을 테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생각하게 된다. 모두가 저마다의 전장에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지만, 누구의 전투는 다른 누구의 것보다 더 고되리라고. 펼친 지 몇 시간 만에 금세 읽어버린 <다르거나 혹은 같거나>에 등장하는 이들의 전장이 하나하나 그렇다.
발달장애인과 이주민의 목소리를 옮겨 전하다

▲다르거나 혹은 같거나책 표지 ⓒ e복음과상황
<다르거나 혹은 같거나>는 지난 1월 전자책으로 출간된 김영준의 에세이집이다. 경기도 김포시에서 협동조합 '달팽이학교', 책방 '민들레와 달팽이'를 운영하는 김영준 민들레교회 목사의 글이다.
수년 간 목회와 함께 지역을 기반으로 한 사회 참여 활동을 이어온 저자가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써낸 12편의 글이 들어찼다. 교회와 협동조합을 운영하며 발달장애인 자조모임, 이주여성 한글 및 검정고시 교육 등을 진행해온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저자는 스스로 글이 '번역'이라고 말한다. 한국어가 외국어일 수밖에 없는 이주민과 제 뜻을 언어로 자유롭게 풀어서 말하기 버거운 발달장애인의 말을 글로써 풀어냈을 뿐이란 것이다. 보고 듣고 겪고 느낀 것을 제가 풀어낸 게 아니라 그저 번역해 전하였을 뿐이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글을 대하는 저자의 자세를 읽어낼 수 있다.
인터뷰를 진행할 때 영진 씨는 지난 시간을 떠올리며 먹먹해 하지 않았지만, 영진 씨 부모님의 눈은 젖어 있었다. 영진 씨가 열 살이 되었을 때 손을 잡고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영진 씨가 걷기 전 10년 동안 아버지는 극도로 우울하셨다고 한다. 어떤 사람의 위로에도 화가 났고, 목사의 오랜 기도마저 거절하고 싶었다. 하나님을 향한 욥의 욕에 공감했고, 욥의 신음 소리를 들었다. 10년 동안 그렇게 '욥기'를 살았다고 하셨다. - 81p
왜 나일까. 왜 내 자식일까. 장애를 가진 이와 그 가족의 참담한 마음을 짐작하기 어렵다. 천형처럼 닥쳐온 장애의 이유를 찾으려는 마음은 곧 그를 납득할 수 없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과 통한다. 자식의 장애를 곁에서 감당하며 아버지의 마음이 썩어갔다고 했다. 어떤 위로도 받아들일 수 없는 마음이었다고 했다. 그런 그를 구하고 지탱한 것이 종교며 신앙이었다면 그는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선천적으로 눈이 먼 이와 맞닥뜨린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에게 장애가 누구의 죄로 인한 것이냐를 묻는 구절이었다고 했다. 예수가 답하기를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답하였다. 이 말이 그대로 장애인의 아버지인 그를 지탱케 했다. 원인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 믿음이 더 효과를 발할 때가 있는 것이다.
비슷한 사례가 몇 더 등장한다. 책은 역시 발달장애인인 윤정씨와 그 어머니가 자조모임을 통해 삶에 활력을 얻기까지를 다룬다. 그리고선 성경 속 한 문장을 붙인다.
"지금 우는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 (눅 6:21) -98p
종교도 신앙도 없는 나는 과연 이 종교의 약속이 이뤄질 수 있는 것인지를 의심한다. 맹인을 앞에 둔 예수의 말은 신이 장애를 통해 마침내 드러낼 뜻이 있을 때에야 참일 수 있다. 지금 우는 이들을 향해 도리어 행복하다고 말하는 선언은 마침내 약속의 순간이 도래할 때에야 진실하다. 나로선 예수의 약속들이 진실로 이 땅에 이뤄질 것이라고 도저히 믿기 어렵다. 그러나 끝내 납득하고 마는 것은, 통곡하는 이에게 손 내밀지 않는 작금의 세상보다야 이와 같은 약속을 하고 곁에 서는 이들의 태도가 훨씬 더 낫기 때문이다.
행하기 어렵단 걸 알기에
김영준 목사는 제 신앙의 자리가 이들의 곁에 있다고 믿는다. 장애가 죄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한 결과라는 예수의 말을 믿고, 그 일을 보고 섬기고자 한다. 그리하여 그에겐 '장애인의 곁이 신학 하는 자리'가 된다.
말은 쉽고 행하기는 어렵다. 2년차 기자이던 시절, 나는 발달장애인들과 그 부모를 한 차례 취재한 일이 있다. 누군가 부탁한 것이었고 마땅히 필요한 기사이기도 했다. 며칠의 동행 끝에 다룬 기사는 홈페이지에서도 포털사이트에서도 꽤 많이 읽히고 다양한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여러 발달장애인 가족들이 기사의 내용에 공감을 표하고 댓글로 제 이야기들을 다루었는데, 직접 메일을 보내와 추가 기사를 다뤄 달란 이들도 여럿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후로 4년을 더 일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추가 취재도, 보도도 하지 않았다. 며칠의 동행만으로도 버거웠던 때문이었다. 내게 장애란 내 것이 아닌 것이었고, 다가서기 불편한 것이기도 했다. 더 밝고 빛나는 곳을 좇진 않는 대도, 더 어두운 곳으로는 다가서기 꺼려지는 마음. 그와 같은 마음이 그 시절 내게는 분명히 자리했다. 다른 이라고 과연 다를까.
책에 실린 12편의 글은 그대로 12명의 사연이다. 통합 교육을 시키고 싶지만 발달장애인을 가르치고 싶어 하지 않는 교사를 만나 힘들어 하는 부모의 이야기가 나오는 장에선 은근히 추가 취재를 권하는 이들에게 가지 않는 이유를 찾아 대던 내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워진다. 나무젓가락으로 아이 종아리를 한 번 때렸다가 아동학대로 기소돼 2년 넘게 아이들과 강제로 분리돼야 했던 베트남 미혼모의 사연, 돼지 축사에서 일하며 축사 귀퉁이에 딸린 좁은 공간에서 지내던 태국인 노동자가 죽자 그 시신을 인근 야산에 몰래 내버린 농장주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수시로 닥쳐오는 사건 기사 쯤으로 지나쳤던 비슷비슷한 사례들이 묶여 등장하는 이 책으로부터 나는 내가 선박에서 함께 일했던, 또 기자로 취재했던 외국인 노동자들의 열악한 모습 또한 떠올리고 만다.
희망과 긍정의 순간
책엔 나아지고 있으나 여전한 문제들이 많이 담겼다. 모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 또한 여럿 들었다. 한국 사회 가운데 분명히 존재하는 사람들이 우리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맞이하는 문제가 현장감 있게 담겨 있다. 이들 곁에서 함께하며 그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번역하여 소개한 글의 진정성 또한 가득하다.
신앙인이 아닌 나는 이 사회가 방기한 책임에 대해 생각한다. 제도는 마련돼 있되 먼저 다가서지는 않는 신청주의에 입각한 한국 복지 제도를, 현장에서 발생하는 끊임없는 이주노동자 인권침해 문제에도 전면적으로 파악하고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아온 공직자들의 태도를 떠올린다. 실제 가까이서 수차례 목격하기도 했던 문제들을 나와는 다른 자리에 서서 꾸준히 확인해온 이들을 보게 된다. 이주민과 장애인에 대한 책임이 그저 종교인에게만 있을 리 만무하다. 책 가운데 사회의 모습이 얼마 드러나지 않는 건 우리가 마땅한 역할을 밀어두고 있는 때문일지 모르겠다.
오로지 문제만을 담고 있지 않단 건 따로 언급할 만하다. 발달장애인 자조모임은 분명한 성과를 보이는 듯, 참여한 장애인 당사자와 그 가족들이 어떻게든 나아지고 밝아지는 순간들이 선명하다. 이주민을 대상으로 한 초·중·고 검정고시며 한국어능력시험 지원도 꽤 높은 합격률을 기록한다. 난처한 상황에 처한 이들이 관계에 기대고 성장하는 순간들도 없지 않다. 화려하고 빛나지 않아도 나아가고 있음이 확연하다. 그 선한 순환 가운데 저자가 해낸 역할이 크다.
김영준 목사는 책 가운데 다음과 같이 적는다. "발달장애인의 인생은 올라선 높이가 아니라, 헤쳐 온 깊이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어디 이들 뿐일까. 오로지 오르는 높이에만 주목한 나머지 헤쳐 온 깊이에는 눈 돌리지 않는 일이 나 또한 익숙하다. 남을 향해서만이 아니다. 때로는 나 스스로에게도 그러했다. 이루지 못했다고, 올라서지 못했다고 좌절하며 스스로를 가혹하게 채찍질한 이가 어디 나 하나 뿐일까. 만연한 압력과 강박, 또 불안 가운데 놓인 많은 이들이 저의 삶을 오로지 높이의 잣대로만 바라본다. 한 번쯤 이제껏 헤쳐 온 깊이를 돌아보면 어떨까. 이토록 험난한 생을 우리는 살아냈고 아직도 살아 있는 것이다. 나는 이게 꽤 대단한 일이라고 여긴다.
그러고 보면 이 말은 참으로 타당하다.
"Be kind, for everyone you meet is fighting a hard battle(친절하라, 네가 만나는 모두가 힘든 전투를 치르고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우리 중 누군가는 나보다도 훨씬 더 힘든 싸움을 치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