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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봄이다. 올망졸망 매화와 눈부신 목련으로 호사를 누렸는데, 이제 또 벚꽃이 지천이다. 거리마다 골목마다 아련한 연분홍 수채화가 감탄을 자아낸다. 예쁘고 귀하고 향기롭다.
학교도 봄이다. 아이들이 생기를 찾아 밖으로, 운동장으로 들썩들썩 활기 가득이다. 학교가 어렵고 교육현장이 힘들고... 노심초사로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그래도 아이들 덕분에 웃고 활력을 찾는다.
점심을 먹고 교정을 한 바퀴 돌아본다. 우리 학교 운동장 한 켠에는 자그마한 꽃밭이 있는데 그곳의 벚나무와 목련이 유난히 예쁘다. 유난히 키가 큰 벚나무의 꽃이 흐드러질 때, 아이들은 나무 밑에 모여 사진을 찍자고 선생님과 친구들을 이끈다. 30명이 옹기종기 모여 꽃비를 맞으며 하트를 날리는 모습, 이보다 흐뭇한 그림이 따로 없다. 아마 당분간 서로의 프사로 기억될 아름다운 순간이 될 것이다.
운동장을 따라 타원형으로 돌면 멀리 농구하는 아이들과 가까이 축구하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봄 햇살에 그들의 땀방울마저 빛나는 듯하다. 싱그러운 미소, 탄력 있는 웃음소리, 씩씩한 동작과 건강한 발걸음이 땅을 내딛고 튀어 오른다.
아이들은 공을 차면서도 눈인사를 보내고, 드리블에 집중하면서도 아는 체를 한다. 하트를 날리는 녀석에게 '있을 때 잘하지, 작년에!'라고 말하지만 마음은 고마움 가득이다. 비록 지난해 수많은 사연과 실수들이 뒤엉켜 시행착오 연속의 나날이었을지라도 지금 밝게 웃으니 되었다 싶은 마음이다.

▲운동장에서 아이들은 즐겁다. 배구를, 농구를, 축구를...어느 것을 해도 공놀이는 신난다. 봄날에 아이들의 활기가 더해져 햇살 좋은 점심시간이 펼쳐진다. ⓒ 한현숙
초록, 오렌지, 블루 스카이 등 다채로운 체육복 색깔로 가득한 운동장을 뒤로, 교사 가까이 걸어가면 중뜰이 나온다. 이름도 어여쁜 중뜰에는 그만큼 예쁜 아이들이 피구, 배구 등 공놀이에 한창이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운동하는 모습이 우리 학교 자랑이기도 하다.
학교 울타리 따라, 키 큰 모과나무 아래, 구령대 앞 사철나무 옆 등 곳곳에서 아이들의 움직임이 푸르다. 꽃과 같이 해맑은 그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교실 밖 아이들의 표정은 언제나 웃는다. 이런 모습이 교실까지 이어지면 참 좋을 텐데, 쉽지 않다.
중뜰을 지나 실내로 들어오니 피아노 소리가 요란하다. 1층 로비에 자리한 피아노의 선율이 쉬는 시간마다 울리고, 점심시간에는 꽤 긴 연주곡이 이어진다. 머쓱한 표정을 짓던 아이에게 연주를 부탁하니 흔쾌히 자리에 앉아 음악을 들려준다. 젓가락 행진곡이든, 쇼팽의 피아노 곡이든 상관없다. 음악을 즐길 줄 아는 이의 손가락은 늘 춤을 추기 때문이다. 나도 덩달아 리듬을 타며 아이들과 함께 웃어 본다.

▲점심시간 아이들의 다양한 활동 모습, 급식실에서 줄서기, 피아노치기, 보드게임하기! 학교의 봄꽃은 특히 예쁘다. ⓒ 한현숙
급식실에 들어서니 2학년 아이들이 줄지어 서있다. 오늘의 메뉴 중 '브로콜리'가 눈에 띈다. 참깨 소스에 버무린 브로콜리 샐러드가 얼마나 맛있고 영양가 좋은 음식인지 강조하며 '브로콜리 먹는 자가 최고!'를 외치니, 아이들 반응이 제각각이다.
손사래를 치는 아이, 잘 먹겠다고 다짐하는 아이, 얼굴을 찡그리는 아이! 잔반통에 버려지는 브로콜리 같은 채소가 아깝기만 하다. 아이들에게 채소 먹이기는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줄 선 아이들의 뒷모습을 찍어도 되냐고 허락을 구하고 카메라에 담으려고 하니 굳이 뒤돌아 웃음과 하트를 날려 주는 아이들, 귀엽고 순수한 모습이다. 가만히 있으래야 가만히 있을 수 없는 2012년생 아이들, 장난과 짓궂음의 연속 속에서 늘 마음 졸이지만 이런 순간 숨을 돌리는 여유를 찾는다.
수백 명의 아이들이 질서를 지키고, 식사 예절을 배우며, 맛있게 밥을 먹는 모습! 새치기하지 않고 차례를 지키며 반 친구들과 어울려 조화롭게 밥을 먹는 아이들의 모습이 기특하고 칭찬할 만하다.
급식실을 나와 3층에 자리한 2학년 교실을 한 바퀴 돌아본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야외 활동 중이지만 몇몇은 교실에 남아 점심시간을 보낸다. 엎드려 잠을 자는 아이, 과제를 하는 아이, 친구랑 대화하는 아이, 혹시 급식을 걸렀는지 확인해 본다. 맛있게 먹고 왔다며 환하게 웃는 모습에 마음을 놓는다.
삼삼오오 모여 밖에서 공놀이를 하듯 여기는 보드 게임이 한창이다. 교실바닥에 자리를 잡고 사뭇 진지한 표정과 시선으로 게임에 참여 중이다. 나도 고개를 얹어 관심을 드러내나 게임에 대해 잘 모르겠다. 아무튼 친구들끼리 사이좋게 어울리는 모습은 정적이든, 동적이든 참 예쁘다.

▲점심시간 운동장과 중뜰에 나온 아이들, 꽃놀이, 배구, 피구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뛰고 달리다 보면 안타깝게 다치기도 하지만 여전히 활동적이다. ⓒ 한현숙
반마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아이들도 꽤 있다. 친한 친구끼리 어울릴 수 있도록 학년초 반 배정에 신경 썼으나 우울감, 소통의 문제, 취향의 특별함, 소심함, 아픔과 고민 등으로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꽤 있다. 환한 운동장에서 마음껏 달리고, 소리라도 지르면 좋을 텐데, 안으로 안으로 침잠하는 듯한 모습을 보면 참 안타깝다.
부모님, 전문 상담가, 의료인 등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이름을 부르면 대답을 하고,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이고,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아이들이 학교에 있다. 무엇보다 본인의 의지가 중요한데, 이 의지를 다지는 일이 좀처럼 어려우니 어찌할지 모를 때는 교사로서 무력감에 빠진다.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맞아 꽃을 피운 저 나무들처럼 우리 아이들도 그러하리라 믿는다. 불안하고 불완전한 이 시기를 잘 이겨내 꽃을 피워내 꿈을 이룰 것임은 당연하다. 가지가 부러지고, 비바람이 몰아쳐도 지금 저리 살아나 환하게 봄의 향연을 펼치고 있지 않느냐!
예전에 개나리, 진달래 밖에 몰랐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새 벚꽃, 복사꽃, 산수유, 매화, 라일락, 이팝나무 등 수많은 꽃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아이들은 자라서 제각각 꽃향기 풍기는 나무가 될 것이다. 각자의 모습으로, 자기만의 향기 품으며 봄의 향연을 펼치며 꽃대궐을 이룰 것을 믿는다.
그래서 봄이 좋다. 아이들이 있는 학교가 좋다. 자라나는 새싹이 곁에 있어 나도 늘 푸르른 듯하다. 교사가 느끼는 가장 큰 보람이 아닐까 싶다. 학교, 선생님, 아이들이 모여 아름다운 봄날을 만들고 있다. 이 향기가 바래지 않고 오래 지속되기를 바란다. 아이들과 많이 웃으려 노력하며 봄꽃을 계속 즐겨야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채택 후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아이들의 사진 게재는 허락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