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2026년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 합의문에 서명한 뒤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이른바 김어준 방송으로 일컬어졌던 TBS를 지원하는 49억 원 등 이런 예산은 이번 전쟁 추경의 목적에 전혀 맞지 않는 대표적인 사업이다." - 장동혁 국민의힘 당 대표
"이번 추경의 성격에 TBS 예산은 좀 맞지 않다, 이렇게 당에서 그 뜻을 좀 모았다." -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틈만 나면 '내란 세력'이라 지칭하며 악수조차 꺼리던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문제 제기를 웬일로 즉각 수용했다. 그렇게 49억 5000만 원의 예산이 사라졌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이 예산을 통과시킨 바로 그 시각이었다.
결과적으로 한 달 평균 1300만 원 가량의 월급과 세비를 수령하는 국회의원들이 19개월째 월급도 받지 못하는 TBS 노동자들의 구명줄마저 끊어버린 셈이 됐다.
색깔론까지 들고 나오며 본인들에게 비판적인 언론사 하나를 철저히 망가뜨린 국민의힘은 그렇다치고, 최소한의 연명을 위한 예산 삭감에 야합한 민주당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아니, 입법부 절대 다수를 쥐고 있는 '여당'의 동조는 사실상 노동자의 생존권을 야당과의 거래용 카드로 써먹었다는 점에서 죄질이 더 나쁘다.
전체 추경에서 0.02%도 안 되는데... 정청래 한마디에 사라진 TBS 예산

▲최고위 주재한 정청래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 남소연
지난 10일, 국회는 2026년도 첫 번째 추가경정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소위 '전쟁 추경'의 규모는 총 26조 2000억 원으로, 재석 244명에 찬성 214명, 반대 11명, 기권 19명으로 가결됐다. 그리고 이 추경안은 바로 다음날 임시 국무회의를 통과하며 집행을 앞두고 있다.
이번 추경안은 정부가 제출한 원안의 총액 규모를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러면서 양당의 요구와 협상에 따라 가감이 이뤄졌다. 그 과정에서 49억 5000만 원의 TBS 지원 예산이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전체 추경의 약 0.0189%밖에 안 되는 규모의 예산이었는데 말이다.
지난 7일, 국회 과방위 여당 간사를 맡고 있는 김현 민주당 의원은 국민의힘이 다수를 점한 서울시의회의 조례 폐지 이후 TBS가 맞이한 현실을 짚었다. 김 의원은 "구성원들은 19개월째 임금을 못 받고 있다"라며 "적어도 19개월째 고통을 당하고 있는 노동자에게 국가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TBS 지원 예산의 필요성을 지지한 이주희 민주당 의원도 "수도권 시민의 알 권리와 안전망을 지키기 위한" 차원이라고 강조했다. 재난 등 위기 상황을 대비해 교통방송 본연의 목적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게 하여 시민의 안전을 지키겠다는 취지라는 것이다.
예산의 세부 내역을 봐도 외국어 라디오 방송 지원(27억 2100만 원), 교통방송 지원(22억 2900만 원)으로 나뉘어 있었다. 기존 프로그램 '제작비'를 지원하는 차원이 아니라 인건비, 임차료, 장비 유지보수비 등 필요 최소한의 '운영 지원'에 초점을 맞췄다.
김현 의원은 "운영 방식과 구조 개편 논의는 별개로 이어가더라도 공영방송으로서 최소한의 역할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마중물 성격의 지원은 필요하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간신히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은 이 예산은 정청래 대표의 '한마디'에 허공으로 사라졌다.
생활체육 지원·암표 포상 예산도 살아남았는데...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진성준 예결위원장이 정부가 제출한 '26.2조' 추가경정예산을 통과시키고 있다. ⓒ 연합뉴스
TBS 지원 예산은 재난 상황시 시민의 안전 확보와 방송의 공공성 회복을 위한 구명줄이었고 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한 민생 예산의 성격이 있었다. 그런데도 '전쟁 추경'과 성격이 맞지 않다며 삭제됐다. 그렇다면 26조 2000억 원 추경의 나머지는 정말 온전히 다 '전쟁 추경'에 맞는 예산들이었을까?
정청래 대표가 직접 '투자 대비 효과가 크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던 외국인 관광객 '짐 캐리' 예산을 굳이 다시 언급하지는 않겠다. 외국인 관광객들의 짐을 공항까지 대신 실어주어 쇼핑을 더 용이하게 하면 경제에 더 활력을 줄 수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혐중' 정서를 자극하며 맹공을 펼쳤지만, 민주당은 TBS 지원 예산의 6배가 넘는 금액을 방어하는 데 성공했다.
이밖에도 유소년 스포츠기반을 구축하겠다는 명분으로 생활체육 프로그램 지원 예산이 95억 원 증액됐다. 동계종목 훈련시설을 조성하기 위한 우수선수 양성지원에 30억 원이 증액됐다. 미술관 지역순회 전시 지원을 위해 박물관·미술관 진흥지원에는 20억 원이 추가됐다. 보훈문화조성 사업의 일환인 '김구 탄생 150주년 콘텐츠 제작 및 지역 확산 문화행사' 예산도 6억 원 늘어났다.
아예 없었는데 새롭게 추가된 사업도 있다. 음악 및 대중문화산업 육성을 위한 '공연 암표 신고포상금'에 5억 원, '스포츠 분야 암표 신고센터 운영'에 5억 원 등 총 10억 원의 암표 관련 예산도 국회 심의 단계에서 갑자기 생겨났다.
모두 다 필요한 예산일 것이다. 입법부와 행정부가 필요한 곳에 돈을 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이런 성격의 예산들이 무사히 증액되거나 추가된 데 비해 TBS 지원 예산이 삭감된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심지어 이처럼 TBS 지원이 발목이 잡힌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말, 국회 과방위 소속 여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방송통신발전기금'을 긴급하게 투입해 TBS의 숨통을 틔워주자는 논의가 나왔다. 2026년도 본예산 심사 과정에서, 국회 과방위는 TBS 정상화를 위해 74억 8000만 원을 신규로 편성하는 안을 의결했으나 기획재정부의 반대와 당 지도부의 소극적인 대처로 무산됐다.
계속 절망 속에 있는 것보다, 잠시나마 보이는 듯했던 희망이 꺾일 때의 고통이 더 크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헌법적 가치를 거래 잔돈으로 바꾼 날"

▲서울특별시 미디어재단 TBS(아래 TBS)의 위기 상황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꺼지지 않는 스튜디오: 마지막 불빛을 지키는 사람들>의 상영회가 3월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 박수림
스튜디오의 불이 꺼지지 않게 하기 위해, TBS 노동자들은 19개월째 월급도 받지 못한 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카드 빚까지 '영끌'해다가 그저 버티면서도 일터를 지키기 위해 발버둥 치는 방송 노동자들의 절규를 집권 여당 지도부는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야당이 TBS 예산 지원 중단의 이유로 시도때도 없이 소환하는 바로 그 '김어준 방송'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던 게 정청래 현 민주당 대표인데 말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지난 7일 성명을 통해 "'전쟁 추경'의 시급성과 국민의힘의 반대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TBS 정상화'에 대한 정부여당의 의지를 강하게 의심할 수밖에 없다"라며 "강력한 유감"을 표했다.
언론노조는 "TBS 지원 예산은 결코 특별하고 예외적인 지원이 아니다"라며 "방통위로부터 허가받은 주파수 95.1MHz(TBS FM)와 101.3MHz(TBS eFM)라는 공공재가 시민들을 위한 공적 역할을 이어가기 위한 말 그대로 최소한의 조치"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무임금 속에서도 구성원들은 교대로 스튜디오를 지키고, 출연진들은 재능 기부로, 청취자들은 물품 기부로, 방송 중단만은 막자고 함께 버티고 있다"라며 "이런 상황에서 TBS 구성원들에게 지난 연말 예산 전액 삭감에 이어 또다시 추경 편성 좌절의 고통을 견뎌내라 하는 것은 너무도 가혹하지 않은가"라고 꼬집었다.
전국언론노조 TBS지부의 송지연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8일 본인의 SNS에 "헌법적 가치를 거래의 잔돈으로 바꾼 날"이라며 "상임위의 결단이 몇 시간 만에 뒤집힌 이 장면은, 단순한 의견 차이를 넘어 당내 의사결정 구조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정권이 바뀌면 최소한의 공공 시스템은 복원될 것이라 믿었던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추경 성격에 맞지 않는다'는 말 한마디"라며 "이건 정책 판단이라기보다, 책임을 유보한 결정에 가깝다. '전쟁 추경'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벼랑 끝에서 생존을 버티고 있는 공공 서비스와 노동을 외면하는 것이 과연 설득 가능한 선택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이유로 공공성과 언론의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후순위로 밀어낸 결정"이라는 지적에, 정청래 대표는 뭐라고 답할 것인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TBS 지원 예산 삭감에 손을 잡은 건 협치가 아니라 야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