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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4.10 13:50최종 업데이트 26.04.10 13:50

개똥 밟은 여섯 살 손녀의 기막힌 한마디

방전된 배터리가 가득 차오르듯... 할아버지를 파안대소하게 만드는 활력소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본능적으로 인간은 얽매임을 싫어하고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존재라 할 수 있으리라. 인간의 일원인 나도 역시 그러하다. 30년 넘는 교직 생활 동안, 얽매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꿈꾸었다. 그런데 막상 퇴직을 코앞에 두자 나에게 주어질 그 거대한 자유로움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런데 그 막막함은 기우에 불과했다.

퇴직을 하면서 손녀딸을 돌보아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손녀딸이 우리 나이로 네 살 된 때였다. 딸과 사위 모두 육아 휴직을 다 쓴 상황이었고 딸네 부부 모두 직장이 멀어 새벽 6시 30분 쯤에는 출근길에 나서야 했다. 아이 돌보는 일을 맡을 사람을 구하기 매우 어려운 지경이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우리 부부가 손녀딸을 돌보아 주기로 한 것이다. 손녀딸 돌보는 일을 고민한 가장 큰 까닭은, 우리 부부가 생활 근거지를 옮겨야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30년 넘게 살아온 삶 터를 떠나 딸네 집 근처로 이사한 다음 손녀딸을 돌보기 시작했다.

손녀딸을 돌본 지 만 2년이 지났다. 은퇴 후의 자유로운 삶은 언감생심이었다. 새벽 5시에는 일어나야 여러 준비를 한 다음 딸네 집에 오전 6시 30분까지 도착할 수 있었고, 오후 4시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손녀딸이 다니는 어린이집에 도착해야 하원하는 손녀딸을 맞이할 수 있었다. 내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은, 손녀딸이 등원하는 오전 9시 30분부터 하원하는 오후 4시까지였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도서관에서 영어 회화를 공부하고 책 읽고 글 쓰며 시간을 보냈다. 은퇴 후 나의 일과를 알게 된 어떤 이는, 삶이 너무 무미건조하지 않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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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관점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런데 나는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은퇴 전 나의 생활도 본질적으로는 은퇴 후 나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30년 넘게 한 나의 교직 생활 하루 일과는 대략 다음과 같았다. 오전 8시 30분까지 출근해서 오후 4시 30분에 퇴근했다. 근무하는 동안 수업을 위해 자료 찾고 책 읽고 틈 나면 짬짬이 글을 썼다. 물론 은퇴 전의 삶이 좀 더 긴장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건 사실이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리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은퇴 후 삶이 무미건조하겠다는 말에 동의하기는 매우 어렵다. 물론 무미건조함에 대한 판단은 주관적 요소가 강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은퇴 후 나의 삶에서 무미건조함을 날려버리는 핵심 요소 중 하나는 '손녀딸 돌보기'이다. 손녀딸이 어린이집에 가니 아침에 2~3시간, 오후에 2~3시간만 돌보면 되지만 그게 생각만큼 녹록지 않았다. 무미건조하기는커녕 그 시간은 매우 역동적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여섯살짜리 손녀딸이 뛰기 시작하면 따라잡기가 만만치 않다. 손녀딸이 갑자기 짜증을 내면 그 짜증을 가라앉히느라 쩔쩔매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떤 때는 탈진 일보 직전까지 가기도 한다. 그러니 어찌 삶이 무미건조할 수 있겠는가.

 삶에 활력소를 불러일으키는 손녀의 말들.
삶에 활력소를 불러일으키는 손녀의 말들. ⓒ jinhan_photo on Unsplash

또 손녀딸이 툭툭 내뱉는 말이 무미건조함을 날려버리는 수준을 넘어 나의 도파민을 폭발시켜 삶에 활력소를 불어넣는다. 며칠 전이었다. 손녀딸이 어린이집 하원 후 어린이집 옆 놀이터에서 놀다 가겠다고 했다. 놀이터에 갔는데 친구들이 없자 손녀딸은 좀 따분한 표정을 짓더니 노란 민들레 꽃을 따겠다며 풀밭으로 총총 뛰어들어 갔다. 그러다가 손녀딸이 개똥을 밟았다. 손녀딸은 "어떤 나쁜 강아지가 똥을 누고 갔지?"라고 종알거리더니 곧, "아니, 강아지가 나쁜 게 아니지. 어느 나쁜 강아지 주인이 강아지 똥도 안 치우고 그냥 갔지?"라고 고쳐 말했다.

백 번 옳은 말이었다. 똥 눈 강아지가 문제이겠는가. 치우지 않고 그냥 간 주인이 문제이지. 나를 더욱 파안대소하게 한 것은 손녀딸이 이어서 한 말이었다. 손녀딸은 "그런데 할아버지, 강아지 똥이 꽃에게 거름이 되는 거 알아? 꽃이 이렇게 많이 피어 있는 걸 보니 강아지하고 고양이가 여기 와서 똥을 엄청 많이 쌌나 봐"라고 말했다. 개똥을 밟은 여섯 살짜리가 꼬마 아이가 문득 무언가 깨달은 듯 이렇게 말하는 걸 듣고 나서 유쾌한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렇듯 손녀딸 돌보기는 자칫 무미건조해질 수 있는 은퇴 생활의 활력소라 할 수 있다. 여섯 살배기 손녀딸이 가끔 툭툭 내뱉는 엉뚱발랄한 말을 듣고 파안대소할 때마다 방전된 배터리가 가득 차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손녀딸이 중학생이 되는 8년 후까지는 손녀딸을 돌보아 주어야 할 듯하다.

내 나이 일흔셋이 된다. 나의 삶은, 최소한 일흔셋까지는 무미건조해질 틈이 없을 터이다. 그 이후의 삶에서 무미건조함을 날려버릴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지금 당장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는 않지만 나에게는 8년이라는 꽤 긴 시간이 주어져 있다. 그동안 썩 괜찮은 수가 떠오르리라 생각한다. 혹시 괜찮은 수가 떠오르지 않은들 어떠랴. 그 이후의 삶은, 좀 무미건조하게 살아도 크게 나쁘지는 않으리라. 반 세기 넘게 무미건조하지 않은 삶을 살았으니 말이다. 나에게 다가오는 삶을 있는 그대로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방법 중 하나 아니겠는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


#손녀딸#힘#얽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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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게 지방 소도시에서 교사로 재직하다 퇴직. 2년을 제외하고 일반계고등학교에서 근무. 교사들이 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학교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있음. 과연 그런 날이 올 수 있을지 몹시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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