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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유관순, 그리고 이어진 수많은 독립운동가들. 그들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형태가 지금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런 숭고한 사람들의 희생과 아픔 위에 서있다. 하지만 희생과 헌신에 관한 많은 이야기는 가려져있다. 그들의 숭고한 가치는 자본과 욕망이라는 프레임 밖에서 슬픈 표정을 짓고 있을지도 모른다. 1910년 3월 26일 형장의 이슬로 세상을 떠난 안중근의 나이는 불과 서른에 불과했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갖은 고초를 받았던 유관순은 16세의 나이에도 군인들이 둘러싼 무서운 재판장에서 할 말을 다했다.

▲루앙의 도심16세기에 만들어진 골목. 거리에서 사람들을 보고 있는 황금 시계. ⓒ 노태헌
선열들의 희생. 지금도 어디선가 묵묵히 선의를 가지고 자신의 일에 하루의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우리 사회 온기를 유지한다. 이런 저런 생각 속에서 모처럼 휴가로 지난 4일, 프랑스 루앙이라는 작은 도시로 향했다. 영국 남부에서 프랑스 칼레 지역으로 향하는 길. 자동차를 통째로 실은 채 이동하는 기차. 포크스톤에서 출국과 입국 절차를 동시에 마치면 사람은 열차 속 차 안에 앉아 있고 기차는 해저의 어둠 속을 통과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앙숙이던 두 나라(프랑스와 영국)가 편의와 교류를 위해 이렇게 편한 해저길을 터놓았다. 그리고 삼십여 분 어둠의 끝에 빛이 내릴때 쯤 자동차의 기어를 넣고 기차를 빠져나가면 이미 프랑스다. 거대한 국경은 이렇게 쉽게 넘을 수 있는데, 사람의 마음이나 시간 속에 새겨졌던 사건들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 아이러니. 루앙에 도착하니 비가 막 그친 오후였다.
프랑스 노르망디의 도시 루앙의 도심에는 천년이 넘은 아치와 황금 시계가 있다.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만들어진 시계는 지금까지 정확한 시간을 가리키고 있고 사람들은 루앙의 대성당과 시계를 배경으로 움직이느라 분주하다. 시민들도 한가롭게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유럽 대부분의 도시가 그렇듯 일상이 자연스레 수백 년의 시간 위에 놓인다.

▲루앙 대성당 외관성당앞에 서서 ⓒ 노태헌

▲루앙 대성당경건한 장소에서 ⓒ 노태헌
루앙은 중세를 간직하고 있는 도시이자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도시다. 도심 중심에 서있는 루앙 대성당은 그 상징으로 레이먼드 카버가 단편소설 속에서 묘사했던 대성당처럼 고딕 양식의 첨탑과 섬세한 조각들이 눈을 홀린다. 성인들의 조각 사이로 빛이 쏟아진다. 클로드 모네가 루앙의 대성당을 방문하고 여러 작품을 남겼다. 빛이 바뀔 때 달라지는 신비한 분위기 속에서 다른 차원의 시간의 문이 열린다. 과거로 미래로. 성스러운 장소 안에서 말은 불필요하다. 하늘에 가장 가까운 장소이자 신의 천계와 지상의 경계 사이.
600년 전 루앙의 대성당 인근에서 재판이 열렸다. 잔다르크. 15세기 초 프랑스와 영국의 백년전쟁 속에서 소녀였던 잔 다르크는 프랑스 편에서서 전쟁에 참여했고, 오를레앙 전투에서 프랑스의 상징적 존재가 된다. 한 무리에겐 영웅이자 동시에 다른 무리에게 두려운 존재였던 잔 다르크는 결국 영국군에게 붙잡혀 루앙으로 끌려와 교회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다. 죄목은 '이단'. 종교재판 결과 1431년 5월 30일 잔 다르크는 루앙의 광장의 불 속에서 생명을 다한다. 그녀의 나이 열아홉 때였다.

▲잔다르크루앙은 잔다르크의 도시다. 앞으로도. ⓒ 노태헌
시간이 지난 후 프랑스에서 그녀는 성녀로 되살아나 구국성인이 되었고, 결국 가톨릭 교회에서 성인으로 시성된다. 살아 있을 때는 이단이었지만 죽은 뒤에는 영웅이 된 셈이다. 루앙시 미술관에 가면 잔 다르크를 그린 그림들이 꽤 있다. 화형대 앞에 단호하게 서 있는 그녀, 어떤 그림에서는 갑옷을 입은 소녀 장군처럼 움직인다. 역사가 사건을 기록한다면, 예술은 순간의 단말마로 의미를 재생성하며 그곳에서 문신이 된다.
유럽 도시들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오래된 시간 속의 장면들을 되새기며 소중하게 보존하기 때문일 것이다. 루앙에서 대성당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역사적 장소에서 예배가 계속해서 열리고 있다. 16세기 시계는 그때도 지금도 시간을 가리키고 있으며 수백 년 된 골목이 여전히 일상의 거리로서 지나간다. 과거는 박물관에 있지 않고 현재 속에 숨 쉰다.

▲루앙 시립미술관샤갈의 그림이 미술관 관람객을 맞아준다. ⓒ 노태헌
한국은 전쟁과 급속한 산업화를 겪으며 도시가 빠르게 성장했다. 오래된 건물은 철거되고 새로운 빌딩이나 상가, 아파트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재개발이나 이익에 혹하는 시선을 거두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나 사람, 나무, 생명 그리고 소중한 역사의 현장이나 우리를 있게 하는 독립운동가의 혼같은 것이 우리 일상 주위에 베어 우리를 지켜주고 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