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과 수도권 외에 처음으로 부산 등 영남권에서도 혼인평등소송이 진행된다. 8일 부산가정법원 앞에서 50대 선우비(가명)씨와 60대 오수(가명)씨 등 동성 부부의 혼인을 인정해달라는 요구를 담은 성소수자, 인권, 시민사회단체의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김보성
"우리는 오래전부터 서로의 가족이었어요. 함께 밥을 먹고, 병원을 가고, 서로의 부모와 가족을 만나며 일상을 함께 살았죠. 누가 봐도 부부이지만, 여전히 법은 우리를 아는 사람 정도로 취급합니다."
8일 부산가정법원 앞을 찾아 이른바 혼인평등소송을 제기한 성소수자 50대 선우비(가명)씨와 60대 오수(가명)씨는 답답한 마음을 참으며 이렇게 말했다. 각각 출판업 종사자, 은퇴교수인 두 사람은 지난해에야 미국의 괌에서 뒤늦은 결혼식을 올렸다. 같이 오랜 기간 삶을 꾸려왔지만, 결혼이 자신들의 삶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한 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가족이지만, 법은 아는 사람 정도로 취급"
동성혼 합법화가 국제적 추세임에도 대한민국 현행법과 현실은 이들에게 녹록지 않다. 구청의 문을 두드린 이들의 혼인신고서는 지난해 12월 곧바로 거부됐다. 현장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난 선씨는 실제 부부사이인데도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문제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당장 동반자가 아플 경우 보호자가 될 수 있을지, 수술 동의는 가능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혼인평등소송은 특별한 권리를 요구하는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관계를 그대로 인정해달라는 의미예요. 법원이 논쟁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봐주면 좋겠어요."
두 사람은 자신들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도 과거보다 나아지길 염원했다. 그 첫 단추가 이번 소송, 즉 법원의 확인 절차다. 비교적 나이가 적지 않은 이 부부는 비슷한 처지의 젊은 사람들에게도 힘이 됐으면 하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 이날 가정법원 방문이 그 시작이다.

▲서울과 수도권 외에 처음으로 부산 등 영남권에서도 혼인평등소송이 진행된다. 8일 부산가정법원 앞에서 50대 선우비(가명)씨와 60대 오수(가명)씨 등 동성 부부의 혼인을 인정해달라는 요구를 담은 성소수자, 인권, 시민사회단체의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김보성
선씨와 오씨의 이러한 결심에 여러 단체는 공개적으로 응원을 보내는 중이다. 부산 퀴어문화협동조합 홍예당, 한국성소수자인권단체연합 무지개행동, 부산대학교 성소수자 중앙동아리 케세라, 부산인권플랫폼 파랑 등 10여 개 단체는 기자회견으로 이들의 소송전에 불을 지폈다.
홍예당의 김수환 활동가는 "동성 배우자와 함께하는 성소수자 시민들은 여느 부부와 마찬가지로 서로를 돌보며 동고동락하고 있지만, 국가는 이들을 부부·가족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이번 소송은 그 권리를 찾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법에 명시된 평등권, 동성 부부에게도 적용돼야
평등권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차별금지법제정부산연대의 정선욱 활동가는 헌법상 누구든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며 법적 대응에 의미를 부여했다. 정 활동가는 "이들은 법에 명시된 평등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스스로 가족을 결정하고 삶을 형성할 수 있는 자유를 침해받고 있다"라며 구시대적 적용을 비판했다.
수도권 이외의 지역에서는 처음 진행되는 소송이란 점도 눈길을 끈다. 선씨·오씨 부부뿐만이 아니라 대구와 울산에서도 두 쌍의 부부가 참여한다. 대구에서는 임아현(30대)·최진아(20대)씨가, 울산에서는 20대 이현중·오승재씨가 소송에 합류했다. 이들은 서로 동시에 전자소송 방식을 통해 다툼을 공식화했다.

▲서울과 수도권 외에 처음으로 부산 등 영남권에서도 혼인평등소송이 진행된다. 8일 부산가정법원 앞에서 50대 선우비(가명)씨와 60대 오수(가명)씨 등 동성 부부의 혼인을 인정해달라는 요구를 담은 성소수자, 인권, 시민사회단체의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김보성
혼인평등소송은 엄밀히 말하면 동성 부부의 혼인신고를 수리하지 않는 처분에 맞대응하는 성격을 띤다. 민법 812조는 '혼인은 가족관계법에 따라 신고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행정기관은 이성 간의 결합으로 한정해 동성 부부 신고 접수를 거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동성 부부들은 가정법원에 직접 불수리 불복 신청과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게 된다. 민법상 부부에 자신들을 포함해 해석해야 한다는 게 핵심인데, 만약 법원이 이를 각하·기각한다면 헌법재판소 헌법소원 절차를 밟는다.
한국에서는 이미 서울,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11쌍의 사례가 있다. 이들 동성 부부는 민법상 동성혼을 배제할 합리적 사유가 없고, 사회적 불승인이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 차별이라며 똑같은 소송에 나섰다. 하지만 서울과 인천의 법원은 이 가운데 9건을 각하·기각했고, 결국 헌법소원 청구 단계로 이어졌다.
선씨와 오씨 부부를 돕는 법무법인 새곁의 하준영 변호사는 동성혼 소송 말고 혼인평등 소송으로 불러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이번 소송은 법이 혼인을 이성간 결합만으로 정하거나 성소수자를 차별할 수 없음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혼인평등 소송으로 부른다"라고 말했다. 송이원 모두의결혼 활동가도 "지역의 판사들이 사법적 양심과 전문가로서 진일보한 판단을 내려주길 기대한다"라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