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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영화제를 서른 개쯤 다녔다. 큰 곳과 작은 곳, 기사로 낸 곳과 내지 않은 곳, 전국 각지 작은 도시까지 영화제를 훑고 다녔다. 대부분은 동료 비평가들이 걸음 하지 않는 곳들이었다. 일을 맡았느냐, 청탁받았느냐는 물음을 수시로 받았다. 유명하거나 인맥 좋은 이들이 아니라면 영화제서 자리를 얻기 어렵단 걸 묻는 이들도 나도 모르지 않다. 잡지 또한 말라가는 이 시대에 외부 청탁 또한 마찬가지.

나 또한 일을 받은 건 서넛이 고작이다. 나머지 수십 곳은 그저 가는 것이었다. 힘이 남는구나,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묻는 이가 많았다. 일류 비평가조차 걸음 하지 않는 곳에 무엇 하러 삼류가 가느냐고.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자리 얻지 못한 비평가는 걸음 해야 하지 않느냐고, 그렇게 답하곤 했다.

올해는 그리 다니지 않겠다 생각했다. 많은 영화제를 돌아보며 한국 여러 영화제가 양과 질 모두에서 대동소이했기 때문이다. 영화제 공식행사뿐 아니라, 행사 뒤 갖는 영화인끼리 모임 자리마저도 비슷비슷했다. 여기서 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걸 저기서도 했다. 상영작 면면은 더욱 그러했다. 같은 작품이 대여섯 개 영화제를 도는 게 당연하다고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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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무려 천 편이 훌쩍 넘는 지원을 받는다는 영화제가 여럿이다. 이들이 상영한 수십 편, 적게는 고작 십수 편의 영화가 이토록 겹친다면 문턱을 넘지 못한 수백 편의 영화는 어떻게 되는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름 석 자 알리기 어렵다는 동료 비평가들의 푸념이 오로지 비평의 영역에만 한정된 것일까. 궁금해졌다.

미분류영화제, 정말이지 듣도 보도 못한 영화제가 열린단 게시글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내게 닿았다. 선택받지 못한 영화들을 위한 영화제라 했다. 비슷한 기획이 한국에 전혀 없진 않지만, 분류조차 않겠다니 그게 가능한 걸까.

세상엔 내가 아는 영화제와 알지 못하는 영화제가 있다. 나보다 경력이 십수 년쯤 많은 비평가들 앞에서 이 영화제를 만든 이와 약속을 잡았다 하니, "자네는 아직 젊구나"하는 답부터 돌아왔다. 젊어서가 아니라 감이 좋아서일 수도 있지 않느냐고, 어쩌면 진짜로 새로운 흐름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기성 영화제가 흘려보내고 있는 가능성이, 감각이, 경향이 이곳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런 답을 하려다 말았다.

 미분류영화제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배우 겸 감독 차경찬.
미분류영화제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배우 겸 감독 차경찬. ⓒ 김성호

없던 영화제를 만들기로 한 까닭

7일 오후 서울 강동구 한 카페, 약속한 장소에 나온 사람은 5년 차 배우 차경찬이었다. 연극무대와 영화, 웹드라마며 작은 영상에 이르기까지 배역의 크기를 마다하지 않고 활약 중인 갓 서른 된 젊은 배우다. 콘텐츠진흥원 지원을 받아 직접 단편영화 연출도 했다는 그가 제가 느끼는 갈증을 동료 영화인들 또한 갖고 있으리란 마음으로 직접 상영의 창구를 하나 열어보기로 결심했다. 일단 서울영화센터에서 지원하는 무료 대관사업을 통해 상영관부터 잡았다. 출품작은 단 한 편도 없는 상태였으나 일단 상영관이 잡히면 다른 것들 또한 차차 해결되리라 믿었다.

기획부터 상영관 대관까지 이뤄지니 다음은 홍보였다. SNS를 통한 홍보가 먹혀들었다. 기대 이상의 관심이 쏠렸다. 공모전에서 떨어졌거나, 습작으로 남거나, 사회에 반항하듯 하고 싶었던 말들이 담긴 영화. 기존 창구의 일방적 분류로부터 제 자리를 얻지 못한 영화에 기회를 주겠다는 미분류영화제의 포부에 많은 관심이 모였다.

"일단 작품이 생각보다 훨씬 많이 들어왔어요. 대관은 두 시간 정도가 고작인데 들어온 작품을 모두 상영할 수가 없었죠. 장편영화까지 출품됐는데 어쩔 수 없이 단편 위주로만 틀게 됐어요. 혼자서 뭘 틀어야 할지를 정할 수가 없어 교수님들이나 주변 영화계 분들 도움도 구했죠. 그래서 단 한 장면, 한순간이라도 특별함이 있는 영화들, 다른 영화제에선 보기 힘든 영화들을 고르려고 노력했어요. 아, 이런 느낌이구나. 그런 특별한 감각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영화가 상영된다고 자부합니다."

영화를 분류하지 않는 게 가능한 일일까. 출품된 수많은 작품 가운데 상영할 작품을 가려내는 일이 하나의 분류작업일 밖에 없다.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운영 중인 영화제만 200여 개가 넘는 상황에서 등록되지 않은 영화제까지 더하면 수백 곳을 족히 헤아릴 테다. 이들 영화제가 모두 저마다의 기준으로 출품작을 가려낸 결과가 오늘의 한국 영화 생태계다.

미분류영화제 포스터
미분류영화제포스터 ⓒ 미분류영화제

기대 못한 매진에 현장 입석표까지

미분류영화제는 어떻게 차별성을 확보할까. '미분류'란 포부와 달리 어찌할 수 없이 구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어찌 타개해 나갈 수 있을까. 오늘의 관객 앞에 미분류영화제를 즐겨야 할 유효한 이유를 증명해 낼 수 있을까. 지난 3년간 찾은 수십 곳 영화제 상영관 가운데선 텅텅 빈 곳도 수두룩했는데, 이 영화제라고 다를까.

"예매는 벌써 매진됐어요. 그래도 계속 문의하는 분들이 계셔서 현장 상황을 살펴 입석을 받아야 할지를 고민 중입니다. 일단 상영작 감독부터 스태프, 관계자들, 또 지인들도 많은 것 같아요. 일단 자리는 다 나갔고 이분들에게 어떤 감상을, 아 이런 영화가 있구나 하는 느낌을 확실히 주면 좋겠어요.

제약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몇 편을 추려 상영하게 됐습니다. 그래도 일단 출품해 주신 분들은 다음 2회째 영화제에서 소개하려고 해요. 그 방식을 똑같이 상영관에서 할지, 아니면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할지 고민 중입니다. 분류가 아니라 미분류란 정체성에 충실하게 모든 영화를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을 마련하려고 해요."

영화제, 그것도 없던 영화제를 마련한다는 건 하나부터 열까지 손이 가는 일이다. 전에 없는 기획으로부터 출발해 다른 이의 관심을 이끌고 공통된 갈증의 지점을 찾아 해소할 수 있는 방식도 마련해야 한다.

차경찬은 '미분류 영화제'를 통해 소개하는 작품이 다른 영화제에 의해 '선택받지 못한 영화'가 아니라고 말한다. '아직 분류되지 않은 영화'일 뿐이라는 것이다. "기존 영화제의 분류 기준이나 공모 과정 속에서 상영 기회를 얻지 못했던 작품들을 다시 발견하고 소개하기 위해 기획했다"며 "장르, 형식, 러닝타임, 언어, 제작 규모를 묻지 않고 관객을 만나지 못한 영화에게 자리를 마련해주는 기본에 충실하겠다"고 선언한다.

미분류영화제 상영시간표
미분류영화제상영시간표 ⓒ 미분류영화제

초대받지 못한 자들의 오늘

4월 10일, 저녁 6시부터 진행되는 단 몇 시간의 상영이지만 나름 알차게 꾸렸다. 두 개의 짧은 섹션으로 구분된 영화제는 '아직 미분류'와 '발견의 순간'이라는 이름으로 나뉘어 저를 찾은 관객들과 만난다. "장르적 규칙을 벗어나거나 형식의 경계를 허무는 영화는 첫 섹션에, 완성되었으나 관객과 만날 기회를 얻지 못했던 아까운 작품들을 두 번째 섹션에 넣어 구성했다"고 설명한다. 두 개 섹션 외에도 초청작 성격으로 제가 만든 단편까지 포함해 상영한다. 영화제에 힘을 보탠 이들이 나서준 덕분에 모든 작품에 관객과의 대화(GV)까지 진행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차경찬과 만난 자리에서 19세기 프랑스 미술계를 뒤집은 사건에 대해 말했다. 당대 미술계 권위 있는 행사였던 '파리살롱전시회'와 그 바깥에서 이뤄진 초대받지 못한 이들의 전시에 대한 이야기다. 1874년 4월 15일, 당대 명사이자 사진가로 유명했던 '나다르(가스파르 펠릭스 투르나숑)'의 스튜디오에서 열린 전시가 먼저였고, 보름 뒤 그해 파리 살롱전이 열렸다. 파리 살롱전은 윌리엄 아돌프 부궤로 등 당대 최고 화가들이 자리하기로 되어 있었다.

역사는 초대받지 못한 자들이 승자였음을 기록한다. 클로드 모네, 카미유 피사로, 폴 세잔, 에두아르 마네, 에드가 드가, 오귀스트 르누아르, 알프레드 시슬레, 베르트 모리조 등 31명의 작가의 작품들은 그대로 인상파 사조가 미술사 전면에 등장했음을 알렸다. 반면 파리살롱전에 걸린 작품은, 부궤로와 같은 탁월한 작가의 걸작이 있었음에도, 오늘날 거의 기억되지 못한다.

미분류영화제가 그와 같은 성취를 거둘 수 있을까. 차경찬에게 동료들, 또 그들이 내놓는 작품의 경향과 작품성을 물은 건 권위를 향한 도전, 변혁의 추구가 대부분은 그들만의 행사쯤으로 전락하고 잊히고 말아서다. 하지만 도전은 그 자체로 충분한 의미가 있다. 도전하지 않고 포기하느니보다 도전하고 그에 따른 결과를 감당하는 편이 낫다. 제1회 미분류영화제를 응원한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미분류영화제#IUFF#차경찬#인터뷰#김성호의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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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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