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 제주올레
길을 내는 사람이 먼 길을 떠났다. 이젠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23년 동안 열과 성을 바쳐온 일에 넌더리가 났다. 힘들고 지친 기자는 배낭을 메고 산티아고를 향해 순례를 떠났다. 까미노 800km 길을 걸으며 너무 행복했고, 치유가 일어났다. 길에 중독되었다.
피레네에서는 한라산이, 메세타에서는 수산평야가, 중산간 지방에서는 가시리 가는 길이 떠올랐다. 길을 걸으며 자신이 그리워한 것은 어린 시절 그토록 떠나고 싶어했던 고향 제주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귀포로 돌아온 그는 어릴 적 엄마의 매를 피해 천지연으로 도망가곤 했던 '도주로'를 다시 걸으며, 길을 내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2007년 9월 제주올레 1코스가 열렸다. 한 코스 한 코스 막힌 길을 뚫고 솟은 바위에 돌을 놓으며 27개 코스 437km의 제주올레가 이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올레길을 걸으며 제주가 주는 치유를 경험했다. 올레길은 바다 건너 일본의 규슈와 미야기에도, 드넓은 몽골에도 열렸다.
그렇게 19년, 치유의 길을 내던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 7일 향년 68세로 별세했다. 빈소는 서귀포의료원에 차려지며 10일 오전 9시 제주올레 6코스 서복공원 잔디광장에서 영결식이 진행된다.
고인은 1957년 10월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태어나 자랐고, 고려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월간 <마당>에서 기자생활을 시작, 1989년 <시사저널> 창간멤버로 입사한 뒤 시사주간지 사상 첫 여성 편집장을 역임했다. 2005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을 맡아 일하다가 기자생활 23년을 마무리한 뒤 고향 제주도로 돌아가 제주올레 이사장직을 맡았다.
고인은 <흡연 여성 잔혹사>(2004),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2010), <영초언니>(2017), <숨, 나와 마주 서는 순간>(2015), <식탐>(2012) 등의 책을 냈고, 지난해 12월 오마이뉴스에 마지막으로 올린 기사 (
'제주올레'의 시작, 19년 만에 그녀를 찾았다 https://omn.kr/2gji5)를 통해 올레길을 연 영감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회고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