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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삶이란 게 무료함의 연속으로 이어지기가 쉽다. 일상이 귀찮아지고 꼼짝도 하기 싫을 때가 많아진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운동을 하는 시간도, 자연히 줄어들다 보니 우울증으로 연결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오랜 직장생활을 마치고 작은 농사라도 지으며 여생의 행복을 꿈꾸면서 시골에 터를 잡았지만, 농사가 힘이 든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일을 접고 한동안 두문불출하다, 집 밖으로 나가게 된 계기가 지리산둘레길 걷기였다. 삶에 활력을 느끼게 해 준 계기가 되었다.

▲토요걷기세 번째 지리산둘레길 토요걷기는 금계마을에서 출발했다. ⓒ 정도길
지리산둘레길은 21개 구간에 총 289.4km 지리산 한 바퀴를 도는 것으로, 트레킹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한 번쯤 완주해 보고 싶은 길이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여행자들은 편의상 코스 앞에 숫자를 붙여 1코스나 21코스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인터넷 후기에도 이런 표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주관하는 (사)숲길에서는 '코스' 대신에 '구간'으로 호칭해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지리산둘레길은 끊어진 한 코스로 구분되지 않은, 연결된 하나의 길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3월 28일, 세 번째 지리산둘레길 토요걷기는 금계~장항 구간으로 금계마을(함양군 마천면)에서 장항마을(남원시 산내면)까지 진행됐다. 주요경유지는 금계마을, 창원마을, 등구재, 상황마을, 서진암 그리고 장항마을이 종착지로, 해발고도는 250m~670m를 오르내린다. 출발지인 금계마을은 원래 징검다리를 뜻하는 '노디'라는 지방 사투리로 '노디목'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후 칠선계곡 주변 사람들이 징검다리를 건너는 물목마을이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고 하며, 지금은 징검다리 대신 의탄교가 들어서 있다.

▲지리산둘레길지리산둘레길 토요걷기 세 번째는 금계~장항마을 13.6km 구간이다. ⓒ 정도길
마을 안길을 벗어나 농로를 지나고 산길로 접어든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주변 풍광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미련을 가진 겨울은 제자리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자연 역시 제 힘으로 버텨내기는 쉽지 않을 터다. 잠시 쉬어 갈 무렵, 걷기 시작한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후미에 처지던 여성 한 명이 중도 포기하고 하산했다는 소식이다.
주관부서에서는 출발 전 건강상태를 체크하고 주의사항을 당부하는 등 안전관리에 만전을 기하지만, 가끔 이런 일이 발생하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 고도가 높지 않고, 시간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분의 도움으로 무사히 귀가했다는 후문이다.

▲지리산창원마을 당산나무터에서 휴식을 취하며 바라보는 지리산 천왕봉(왼쪽에서 세 번째 봉우리). ⓒ 정도길
세 번째 지리산둘레길 걷기에서 낙오자 발생
숲속 길을 벗어나자 탁 트인 들과 동네가 나타난다. 할아버지는 경운기를 몰고, 할머니는 밭에서 이랑을 치며, 활짝 웃음을 짓는다. 1시간을 조금 넘게 걸은 시간, 창원마을에 도착했다. 창원마을은 조선시대 공납품을 보관하던 창말(창고마을)이었다가, 인근 원정마을과 합쳐져 창원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는 다랑논에 호두나무와 감나무가 많고 닥나무 껍질로 종이를 뜨는 집이 아직도 남아 있는, 옛 전통을 이어가는 마을이다. 그래서인지 창원산촌생태마을로 지정돼 운영되고 있다. 어느 집 대문에 쓴 글귀를 보니 주인장이 낭만파 시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대문에는 "YES. WE'RE OPEN"라고 적어 놓았는데, 정작 문은 닫혀 있다.

▲우리가 보낸 순간창원마을 어느 한 집 대문에 적힌 시 한 수를 읽고 간다. ⓒ 정도길
<우리가 보낸 순간>
- 김연수
다들 지지 마시길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으로 사시길
다른 모든 일에는 영악해지더라도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 앞에서는
한없이 순진하시길...
창원마을 당산나무 터에서 지리산 천왕봉을 보며 잠시 쉬어 간다. 대숲을 걷는, 부스럭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정겹다. 농로를 걷고 임도를 지나 고갯길에 서니, 아래로 펼쳐지는 풍경이 장관이다. 산자락에 터를 잡은 마을은 그림 같이 평온한 모습이다. 어머니 살았을 적, 여행을 다닐 때 하던 말씀이 떠오른다. 곰탁곰탁(구석구석의 사투리) 사람이 안 사는 데가 없다고. 그러고 보면 전국의 산야에 사람 안 사는 곳이 있기나 한 것일까.

▲산골마을지리산 산골짜기마다 마을이 들어 서 있다. ⓒ 정도길
산허리를 자르는 임도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산불예방이 주목적이라지만 자연과 환경훼손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잘 닦여진 임도가 끝나자 다시 숲길이 이어지는 오르막으로, 막바지 고개를 넘어야 하는 구간이다. 고갯마루 정상부에 있는 연못을 지나 최고 고도인 등구재(해발 668m)에 도착했다. 우측으로는 삼봉산(3.1km)으로, 좌측으로는 금대암(2.9km)으로 가는 길이다. 삼봉산은 함양군에서 시행하는 '오르GO 함양' 15대 명산 중 하나로 전국의 등산객들이 많이 찾고 있는 명산이다.

▲연못지리산 등구재 정상부에 있는 작은 연못. ⓒ 정도길
시골집 대문에 써 놓은 시 한 수... 잠시 쉬어가는 여유를
오후 1시가 넘은 늦은 점심은 도시락 대신 식당에서 먹는 산채 밥이다. 한때는 지리산둘레길을 걷는 여행자가 많다 보니, 마을을 지나는 구간에는 식당과 민박이 넘쳐났다는데, 지금은 예전과 상황이 달라 많이 줄었다고 한다.
식사 후 잠시 쉬는 동안 근처 잘 가꿔진 전원주택이 있어 기웃거리니 안주인으로 보이는 분이 들어와도 괜찮다며 손짓을 보낸다. 깔끔한 잔디밭과 티끌 하나 볼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하게 정리된 집을 보며 한 마디 건네는데 답이 바로 돌아온다.
"집을 예쁘게 꾸며 놓은 것을 보니 주인장이 보통 분이 넘는 것 같습니다."
"네, 바깥양반이 워낙 부지런해서 한 시도 쉴 틈이 없이 가꾼답니다."

▲지리산상황마을에서 보는 성삼재에서 만복대로 이어지는 지리산 서북능선. ⓒ 정도길
짧은 대화를 마치자 주인장이 나타나 집안까지 구경을 시켜준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경계심도 없이 여행자를 맞이하는 인심이 넉넉하다. 부산에 산다는 그는 매주 토요일 하루 쉬었다 간다면서 황토방 예찬에 여념이 없다. 직접 설계했다는 집은 두 개의 창이 백미라는 설명이다.
정면으로 난 창은 성삼재에서 만복대로 이어지는 지리산서북능선을 볼 수 있고, 옆쪽 창은 백두대간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는 것. 2030대 소망이 자동차라면, 60대는 전원주택이라는 말이 있다. 여유가 빠듯한 도시생활에서 벗어나, 1주일에 하루라도 이런 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 자체가 제대로 된 힐링이 되지 아닐까 싶다.
무심코 지나치는 작은 일들... 환경보호와 생명보전의 중요성 일깨워
끝날 듯, 끝나지 않은 길은 계속 이어진다. 이름 모를 고개를 넘어 내리막길에서 잠시 멈추고, 후미 팀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웬일인가 싶어 궁금하던 그때 관리자가 손으로 고갯길 언덕을 가리키며 말을 잇는다. 애초 생긴 길은 방금 지나온 길이 아닌, 옆에 돌계단이 있는 길이었는데, 등산객들이 빨리 지나기 위해 새 길을 내었다는 것.
그러다 보니 흙은 밟혀지고 다져지다 보니, 풀 한 포기가 나지 않는 맨땅이 돼, 생태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소소한 일이라 치부할 수도 있지만, 지리산의 환경과 생명보전이 왜 필요한지를 일깨우는 중요한 지점이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두 갈래 길오른쪽은 옛 길, 왼쪽은 맨땅으로 변한 새로 난 길. ⓒ 정도길
숲속 길가에 '산골짜장'이라는 전화번호까지 적혀 있는 빨간색 작은 간판 하나가 서 있다. 예전에 산중에서 자장면을 파는 중국집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영업은 하지 않고, 간판만 흔적을 대신하는지 덩그러니 남아 있다. 서진암 600m라는 이정표 앞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내리막길로 접어들면서 종착지로 가까이 다가간다. 장항마을 이정표 앞을 지나 오전에 집결했던 지리산통인문에 도착했다.
지리산통인문은 천왕봉으로 향하는 통천문(通天門)을 가기 전 사람이 지나가는 문이라는 의미로, 사람과 하늘이 하나가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는 지리산의 수호신인 성모상, 반달가슴곰상 등을 설치해 놓았고, 지리산 주변 역사문화 탐방지에 대한 안내판을 세워 놓아 작은 공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또 대형 망원경으로 지리산 천왕봉을 가깝게 볼 수도 있는, 등산객들에게는 지리산을 통하는 관문으로, 휴식을 겸할 수가 있는 쉼터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지리산통인문지리산을 오르는 이들에게 잠시 쉴 수 있는 공원인 지리산통인문. ⓒ 정도길
금계마을에서 장항마을까지 13.6km에 총 5시간 40분이 걸렸다. 세 번째 지리산둘레길 토요걷기도 무리 없이 끝이 났다. 발목과 다리에 뻐근함이 느껴지지만 걸음만은 가볍다. 지리산둘레길은 나의 삶 후반부에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 주는 동반자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 지리산둘레길 금계~장항 구간 안내
. 거리 : 금계마을 ~ 창원마을(3.5km) ~ 등구재(3.1km) ~ 상황마을(1.0km) ~ 서진암(3.5km) 장항마을(2.5km) 총 13.6km
. 고도 : 250m ~ 670m
● 지리산둘레길 안내센터 연락처
. 함양센터 : 055-964-8200
. 남원 인월센터 : 063-635-0850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티스토리 블로그 <여행, 인생여정>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