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시분과위원회에서 기획한 '시로 읽는 오늘'을 연재합니다. 시로 아침을 시작한다면, 수많은 갈등과 전쟁도 줄어들 것입니다. 독자들은 힘 있는 언어를 익혀 튼튼한 내면을 가꿀 수 있고, 다양한 시를 통해 새로운 시민의 감수성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의 첨예한 문제를 시인의 예민한 감각으로 길어 올린 한국시를 매주 두 편씩 선정하여, 추천 글과 함께 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깊은 일
- 안현미
그날 이후 누군가는 남은 전 생애로 그 바다를 견디고 있다
그것은 깊은 일
오늘의 마지막 커피를 마시는 밤
아무래도 이번 생은 무책임해야겠다
오래 방치해두다 어느 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어떤 마음처럼
오래 끌려다니다 어느 날 더 이상 쓸모없어진 어떤 미움처럼
아무래도 이번 생은 나부터 죽고 봐야겠다
그러고도 남는 시간은 삶을 살아야겠다
아무래도 이번 생은 혼자 밥 먹는, 혼자 우는, 혼자 죽는 사람으로 살다가 죽어야겠다
찬성할 수도 반대할 수도 있지만 침묵해서는 안 되는
그것은 깊은 일
출처_시집 <깊은 일>, 아시아, 2020
시인_안현미: 2001년 <문학동네>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곰곰> <이별의 재구성>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 <깊은 일> <미래의 하양>이 있다.

▲아무래도 이번 생은 무책임해야겠다. ⓒ 박유하 시인(디지털 포엠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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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두 개의 "그것은 깊은 일"로 열리고 닫힌다. "그날 이후"라는 말 앞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슬픈 그날을 불러들인다. 겉으로 드러나는 슬픔의 형태는 사소한 부분에 불과해서 우리는 이면의 고통이 얼마나 클지 짐작할 수 없다. 살아남은 이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견디고 있을 뿐이다. 시인은 타인을 향한 위로보다 "나부터 죽고 봐야겠다"고 선언하지만 이는 현재의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역설적으로 살아남으려는 결의를 보여준다. 오래 방치된 마음을, 오래 끌려다닌 미움을, 더 붙들지 않기로 하는 것. 혼자 밥 먹고, 울고, 죽는 사람으로 살다 가겠다는 다짐을 통해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삶의 무게를 스스로 감당하겠다고 각오한다. "찬성할 수도 반대할 수도 있지만 침묵해서는 안 되는" 경계에 서서 각자의 방식으로 견디는 이들 곁에 조용히 함께한다. 누구도 그 슬픔을 온전히 알 수 없다. 그것은 너무 깊은 일이므로, 우리는 침묵 대신 이 시를 읽는다. (우은주 시인)